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엄마의 미니멀 살림 기술, 가정을 시스템화하기
<어제 저녁 우리집>
"엄마도 양치를 하세요? 처음봐요"
"뭐래? 엄마 양치하는걸 처음봐?"
"네. 저두요. 어, 나둔데. 언니 나두"
"와 살아있는 박물관에서 귀한 유물을 본것 같은데요."
지네끼리 낄낄거리면서 나를 놀리는게 너무 기분이 나빠 침실로 남편을 찾아갔다.
"얘들이, 뭔소리야...여보, 애들이 나 양치하는 모습을 처음 본대. 말이 돼?"
"어, 나도 처음 보는데......."
".................."
<이모네집에서 친척언니들과 놀다가 1박을 하게 된 아이들>
다음날 아침에 언니들이 "얘들아, 양치하자." 하니 했다는 대답
"어? 아침에도 치카를 하는거예요? 우리는 밤에만 하는데...."
"..........."
맞다. 나는 씻는것에 참 인색한 사람이다. 원래도 좀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결혼하고 네 아이를 키우다보니, 더 심해졌다. 아니 아이는 사실, 핑계고 네아이 키우면서도 내 업을 찾아 짙은 방황을 멈출 수 없던 사람이다 보니 안그래도 우선순위에 없던 씻는 행위에 더욱 인색해졌다. 이런 엄마 밑에서 크는 아이들이니 어쩔 수 없다 싶다가도 사회적으로 무리되지 않게 '아침양치'는 시켜야지를 결심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나를 6개의 인생공을 굴리는 엄마저글러라고 설명한다. 셋째가 요즘 저글링을 해보겠다고 테니스 공 두개를 들고 어렵사리 오른손에 있던 공을 위로 던지고 왼손에 있던 공을 받는 동시동작을 연습하던데, 그런 아이 눈엔 세 개의 공을 굴리는 사람은 세상에서 최고 기인인가보다. 네개 다섯개로 돌리는 사람보면 눈이 휘동그래지다 못해 기절을 할런지도 모른다. "얘야 엄마는 여러개를 한꺼번에 굴리고 있는 인생 프로 저글러란다"라고 아무리 '엄마 잘났네'를 어필하려고 말을 걸어봐도 아이는 귀등으로도 듣지 않고 오로지 지 저글링 연습에만 빠져있다. 아이하나 마다 공 하나씩을 다 차지한 저글러라면 나는 아마 이미 두손두발들고 포기했을것 같다. 나는 그렇게 의지가 강한 사람도, 성실한 사람도 아니었고 엄마역할을 하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은 사람임을 진작에 깨달았으니까. 아이마다 관리 포인트라고 하면 그것만도 공 네개.... 이렇게 되면 도저히 내 인생에 다른 여력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남편을 '가족'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저글링 공으로 묶어두었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이렇게 최씨 5인의 묵직한 공이라 해도 이것은 내 인생을 전체에서는 두번째 공이다.
엄마의 첫번째 공에 대한 정체성을 '글쓰는 사람'으로 정했다. 앞으로도 사는 동안 평생 바뀔일이 없는 나의 정체성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세번째 공은 '부모작가연대'다. 부모라는 키워드는 나를 이만큼 오는데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중요한 인생 키워드이고 가족 말고 나를 설명하는 소속집단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로망이었다. 과거의 나와 같은 부모도 돕고 현재를 열심히 살고자 하는 부모들과 '함께 글쓰는' 사람이 되었고 앞으로도 되고 싶다. 은유작가님의 표현으로 나의 심금을 찌른 '아이와 유배된 채 버려진 자투리 시간만을 공유해야 하는 부모들과의 애틋함'이 내 마음자리의 원천이기도 하고 성장동력이기도 해서다.
