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기대는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
"엄마. 저 오빠 30살이라면서요?"
"응 그래. 왜?"
"근데 왜 저 오빠는 아직도 엄마아빠랑 살아요?"
아이들이 말을 알아듣고 사람대 사람으로 상호간의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되자마자 아니 그 전부터 거의 매일같이 해 준 말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의 비율만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이야기 했던 것은 바로 그들의 독립에 대해서다. 이건 약간 뭐랄까. 조정불가능.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규칙. 당연하게 여겨지도록 설명이 아닌 세뇌를 시켰다. 핑계를 대자면 이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육아 직감이 진두지휘한 일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국률같이라 건들여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주입당한 독립, 그러니까 일정 나이가 되면 결혼이나 상황과 상관없이 이 집에서 나가야만 하는 그들의 정해진 운명을 매일 동화책 읽어주듯 그렇게 자주 속삭이며 엄마는 이것으로 무엇을 가르치고 싶었던 걸까?
아이를 품에 안고 '사랑해. 아가야. 이제 몇 년 남았지?'
하면 '뭐가요?' 라고 하지 않고 '이제 9년 남았네요' 한다. 자동 질의와 응답, 나의 세뇌성 발언이 쌓이고 쌓여 거의 화학반응 수준의 대화가 오가는 지금이 됐다.
2020년 마지막 날 답답했던 코로나로 도피도 좀 하고 가족연말회식 겸 신년계획을 환경을 좀 바꿔서 해보면 좋겠다 싶어 제주로 급 가족여행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둥실 바다를 뚫고 올라오는 성산일출봉의 붉은 기운을 타고 2021년 첫 해를 맞이했다. 숙소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새해 첫 아침식사를 하고 리조트로 천천히 걸어 돌아오는 길. 배도 부르고 마음은 평온했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길거리엔 귤나무와 야자수가 보이고, 서울보다 몇 도 낮은 온도일뿐인데, 내 마음에서 불어오는 건지 참 따뜻한 겨울 바람이 느껴졌다.
둘씩 셋씩 모였다 흩어졌다 투닥투닥 했다가 웃고 떠들며 걷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남편손을 슬쩍 잡아본다. 그가 손을 바꿔 깍지를 낀다. 그 촉감만큼 안정감, 포근함을 느끼며 아이들 뒤를 몇발치 뒤에서 걷고 있노라니 문득 가슴이 저리게 행복했다. '내가 정말 이 아이들을 다 낳았다니...' 새삼스럽고 이 새삼스러운 감정만큼 뭉클함 내 마음자리를 뜨끈하게 데우고 있는 중이었다.
넷중에 한 녀석이 막 급하게 뛰어와서 말을 뗀다.
"엄마, 이제 딱 절반이예요?"
"응. 숙소로 가는길? 그 정도 된 것 같은데..."
"아니요. 이제 딱 절반이라구요. "
"뭐가?"
"제가 앞으로 아빠 엄마랑 같이 살 날이요"
나는 주구장창 20살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한다. 여기엔 조건이 없다. 미국식 한국식이 중요한게 아니다. 이건 엄마식 (사실, 이 부분에 아빠식도 포함되었는지 내 주장에 그를 끌어다 넣은것인지는 기억이 가물..)인데 너희는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 엄마는 너희를 딱 스물살까지만 키우고 그 후로는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각자의 경제력으로 '따로 또 같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고 귀에 딱지가 않게 이야기 해왔는데.. 늘 하던 엄마 잔소리 래퍼토리중에 하나쯤으로 여기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아이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한해한해 카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욕구는 일생 동안 지속되는 인간의 건강한 기본욕구다. 이 기본욕구에 따라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일생을 약속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고도의 집중과 몰입의 에너지로 '그들의 제 2세'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다시 함께 성장한다. 이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무엇일까?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실천하면서.
나의 제 1의 육아의 목표는 '완전한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키워서 나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일이다.
세상에 100명의 엄마가 있다면 100개의 모성이 있다 했고 나는 이 자식교육의 여러 포인트중에 '독립'이라는 키워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을 육아책을 읽고 또 읽고 현실에서 깨지고 또 배우며 알게 됐다.
