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프로필도전 1일차입니다. -스텔라-
내 이름석자. 아니 내 필명 세글자가 딱 찍힌 책이 세상에 나왔다.
참 오래 기다렸던 날이고, 수 없이 당겨 미리 상상해 보았던 감정이며, 시크릿의 끌어당김을 하면 이루어진다하여 수천차례 적용해보고 소원노트를 빼곡히 채운 그 날 바로 그 날, '출간의 날'이다.
출간파티를 하고 싶었다. 이 모든 시간을 함께 인내해주고, 힘을 복돋아주고, 내 글을 읽어주고, 나의 글벗1호가 되어준 그와 비오는 토요일 시내데이트를 나섰다. 어디가 가고 싶냐 묻는 그의 말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어디를 간다 하면 시간대 별로 코스별로 딱딱, 특히 데이트 코스분야 전문가인 나인데 감각이 무뎌진것인지 무엇을 해도 상관없을 만큼 나이를 든건지.
"남대문시장에 가서 호떡먹자!"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에게 내린 아내 비게이션이었다. 머리속을 붙잡고 있는 복잡하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뒤엉켜 그 좋아하는 비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좋아하는 비가 내리는 차창밖에 풍경을 마음 확 풀어놓고 감상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현실이 화가 나서, 출간에 대한 생각은 그만 하기로 했다. 또 언제 비가 내릴지, 난 또 하릴없이 다음 내릴 비를 기다린다.
운전대를 잡은 그는 '내가 좋아할 만한' 까페를 목적지로 삼고 향하던 중 나의 호떡 발언에 긴급히 방향을 옮긴 모양이다. 그가 살아있는한 얄미우리마치 보조석 내 자리에 길게 엉덩이를 붙이고, 앞으로도 뗄 생각이 없는 나는 그렇게 가볍게 목적지를 기사님께 내 마음가는대로 외쳐댄다.
우산을 받쳐든 그의 팔을 한 팔로 깊숙히 끼고, 다른 한팔로는 호호 거리며 김나는 남대문야채 호떡을 맛나게도 먹었다. 그제야 눈길닿는 모든 곳, 손길 닿는 모두가 행복이었다. 1000원 받고 이만큼이나 속을 꽉 채워줘서 남는게 있을까 하는 괜한 걱정, 이 날 굳은날 그리도 길게 줄 선 손님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아놓고도 기름일하는 수고로움에 마음이 괜히 송구해지는 호떡과 그 호떡과 나를 젖지 않게 늠름하게 지켜주는 팔뚝, 그 위로 흩어지는 빗방울소리. 그리고 모처럼 부모없는 집에서 신나게 게임도 하고 자유롭게 뛰 놀 네마리의 똥강아지. 역시, 아이는 상상으로 볼 때가 가장 예쁘고 애틋하다.
그런데 이 기쁨은 사실 평소의 감정과 하나 다를바가 없다. 가끔 핸드폰을 울리며 출간축하 인사를 받을 때나 '아, 맞다. 책이 나왔지' 하고 이내 평소의 내 감정속으로 들어간다. 가만보니 나는 어느새 '이 또한 큰 의미가 없음'이라는 인생의 큰 틀에 지나치게 길들어진 슬픈 어른이 아닌가 싶다. 너무 기뻐해봤자, 이 시국이 지나면 나는 내 모양새를 지켜야 하니 더 튀어 나갈수록 돌아오는 내 수고만 고단해질 뿐이라는 늙은 생각에 빠져 내 유서깊은 첫 책의 탄생을 오롯이 축하해주지 못하는 듯. 슬펐다.
호떡을 먹고도 몇 바퀴 시장을 돌며 사람사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는 시장이 참 좋다. 어렸을 적에 가까이 붙어 살았던 향수랄까. 부모님이 시장에서 번 돈으로 우리를 먹여살렸기에 저절로 마음에 붙은 정이라고나할까. 지금은 정을 끊은 한때 '남대문 번개'를 자주 치던 정 깊었던 친구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남대문 시장에 몇 군데를 정해놓고 안경이며, 그릇이며, 시계를 구경하고 사고 팔러 자주 이곳을 드나들던 아빠생각이 났다.
자리를 옮겨본다. "이번엔 대학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주는 상징적인 감각이 있다. 나는 아무래도 이 감각을 사랑하나보다. 여기저기 연극 티켓 부스를 기웃거리다가 결국 고단해진 중년의 부부는 '마사지샾'으로 길을 텄다. 실망할지도 모르는 연극을 보느라 기립근을 쓰느니, 그 기립근을 뉘여놓고 얼마간의 돈을 드리고는 근육을 풀어줄 수 있는 곳에 돈과 시간을 쓰자. 결과적으로 그 때 그냥 연극을 봐야했다.
