그가 유일한 나의 아군임을 잊지마.
작년, 언니들이 말하던 마흔 병이 이런 것인가 싶게 삶의 불균형이 찾아왔다. 일단 몸의 발랜스가 깨졌다는 말을 실감했다. 내 몸에 중간이 없다는 듯 한 순간 미친 듯이 덥고 땀이 나게 몸의 열이 치솟았다가 한 순간에 쿵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음도 몸의 흐름에 맞춰 그렇게 진폭을 더해가는 나의 마흔..
몸이 흔들리고, 마음이 따라 움직이자 일상이 흔들렸다.
마흔 병을 막상 겪어보니
편하게 칭얼댈 곳, 만만한 대상은 같이 사는 남자뿐이다. 화도 자주 내고, 대처해 줄 수 없는 신경질도 많이 부렸다. 세 달째 월경이 없는 것이 조기폐경 증세일 수도 있다고, 나의 증상을 검색해주고 노력해주는 그를 검은 눈동자가 안 보이게 째려보고 '안절부절'이라는 벌을 주었다.
그렇게 마흔 병이 벼슬이라도 되는 양 짜증만 늘어놓던 어느 날 문득, 그가 작년 한숨과 함께 가만히 내뱉던 말이 떠올랐다. "치이, 작년에 내가 그렇다고 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아... 맞다. 그랬다.
작년에 그가 아팠다. 자기 발로 심리상담소를 찾아다닐 그때, 바쁜 내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며 매일 쌈닭처럼 시비를 걸었다. 그와 연년생인 나는 내게 곧 불어온 폭풍을 한 치도 예상치 못한채 그의 마흔 병을 욕되게 해주었다.
"배가 불러서 그래요. 정신이 나태해져서 그런 거지 오빠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라며 일방적인 잣대로 일축했다. 바로 1년 뒤의 내 모습을 예상이라도 했다면 좀 덜 모질게 말해야 했을 것을..
그런 내가 막상 나에게 마흔 병이 찾아오자 아내의 아픔에 더 적극적이지 않는 남편에게 독설을 퍼붓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독한 이기심.. 마흔 병은 어찌 저찌 일상에 다시 녹아들었지만 나름의 교훈을 남겼다. 주변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부부싸움이 알려주어도 보이지 않던 나의 이기심의 현주소를 내 눈으로 보았다는 것. 결혼 10년 만에 처음으로 나의 이기심의 살아있는 실체를 극명하게 느꼈다. 앞으로 벌 안 받으려면 이런 나를 지금이라도 바로 봐야 한다. 내가 나를 연민하는 양을 덜어 그에게 쏟아부어주어야 한다. 내 웅덩이 채우는데 집중했고 그도 내 웅덩이를 채우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는 내가 그를 도와줄 차례라는 것. 이렇게 마음먹고 실천하려 노력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다.
문득 궁금하다. 지금, 나의 아내 점수는 몇 점일까?
그토록 원하던 출장을 막상 다녀와보니
빽빽 울어대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캐리어를 꺼내는 그를 쳐다보기 싫었다. 일이란다. 일로 가는 여행. 일과 여행이 모호한 그런 곳에 가야 하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참 서러울 때였다. 그렇게 바깥에서 벌어온 돈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이기에 집에서 기다리는 입장이 되어버리는 나는 무기력했다. 게다가 혼자가 아닌 네 아이를 덜렁 맡은 채로 남겨지는 그 기분은 결혼생활 중에 가장 참기 힘든 감정이었다.
무조건 싫었다. 그건 지난 10년 동안 내가 겪은 모든 감정중에 가장 바닥에 있는 감정이었다. 그렇다고 아빠의 부재를 내내 버거워하지도 않는다. 막상 출장을 떠나면 남겨진 나는 그 나름의 최선으로 아이들과 지내는 요령을 익혀갔다. 대신 출장에서 돌아온 그에게 보상심리를 이만큼 끌어안고 "돌아왔으니 이제 좀 잘해주겠지" "당연히 고생하고 기다린 나에게, 아이들에게 잘해야지"라고 생각했고 강렬하게 요구했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그 당시 나는 소원했다. 누가 지나가듯 툭 하고 소원을 물으면 "애들을 떠나는 것. 전업주부의 월차 말고 출장이라는 형태로 당당하게 집을 나서는 것"이라 말해 왔던 나, 지난주 막상 그토록 바랬던 일로 아이들을 떠날 수 있는 현실이 나에게 실현됐다. 그런데 어라? 이게 뭐지?
이 낯선 기분이 좋은 줄만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가 않아서 황당했다. 잠자리도 불편했고 아이들 왕왕거리는 소리로부터 그토록 간절히 떠나고 싶었지만 사회에서 내가 듣는 많은 소음은 거름망도 없이 귀에 담아야 했고, 그 시간이 쌓이자 떠나고 싶던 집이 그립고, 듣기 싫던 아이들의 소리가 그립기까지 했다.
