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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ul 05. 2021

설명하는 삶 말고, 보여주는 삶

'이땅에 태어나서' 독후 공모전 출품작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의 엄마다. 사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오늘날 현대그룹을 만든 정주영 회장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일반적인 정보 그 정도에 그쳐 있었다. 현대라는 대기업이 주는 묵직한 노동력의 가치를 어렴풋 짐작하고 있었지만,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고, 북한에 소를 보내고 금강산을 개발하고, 대선후보였다가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대상, TV나 신문에서 본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있는 높은 분,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 기억 속에 그는 이렇지 않은가? 나도 딱 거기까지 였다.


아. 그런데 이거 뭐지? 자기계발서에서는 느껴지지 않던 이 다른 에너지?? 아. 이건 진짜 살아있는 한 사람의 찐한 인생이야기구나.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삶의 에너지를 내가 지금 온 몸으로 느끼고 있구나.!  진짜가 주는 스토리의 힘은 정말 마음속에 깊은 감동과 치유로 흘러들었다. 진실되게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이 전하는 두꺼운 메시지가 절절하게 머리와 가슴과 마음에 전해진 것이다.

정주영회장의 회고록 '이땅에 태어나서' 에는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너도 삶의 최고의 수준에 올라갈 수 있다. 지침이 가득한 일반적인 동기부여 책과는 달랐다. 딱히 이렇다 할 지침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그 진짜 이야기가 두터운 마음의 표피층을 뚫고 심연의 마음 세계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나는 엄마로서 아이도 잘 키우고 싶지만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았고, 나의 꿈도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부여잡고 방황 끝에 운명처럼 만난 일 ‘글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즐기면서 아이 키우면서 할 만한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지리멸렬한 일상과 이 일상 속에서도 쥐어짜야 나오는 고통에 매일 받아줄 곳도 없는 응석을 부렸다. 그런데 책 속에 14살 정주영과 접속했다. 아버지가 판 소값을 들고 가출을 시도해 무작정 상경한 통천 시골소년, 빈대 뜯기던 인천부두 노동자에서 쌀집으로 취업하고 쌀집의 주인이 되는 스토리는 움츠러졌던 나의 어깨를 바르게 펴게 하고 허리를 세워 의자에 바로 앉게 만들었다. 책 속의 그와 만남의 횟수가 두 번, 세 번 늘어가자 처음엔 '위인전이니 다 그렇지 뭐' 했던 미지근했던 나의 피가 따뜻하게 데워짐이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한 번의 인생이라지만 정주영 회장의 일대기는 세네 사람 아니 열댓 사람쯤의 생애를 한 사람에 씌워놓은 듯하다. 그런데 나를 더 와닿게 했던 것은 그 결과물들이 뜬구름이 아닌 지금 현실에서 보이는 실체라는 사실이다.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매일 밟고 그의 정신이 녹아 있는 한강 고수부지를 사랑하며 눈만 돌리면 현대라는 이름이 도처에 있는 일상을 산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장본인 이 사람의 소산을 이토록 누리고 있다는 것이 나를 더욱 끓어오르게 했다. 


도대체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내가 이 생에 태어난 이유와 답을 찾기 위해 책 숲을 헤매고 강연을 찾아다니고 수많은 배움 질을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잘 모르겠는데 이런 나를 필두에 세워 어미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에게 나라를 구하라는 것도 아니고 큰 기업체를 경영하라는 것도 아닌데 가정하나 똑바로 못 꾸리는 나 자신을 자책하는 것이 내 지난 삶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는 나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아를 바르게 인지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 하물며 타인의 인생을 책임지는 자식 교육이 나만의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나에게는 글쓰는 부모의 합을 늘려 후손들이 잘 크는 대한민국 만들기에 일조하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이 생겼다. 이 일을 이루어내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까? 늘 밥먹듯이 고민한다. 부모의 힘만으로도 아이가 잘 클 수 있다는 것의 증거를 만들기 위해 현재 사 남매를 가정의 힘으로만 키우고 있다. 사교육이 아이 잘 키우는 것과 무관하다는 내 소신을 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아이들에게 정신적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엄마가, 나 스스로는 글 쓰는 일로 좋은 영향력을 주는 이가 되고 싶다. 부끄럽지만, 고작 이 두 가지 병행하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는 나날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한집에서 크고 있는 내 아이들은 올해 초등 2학년, 3학년, 4학년이 됐고 막내는 아직 유치원생이다. 고만고만한 이들과 우리 가정 시스템으로 모두 잘 성장하는 루틴을 만들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10여 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내것을 찾아내고 싶었던 간절함이 있었기에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혼자 쓰던 새벽 글 루틴에 남편이 합류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모여 현재  열명 남짓한 부모들과 매일 새벽 함께 일어나고 함께 글을 쓰고 글 속에서 인생을 나누고 있다.

그러면서 나의 세포는 진정 변화를 맞이했다. ‘우리나라는 작지만 강하다. 유대인보다 우리나라가 못한 게 뭐냐, 교육만 바뀌면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도 된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늘 이렇게 외치는 부모가 됐다.


