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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ul 08. 2021

전업주부말고, 부업주부

엄마는 정치인? 가정시스템 메이커?

'엄마 뭐하시는 분이시니?'  

'몰라요. 엄마가 뭘 해야만 하는 사람인가요?'

'직업란에 아빠는 회사원 아이는 학생 엄마는 전업주부?' 

'엄마, 전업주부는 뭐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예요?'


직업란의 빈칸 앞에서 동공이 몹시도 흔들린다. 아, 또 마주하기 싫은 이 상황이다. 이 빈칸을 무슨 글자로라도 채워야 한다. 마치 새로운 폰트라도 개발한 양 전업주부라는 네 글자를 알아보기도 어렵게 휘리릭 재빨리 흘려쓴다. 그리고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자리를 빠져나온다. 하지만 저 네글자를 쓴 내 손가락은 이미 내가 한 일을 알고있다. 오그라든 손 끝을 말아, 두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그래 언젠가 나 반드시 이 네 글자를 벗어날꺼야"


난 뭐가 그렇게도 싫었을까? 전업으로 주부를 한다는 말속에 도대체 왜때문에 그토록 싫은건지, 전업이 싫은거야. 주부가 싫은거야.? 주부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이란다. 안주인이라니, 뭐 맡아서 꾸려간다니 이게 나쁜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범인은 바로 '전업'인가보다. 전적으로 업으로 한다? 아..너 이게 싫은거였구나.? 




가정시스템 메이커.

전업주부라는 말이 너무 싫다고 외치다 외치다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이미 서양권국가에서는 '도메스틱 엔지니어(Domestic Engineer)' 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는 뜻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양국가권의 신개념 가정시스템의 주축이 되는 엄마를 '당당한 업'의 의미를 가진 뜻으로 바로 세우고 싶었다. 때는 몇 해전 책이 너무 쓰고 싶어서 왕왕대는 어린 아이 넷을 모두 기관에 맡기고 뒤돌자마자 여기저기 미친사람처럼 헤집고 다닐때로 돌아간다.


소위 말하는 책 기획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내가 번 것도 아닌 남편의 돈다발을 바치고 '제가 뭘 쓸 수 있을까요?'를 물었다. 불과 몇 해 전에 나름은 진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한 행동임에도, 내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바보스러울수가 있나. 내가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는데 타인이 알아주길 바라다니. 다행히 그때의 노력과 투자금을 몽땅 날린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단어, 내 삶의 축인 한가지 기획은 발견해 냈다. 지금 나의 평범한 가정주부라는 위치를 '가정을 시스템하는 사람'이란 신개념으로 새로히 적용해 것이다. 세상에 누구나 잘하는 것 한 가지는 있다고 하던데, 그 당시 내가 잘 하던 것은 '집안의 판을 짜는 즉, 정치하는 일'이었다.


새벽글쓰기모임의 일호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폭소가 터져나왔다. 나의 그 시절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가 되어있었다. 말에 따르면, 나에게 유리하고 그에게 불리한 '독소조항'이 포함된 사안을 입안할 때의 나는 아주 제대로 공작 활동을 펼친다고 한다. 상대의 지난 과오를 모두 들추었다가 눈물에도 호소하고 째려봤다가 애교도부렸다가. 그렇게 관철시키고 나면 표심을 내어준 유권자에 대한 일말의 감사함은 커녕 엄청난 권한과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한다나? 독소조항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처절한 응징과 진저리칠만큼의 댓가.. 나도 가끔 내가 무서울때가 있다.




생각해보니 이 집안 정치를 내가 조금 잘 한다는 거다. 그래서 쭉 밀어붙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단전에서 끌어올린 영혼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쩜 이렇게 애가 이렇게 하루종일 아빠만 찾아? 나는 참 당신에 비해 섬세하지가 못한가봐. 애도 본능적으로 그걸 아나보지?. 내 품보다 당신품을 훨씬 편하게 생각하네. 아..부럽다 당신" 

다 뻥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실 기반이었고, 나는 그것을 좀 더 상대가 폼나게 추켜올려주는 양념을 갖추었을 뿐. 하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인건 맞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혼때부터 시작된 '부부계약서'사건도 있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둘이 알콩달콩의 시절은 모두 애교였다면 육아는 정신을 빠짝 차리지 않으면, 바로 외롭고 처절한 땅굴을 혼자 파야하는 첨예한 현실부부판의 신경전, 그 시작이었다. 난 무사히 큰 아이 전담맡기기를 성공한 이후로 태어난 아이 하나, 둘씩 그에게 '밀어넣기'를 감행했다. 스리슬쩍 눈치채지 못하게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우리는 '사남매 공동육아자'라는 타이틀을 어디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현실판 공동육아자'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이런 정치능력은 더욱 큰 날개를 달아 아이를 키우는 방식도 대부분 이 방법과 새로이 개발한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적용했다. 