미국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도로시 캔필드 피셔는 '며느리'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어머니는 기대야 할 조재가 아니라 기대는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의무는 죄책감과 의존을 낳는 반면, 선택은 사랑과 자립을 키운다. 육아 초기시절, 아이들 낳고나서 그간 배워왔던 모든 인생이 찢어지고 다시 하얀 백지가 내 눈앞에 나타난 그 시절. 무엇을 그려넣어야 할지 오래도록 방황했다. 하지만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내 인생 그림보다 더 멋진 밑그림을 그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그 어떤 게으름도 나태함도 없었다. 나는 그리고 육아의 첫 단어로 독립을 '선택' 했다. 연연연생이고 하나더 있는 이 아이들을 죽을때까지 잘 키워야 한다고 하면 키우다 말고 내가 죽을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힘든 과업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려면 '마감시간' 즉 '육아의 데드라인'이 필요했던 거다. 또 아이들에게 '건전한 독립'만큼 그들을 존중해 주는 방법은 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는 그 지점, 독립하기 좋은 나이 아니 독립을 '하는 것이 당연한 나이'를 스무살을 정했고 그때부터 역산해서 우리가족이 함께 살 날은 이미 햇수로 정해졌다.
아이들이 독립할 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 정신적인 유산이다. 그 중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잘 해낼 수 있는 자신감과 그 자신감만큼의 겸허함, 그 두가지를 겸비한 인성을 만들어 세상에 내어 놓고 싶다. 자신감이란 물건처럼 손으로 건네질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부모를 바라보고 직접 체득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내가 자신감있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육아를 하면서 납득해갔고 또 내것으로 만들어갔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참 자신감 없고, 누구 앞에서 내면의 나로 당당하다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잘 키우려고 애쓰다보니 인생이 무엇인지 얼핏 알 것 같았고, 그 알음알음 속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삶을 다시 나의 중심축으로 새로 정렬시킬 수 있는 내공도 그 자신감이 데려와 주었다. '이래서 아이가 엄마를 키운다고 하는건가보다' 자주 이 말을 되뇌었다.
자신을 항상 희생하는 부모는 희생적 태도의 본보기밖에 안 된다. 아이는 부모 뒷모습을 그대로 보고 자란다는 말을 진지하게, 실질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웨인다이어의 한 문장이다. 다른 사람, 즉 자식을 나보다 우선시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희생하는 삶의 태도'를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모습을 내 몸과 정신에 씌워 '내 가 아이가 실았으면 하는 모습을 그대로 나에게 씌워.내.가. 그 모습으로 살.도.록' 노력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육아였다.
사실, 불혹이 넘었고 네아이를 낳았지만 인생이라는 것 아직도 모르겠다. 영원히 모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의 아이들의 독립도 어찌될 지 100%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느낌상 20살이 되면 모두 나와 내 남편이라는 둥지를 모두 떠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내 마음을 정비하기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한 목소리로 읊어왔는지도 모를일이다. 내 마음이 약해져서 아이들을 붙잡을까봐 내가 나에게 주입식 교육을 해 왔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크면 클 수록 독립에 대한 대화의 결도 달라진다.
얼마전에는 첫째인가 둘째가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스무살 딱 됐을때 준비가 안 됐을 때는 어떻게 해요?. 아니면 준비가 됐어도 더 살고 싶으면요?"
"준비가 안 되면 도움을 줄 수 있지, 대신 딱 1년만 더. 준비가 됐는데도 더 살고 싶으면 월세랑 생활비 내고 살면돼. 대신 이것도 딱 1년만 더" "월세는 얼마정도 생각하세요?' "그건 그때가서 다시 얘기하자."
아이들을 위한 경제적인 계획도 나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 앞으로 작게 투자도 해 두었고 비과세 통장에 매월 적금도 넣어주고 있다. 맨손으로 내보낼 계획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독립얘기 앞에 부들부들 떠는 아이들 앞에 통장과 문서도 직접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데드라인이 있는 육아는 가족전부에게 각자의 입장에서 긴장감이라는 기분좋은 에너지를 선사한다. 큰 아이 기준 9년 남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남매 몰매맞는 육아에 힘들다고 느낄 때 이 생각을 하면, 불끈 힘이 난다. 글도 마감이 있어야 잘 써지듯, 육아도 마감기한이 있을 때 더 힘내서 잘 할 수 있는 건가보다.
막내를 생각하면 13년이나 남았네, 싶지만 큰딸이 얼마전 "내가 독립할 때 막내는 꼭 데리고 나가니 엄마는 몇 년 더 벌었다' 고 해준다. 그게 현실이 된다면 정말 육아의 반환점을 돌아서 되돌아가고 있는것이다.
오롯이 독립된 부부만의 삶을 사는날. 그 큰 그림을 위해 오늘도 아이 하나하나의 세심한 작은 한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그리고 예쁘게 색칠하며 살아간다. 큰 딸이 말한 엄마의 큰 그림은 이건가보다.
"니네 엄마는 작가아 아니라, 화가다. 화가. 앗, 그런가? 그래서 화가 많은건가?" 뒷 부분은 최대한 안들리도록 작게 흘려 말했던 남편의 그 말이 이 순간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