또 이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경제기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금 이렇게 '평범하게 살기' 위해 이 '경제적 안.정' 이라는 두글자가 우리집과 만나기 위해 우리부부는 엄청난 고난의 길을 헤쳐나왔다. '생활형 부동산 짓(?)'와 '생활고와 절약을 넘나드는 절박한엄마' 생활을 이어옴과 동시에 두번의 국경을 넘고 8번의 이사를 했다. 그리고 현재, 부모글벗들과의 수다공간과 개인 글작업 공간에 대한 욕심으로 오픈한 글벗살롱에 대한 월세책임감, 배움에 대한 욕구불만이 쌓이다 못해 터지기 일보직전인 막내를 더 이상 틀어막을 수 없다는 부채감, 언제까지 돈안되는 글만 쓰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불안감 이 모든것과 싸워 이겨야 하는 공이 바로 경제력이다. 여섯번째 공은 '체력공' 이다. 몸이 되야 내 욕심을 다 채울 수 있는 만큼의 활동을 해 낼 수 있다는 직감으로 매일 삶속에 운동을 우겨 넣으려 노력하고 노력한다.
이렇게 저글링 얘기만 길어지다가 원래 하려던 이야기의 방향을 잃었다. 그러면서 느낀다. 오늘도 이번주 글쓰기의 주간 목표인 짧게 쓰기는 글렀구나.
아, 맞다. 내가 씻는 것에 인색한 이유가 시작이었지? 그걸 이렇게나 인생을 들먹이면서까지 장황하게 얘기했다니... 문득, 서든리, 부끄럽다. 여튼 이 공을 잘 굴리는 저글러가 되려고 하다보니 몇가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나 씻기 또 대상을 씻기는 일' 이였다. 그리고 청소, 빨래등의 집안 살림을 최소화였다. 이 최소화는 쉬운 기술은 아니다. 막상 실전으로 집안을 꾸려야 하는 부모들에게 특히 집안이 어지러져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이들에게는 '정돈되지 않음을 외면하는 에너지'가 너무나 힘들다는 사실에 극공감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 청소를? 아니면 어지러진 집을 참아내는 내공을?
둘다 아.니.고! 자기 자리를 정돈해야 하는 것을 가족구성원에게 끝.까.지 가르치는 것을 말이다. 이는 내가 삶에 대한 태도를 가르침을 포기하고 살아지지 않는 엄마라는 것을 알려준 무수한 사건중에 하나다.
내가 우리 가정을 위해 다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그 다음 최선은 손이 덜 가기 위한 살림체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그날그날 쓸고 닦을 시간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지네가 옷장에서 옷을 꺼내입고 넣고를 잘 하게 해둘까?" "어떻게 하면 간식챙겨먹기에 내가 손을 뗄 수 있을까?" 이런 화두로 집안에 내 손품빼기 시스템화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건 내가 특별히 현명해서도 아니고, 큰 그림을 잘 그려서도 아니었다. 그저 일단 너무도 절박한 '내 시간을 확보'를 위한 다둥이 엄마의 처철한 몸부림이였달까. 나도 내 시간을 통해 내 할일을 찾아내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이 가정시스템 안에서 알아서 잘 크게 만들고 싶어서'라는 두가지 욕심 중 그 무엇도 내려놓지 못한 엄마가 최선의 솔루션이라며 꺼내놓은 방어기제 바로 '가정을 시스템하기'였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의 양상은 언뜻보면 '미니멀리즘'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의도된 미니멀라이프가 아닌 생존을 위해 "지금 하지 않으면 죽는 것"만 빼놓고는 육아에 가지치기를 한 결과다.
이를테면 장난감은 있으면 연연연생 싸움의 원인, 청소와 정리의 스트레스, 늘어나는 가계부채 범인이 된다는 이유로 네아이 키우는동안 따로 장난감을 한번 사들인 적이 없다. 옷도 신발도 최선을 다해 물려입혔고, 게임기며 스마트폰 포함 디지털도구도 모두 마찬가지. 이런저런그런 이유로 학원도 보내지 않는다.
엄마가 오랜동안 '정신적 메마름'에 힘들어 했다가 그 빛을 향해 달렸을 때 삶에 가장 충족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오로지 '큰 꿈, 이를 받쳐줄 좋은 태도' 이것을 만들어 주는 것에만 중심을 맞추고 이에 맞춤형 생활을 했다. 이를테면 애를 씻길것이냐, 먹일것이냐 둘중에 하나만 해야한다면? 당연히 씻기지 않고 먹였고. '잘 먹일것이냐, 대충먹이고 책 읽힐 것이냐?' 하면 늘 대충 먹이고 책을 읽어 주었다. 장을 넘치게 옷을 받아온 날이면 아이 한칸 장속에 필요한 옷을 제외하고는 과감히 버렸다. 집도 넓지 않고 아이들은 커가는데 살림까지 늘어가면 우리집은 도저히 답이 없는 집으로 전락하기 너무도 쉬운 구조라는 것을 직감이 계속 가르쳐줬따.