한날은 일호작가님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당신 내 죽을날도 받아 놨어요?". 어떨 땐 이런 나의 철저하나 설계와 기획이 너무나 오금저리게 무섭다는 거다. 나는 그의 말이 너무도 웃겨 한참을 웃다가 그 웃음을 뚝 그치고는 그 공포를 감사히 견디라고 대답해줬다. 그리고 갈길이 멀었으니 맷집을 더 쌓으라고도. 사실 그와 나 사이에 이런 말을 웃으며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제 1의 가장 어둡고 암울한 터널기를 전우애로 손잡고 무사히 지나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아이가 이제 4학년. 유치원생 하나만 빼면 모두 학생이라는 '업'이 생긴 지난 11년간의 삶은 하루하루 한편의 드라마일 정도로 치열하고도 처절했다. 우린 11년동안 국경을 두번 넘었고, 8번의 이사를 했고, 갈라설뻔도 하며 네아이를 낳고 키웠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유독 우리 결혼생활은 초반 10년 치열하고도 힘들고도, 격렬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아군이 적군이 되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주위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두 부부와 네아이의 총성없는 아우성,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 전쟁터. 이 것을 손잡고 끝내는 건너왔기에 지난날을 함께 돌아 보면 웃을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이제 둘다 글쓰는 사람이 된 지금, 우리에게 네아이를 두사람의 힘으로만 이만큼 키워낸 에피소드는 캐도 캐도 끝없는 글감계의 '금광'이라는 선물로 남았다.




사실 전업주부라는 네 단어에 치를 떨면서 싫어라했던 시기는 진짜 그 직업밖에 나를 설명할 길이 없을 때였고 그 시기를 살짝 지나온 지금은 나를 무어라 정의하든 이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엄마계의 슈퍼오지라퍼 답게 그들을 걱정한다. 아이학교서류 인적사항의 엄마옆에 주어진 빈칸에 '전업주부'를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이것밖에 쓸말이 없는데 진짜 쓰기 싫어서 휘갈겨 쓰고 마음이 상해버린 다른엄마의 내면까지 아무도 시키지않은 걱정을 한다. 엄마라는 직업은 모두에게 '전업'을 강요할 수 없다. 전업으로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일이 즐거운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세상이 이를 종용하거나 시댁이나 남편이 엄마의 자리는 이랬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없다. 아니 말은 할 수 있지만, 그 말을 다 들을 필요가 없다.

내가 어떤 엄마이고 싶은지, 얼마큼 엄마역할을 하고 싶은지조차 엄마가 당사자가 정할 일. 결국 입맛대로 해야 일도 가정도 풀린다. 좋은 레시피가 정량과 배합을 아무리 설명해줘도 결국 손에 양념장은 마음대로 맛을 보았을때 '느낌'으로, 손이 시키는 '직감'으로 나만의 요리를 완성해 내듯이 가정을  꾸리는 일도 '주로 맡은 자' 주부가 주체적으로 꾸려나가야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전업주부말고 부업주부를 택했다. 엄마는 내가 가진 직업중에 하나일 뿐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네명의 생명을 이 몸을 통해 세상에 내어 놓았지만 그들에게 내 지분을 주장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그들도 엄마를 엄마라는 관계 이전에 한 사람의 대등한 인격체로 직업인으로 존중할 수 있도록 계속 주입교육과 사상교육을 시킨다. 내가 생각하는 가정시스템에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사상이니까.

그렇다고 내 뜻대로 가족구성원을 세뇌시키는 사람으로 오인하면 안된다. 나는 철저히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인데다가 시작점은 '엄마인 나를 행복으로 꽉꽉 흘러넘칠만큼 채우면 그게 결국 내 가정을 위해 좋은일이 되는 것이고, 결국엔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고 이 일만큼은 세상누구보다 잘해내고 싶다!!' 이 마음이 이 모든 활동의 시작점이었으까. 그래도 타이틀이 전업주부인건 여전히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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