"아., 그도 이랬겠구나.." "아이들 목소리가 그리워서 전화를 했을 텐데, 늘 냉랭한 아내인 내 눈치를 보는 그의 감정이 이런거였겠구나" 그렇게 100번도 넘게 갔을 그의 출장이 처음으로 이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귀가는 또 다른 얘기. 막상 그리움에 가득 차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의 부재로 목말랐던 아이들은 나를 이리저리 당기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나는 딱 10분동안 예뻤던 아이들을 떼어내고 그만 쉬고만 싶고, 바깥도 힘들었지만 그 힘든 크기만큼 집 생활에 빠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뭔가 홀가분하지도 않고 집에 돌아와서도 이 시끄러움이 적응이 안 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내가 되어있는 기분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내가 보였다.
" 아...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나는 뭐 좋은 줄만 알아요? 했던 그의 목소리가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다. 이제는 알겠다. 말그대로 이게 정말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내가 반대 입장을 겪지 않았더라면 평생 못 느꼈을 감정이 아닐까? 나는 출장 다녀와서 신발도 채 안 벗은 그에게 내 육아가 힘들었다는 이유로 화부터 냈는데, 내가 잔소리하는 그 순간마다 그 억울함을 다 참아낸 그가 문득 대단해 보인다.
몸 관리를 잘하고 있는 남편을 막상 마주해보니
결혼 10년 동안 내가 해 온 잔소리가 있다.
"운동해라. 살 빼. 자기 몸 관리 못하는 사람이 비즈니스를 잘 할리가 없다. 몸이 먼저다. 기승전 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인생은 빡빡하게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며 꿈쩍도 안 하던 그가, 나의 바디 프로필 준비기간에도 남일처럼 나를 바라보던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불과 한 두 달 전이다.
두 달 만에 6kg을 감량했고, 늘 보던 체중계 숫자의 앞자리가 바뀌자 스스로도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아... 이제 이 사람 몸 걱정은 덜었다." 싶었다. 이게 바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강의 안전지대에 그를 올려놓은 안도감이구나 했다. 그런데 동시에 희한한 감정이 든다. 내가 그토록 바랬던 그의 모습에서 발견한 나의 낯선 감정이다.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몸 관리 알아서 하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했던 나인데..
그가 달라졌다. 요즘 많이 젊어졌다." "살 빠지니 좋아 보인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 등 내 전담 영역이었던 칭찬을 남편이 받을수록 이 상황, 이 감정이 어색했다. 늘 주목받던 것이 '나'에게 '그'에게 옮겨가길 간절히 바란다는 나였는데, 그 바람이 가식이었나? 싶을 만큼 황당한 마음이 내 안에 살아 있다는 사실과 마주 했다.
다시 가만히 들여다보니, 타인의 시선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주 나를 바라봐주던 그 눈길을 모두 자기 자신으로 전환시킨 그의 관심사에서 나는 사탕 뺏긴 아이 같은 황망함을 느낀 것 같다.
지난 10년의 결혼생활동안 한결같이 나를 바라봐주던 그의 눈을 마주쳐준 기억이 없다.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은 나는 늘 내 모습만 쳐다보기도 바빴다. 이제야 그런 나를 "나도 좀 봐줘"라는 눈빛으로 간절하게 말하던 그가 느껴진다.
10년이나 한결같이 이 억울함 속에도 잘 살아온 그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 억울함의 씨앗이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온 이제 막 싹을 틔운 그 싹을 질투나 황망함 대신 사랑의 눈길로 함께 키워줘야 할 때라고 내 마음을 다듬는다.
나의 하루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정말 다양한 내가 있다.
새벽에 글 쓰는 분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덜 힘들게 글을 쓰게 할까? 애쓰는 마음속에 그들로 인해 내가 빛났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비쳐 당혹스럽다.
남편이 자기 자신으로 우뚝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집안일이나 육아를 더 도와주어서 내가 성장하게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아이들에게 인격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서 내 성미에 안 맞으면 대화하려는 인격은 언제 가르쳤냐는 듯이 막 화내고 함부로 아이들을 대해버리는 내가 보인다. 남을 돕고 살고 싶다고 말로는 그렇게 하면서도 도움받기만을 바라고, 내가 주는 도움과 받는 것 사이에 작은 균열도 못 참아내는 내가 꽤 자주 보인다.
이 중 단연, 제일 키우고 싶은 부캐는 새벽에 늘 글을 쓰려고 애쓰고, 사람들을 쓰게끔 돕고 싶은 순수한 마음 영역이다. 가장 없애고 싶은 캐릭터는 두번 망설이지 않고 아이들 교육에 모순인 내 모습이다.
자신감과 겸손함 사이 어디쯤에서 나에게 찰떡같이 어울리는 균형점이 찾아지기를 바란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둔 겸손함을 마음에 새기려 며칠째 되뇌는 중이다.
손잡으면 연합군 그 손 놓는 순간 바로 적군이 되는 부부 사이
완벽한 부부 사이란 적군인 순간조차 연합이 본질인 서로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단단한 둘만의 그 무엇 그것을 지켜내는 모습이 아닐까.
완벽한 부부관계야 말로 완전하게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관계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상의 모든 인간과녞중에 가장 욕심내는 영역의 관계성이다. 오늘도 우리의 부부의 삶, 걸어온 여정 자체가 우리 아이들에게 또는 그 누군가에게 작은 교훈이 되는 삶을 꿈꾸며.. 오늘도 나의 남편이자, 연합군이자, 나의 글쓰기 모임의 멤버인 그가 집에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이 새벽을 글로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