클때 잘 먹어야 한다. 라는 정설이 내 귀에는 안 들어왔다. '클 때 잘 생각해야 한다.' 라는 나만의 잣대로 아이들을 키웠으니, '아이들 입이 짧을 것 아닐까?' 걱정하시는 어른들이 많다. 하지만 다행히도 현실은 정반대. 엄마가 음식을 목숨걸고 챙겨먹이지 않으니, 아이들이 절로 자기들이 알아서 먹고 사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제한적으로 주는 음식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데, 브로컬리, 파프리카, 토마토, 이런 음식군이 거의 매일 식탁에 올라와있고 딱히 다른 먹거리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아이들은 어느덧 엄마표 대충식단에 길들여졌고 '야채, 과일 먹기 대회'에 나가면 각자 모두 세계1등을 하고도 남을 만큼 야채대장이 됐다. 물론 다른 음식들도 가리는것 없이 다 잘 먹고, 엄마가 해주면 흙이라고 먹을 태세로 항상 감사하게 먹을 줄 아는 아이들로 크고 있다. 엄마의 요리능력 부재와 먹거리, 간식거리의 결핍이 준 선물이다.
한때는 청소에 게으르고, 아이들 옷가지에 신경쓰기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먹거리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 남편이 친정언니가, 친정부모가 잔소리를 했던것도 사실이다. 모두 아이들을 생각하는 귀한 마음이니 곱게 받아들여야 했으나, 나는 곱지 않았고 말한 이들은 되로주고 말로 돌려받지 않으면 다행이었으며, 나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도 나의 아이를 사랑하겠지만, 나보다는 아니라는 확신. 난 세상 누구보다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나의 기준과 잣대가 세상을 보는 눈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인생 정수를 뽑아 우선순위를 새로썼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만든 우선순위에 따라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다고 확신하기에 그 누구도 이 확신의 장벽을 무너뜨릴수는 없었다. 이는 한편으로 참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다. 엄마의 잣대가 잘못되었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한 사람 네 명의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나의 장벽속에 아이들을 가둬두다니.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나의 가치관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누구는 음식이 사랑의 언어고 누구에게는 언어가 그렇듯이 나에게는 '인생에 대한 바른 태도' 만큼 중요한 가치관이 없었을 뿐이다. 물론 내 서투른 잣대로 네 명이 인생을 망치고 있지 않나? 혹은 잘 키우는 것 맞나? 에 대한 끝없는 자기검열도 필요하다. 내 생각에 갇힌 엄마가 잘못 키운 유년 시절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 삶을 통해 여실히 느끼고 살아 왔기에. 그 결핍이 나를 이런 욕심을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으로 키워놓았기에.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 너무나 강고한 엄마철학보다 더 위험한 것은 주 양육자가 '육아철학 없이 기분 따라 유행처럼 아이를 키울 때, 이조차도 일관성이 없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나만의 사랑의 언어, 이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딱 정답을 찾으라기 보다는 '나만의 답'을 알아가려고 하는 과정 그것을 부모공부라 표현한다면, 그 공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라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새벽을 깨워 함께 하는 마음들과 함께 '글'로 엄마됨을 공부한다. 나를 위함이 아이들을 위함과 한치도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를 위함과 아이를 위함의 격차 사이의 균형점은 어느 집에나 어떤 엄마와 자식사이도에 존재한다. 그 균형점이 어디냐는 집집마다 다르지만 그 올바른 균형점에 그 가정에 행복의 원천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이 균형점을 내 몸으로, 내 정신으로 직접 찾아 나서는 것. 그 바탕으로 나만의 가정시스템을 새로이 만드는 것. 이것이 내 아이를 잘 키우면서 내 자신도 만족할 삶을 살 수 있는 최고의 정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