출처가 없는 나의 조국사랑은 출산의 벽을 타고 나를 본격적으로 공부에 빠지도록 만들었고 내가 받지 못한 모든 부모의 환경을 책으로 글쓰기로 채웠다. 태초부터 제대로 갖춘 부모의 철학으로 키운 아이는 세상에 큰 쓰임이 있는 인재가 될 것이라는 본능이 나를 미친듯한 공부와 감정 분출 글쓰기 세계로 인도했다. 젖먹이 연연 연생을 키우면서 미국 터전을 접고 한국으로 역이민을 정착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늘 책을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놓을 수 없었다.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나에겐 책만이 안전하게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정주영 회장님의 어머님이 습관처럼 하셨다는 기도 “나는 잘난 아들 정주영이를 낳아놨으니 산신님은 그저 내 아들 정주영이 돈을 낳게 해 주시오” 이야기는 지난 10여 년 하루하루 육아 불지옥에서 버티면서 했던 나의 수많은 기도를 소환했다. ‘최선을 다해 사 남매를 생산해 놓았으니, 부디 장성해서 대한민국 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 되게 해 주세요’ 부처님께 하느님께 내가 아는 모든 신에게 중얼거렸다. 집에 부적처럼 곳곳에 붙여두었던 것을 놀러 왔던 지인들이 보고 비웃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아무리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신념의 바탕 위에 쌓은 최선이 만든 결과다’라고 했고 이것이 현대를 만들어낸 힘이라 하지만, 이런 생각만으로 이뤄냈다 하기에 그의 업적은 너무나 압도적이라 더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책을 통해 어머님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와 늘 믿어주었던 고인의 아버지를 만나자 그 물음표는 느낌표로 자동 변환됐다. 그렇구나, 어머님이 간절한 기도와 한평생을 밭을 일구며 성실을 몸으로 보여준 아버님의 그 에너지로 그의 존재가 만들어졌겠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일반적인 노력의 결과로 해석하기에는 미심쩍던 그 부분이 척 소리를 내며 맞아 들어가는 그 느낌에 물개 박수를 쳤다.     

그렇게 돈을 낳는 아들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어머님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을까? 그 아들은 평범한 사람은 수치로 가늠하기도 힘든 만큼의 돈을 나라에 벌어준 현대 일가와 정주영 회장이 됐다. 그런데 그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돈의 의미를 책 속에서 만나자 내가 정말 배워야 할 것은 그가 벌어낸 기하학적인 숫자의 돈이 아니라 그 돈에 깃든 정신임을 또한 알게 됐다.

“우리는 다 같이 평등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사회는 평등 의식 위에 세워지는 법이다. 남들은 내가 부자라고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하지만, 실상 나 자신은 부자라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며 산다. 내가 돈을 목적으로 이 일을 했다면 현대는 중소기업쯤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돈이란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그 이상의 것은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키워온 것은 돈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인생이며 신념을 지키고 사는 삶인지 보여주는 인생 그 자체였다. 이는 단순히 문장으로 전해지는 철학이 아닌 그의 인생전반을 꿰뚫고 보이는 인생 통찰이다. 사람은 각자 모두 태어남의 이유 즉 맡은 바 사명이 있다고 한다. 국민이 모두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사명이 그를 고향집을 떠나 고생을 기꺼이 감내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산업화 시대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해야 했던 어른들의 이런저런 복잡한 이유로 상처와 결핍을 안고 어린 시절을 아프게 살았다. 자연스럽게 ‘부모’라는 큰 단어가 내 인생 사명으로 자리 잡았다. 그 사명이 무엇도 가진 것 없는 나를 네 아이의 엄마로 만들어 주었고, 작가라는 직업을 꿈꾸게 해 주었다.


가진 자들이 있는 텃밭 위에서 몇 층을 쌓아 올린 성과와 비교할 수 없는 그의 일생이다. 지하 암반수부터 쌓아 올린 그 내공의 응축으로 단단한 지면을 뚫어내고 나온 땅의 울림이다. 단편적인 몇 년간의 삶으론 절대 보여줄 수 없는 팔십 평생의 진실된 삶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소외된 사회계층에게 온정을 보낼 줄 아는 사랑과 조국 안에 모든 국민의 행복을 바라는 보편적 인류애가 흐르고 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막노동을 하면서 내 처지를 비관해본 적도, 쌀가게 점원을 하면서 주인보다 내가 못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직원보다 내가 잘나서 사장, 회장이 되었다는 생각도 맹세코 해본 적이 없다. 또 직위의 높낮이로 사람을 존경하거나 무시하는 것도 나는 혐오한다. 직위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일을 보다 잘할 수 있게 하려는 필요에 의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책임’ 그 이사도 이하도 아니다.”

 

초보 작가가 나를 알리고 싶은 수단을 찾다 보면 세상엔 수많은 독후감 공모전이 있고 서평을 쓸 책들도 줄을 지어 서 있다, 그런데 글로 상 타 먹는 복은 초등학교 때 다 한 것 같다며 공모전 앞에 단단히 선을 긋던 내가 하필 딱 이 지점, 아산정신에 머물렀던 이유 어떤 강렬한 이끌림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이 글은 독후 공모전을 위해 쓴 글이기도 하지만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나의 40살 인생의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이 보름간의 여정으로 인생을 살아갈 소중하고도 부서지지 않을 지혜의 검을 쥐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환희롭다.

아산정신을 이어받은 부모의 정신으로 나의 빛남으로 세상 어두운 곳을 비출 수 있는 빛을 향해 다시 내달리려 한다. 지칠 때 쉬어갈 곳은 이제 책만이 아니다. 내 마음에 깃든 정주영 그리고 아산정신, 그가 후손에게 남긴 정신적인 유산인 확고한 신념 위에 최선의 노력을 보태는 삶을 성실히 살아내 이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존재로 살다 가고 싶다. 



-- 공모전에 출품했고, 

당선은 되지 않았지만 나를 키워주었던 아산정신과 나의 독후일기를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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