눈으로 봐두었던 스시집에 앉아 호적한 둘만의 식사를 마치고 '커피한약방'에 앉았다. 비 내리는 어스름한 토요일 밤의 이곳은 마치 내일 이곳에 오면 '언제 그런곳이 있었냐?' 고 되물음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질 동화속 마법의 장소 같았다. 그에게 진짜 수고많았다고 잘했냈다는 그의 나즈막한 축하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더 많은 좋은 것들을 세상에 꺼내놓으면 좋을텐데 첫 책이'몸' 얘기일 뿐이라 안타깝다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한때 집착했던 베스트셀러작가에 집착을 내려놓았다. 왜냐면 나의 소통방식은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반응은 기대하지만 그 반응에 따라 맞춤형 글을 쓰거나 나를 상대에게 맞출 의향이 없는 이가 나였다. 아니,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러고 싶은데 그럴수 있을줄 알았는데 자식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러지 못하는 나를 보고 책이라고 크게 다를것이 없을거란 생각을 못했다는게 바보스러울 정도다.
이 고생담이 책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면 좋겠고, 누군가는 나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면 그걸로 됐다. 책을 내는 과정을 함께 나눠본 편집자는 입사해서 맡은 첫 기획의 책이 내 책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괜찮은 첫작업이었다는 만족을 줄 수 있다면 좋고, 마침 이 책을 작업하면서 시작한 'PT'에 푹 빠져있다고 하니 젊은 처자에게 운동의 즐거움을 알게 했으면 감사할 일.
하지만 내겐 그보다 그냥 아직도 책 속에 내 안에 갇혀 글을 쓰고 소극적인 태도로 전방 접근 가능한 편안한 사람들과의 소통만 이어가는 삶에서, 그 안전함에서 행복을 느낀다. 인스타 댓글로 알게 된 출판사 대표가 시인이자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모든 책을 다 찾아보며 그 안에서 만난 몇 문장에 가슴이 뛴 것이 좋고, 이런 글을 쓰는 분이 만든 출판사에서 '출간제의'라는 것을 받아봤다는 뿌듯함이면 충분하다.
이것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걸까?
지나치게 결과 중심적으로, 성과만 생각하며 달려온 20년. 그렇다고 그렇다할 성과도 못 만들어낸 자괴감이 부스터가 되어 또 다음을 다음을 이어 달리게 하던 나의 삶이 그렇게 출간으로 1차 종지부를 찍는가싶다.
그 반환점에 나의 첫 책이 서 있다. 나는 비로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내가 됐다. 책으로는 그럴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런 책을 쓸 재주, 결과물에 집중할 누군가가 읽기를 원할만한 책을 쓸 재주가 없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한다. 그냥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고, 이게 돈이나 명예가 되면 더 좋지만 아니라도 어쩔수 없는 나라는 것을 힘겹게 인정한다.
처음부터 그럴수 없던 내가 '성취와 달성'을 행해 무던히도 내달렸던 총량이 끝나고 나에게도 드디어 느긋한, 공간이 있는, 여유가 생긴 40대가 오려나보다.
어제밤에 진지하게 같이 사는 그가 묻는다. 어디 아픈건 아니냐고.
생전 그러지 않던 사람이 이제 어디에 머리만 대면 자고, 예고도 없이 또 자고, 설마 이제 그만 자겠지 했는데 보면 또 자고 있다고. 나는 대답했다. "아, 자는 애기 하니까 또 졸려, 자고 싶다"
나는 그저 자고 싶다. 매일밤 자려고 눕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아릿한 고요함을 위해 하루를 산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난 자고싶다. 무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무덤에 눕는 순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일생을 찬란하게 살다 누워야 한다.
출산하거나 vs 출간하거나
이 슬로건을 내 삶의 지표로 내걸었다. 이 둘이 나를 상징하는 표어가 될 수 있으려면 출산은 할만큼 했고 출간에 남은 여생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생각보다 더 험난했다. 출산은 사실 임신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그 후로는 배 속에 아이가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절로 커진다. 그리고 때가 되면 세상밖에 나오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에 나는 응대를 해 주면 되었다. 그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비자발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와 그 기쁨인데에 만해 출간은 너무도 자발적이여야 함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글은 쓰겠는데, 책으로 나를 드러내라고 하니, 이 책에 어떤 주제를 담아야 할지도 잡히지 않고,
이런 주제로 써보고 싶은데 어때요? 라고 출판사마다 문을 두드리는 일도 너무나 지난하고 힘에 부쳤다.
어떻게 해냈는지 세세히 기억도 안나고 그저 '너무 힘들었었다.'라는 한줄을 남길 첫 결과물을 받아들고 나는 비로소 외친다. 이제는 '진짜 내 모습으로 살수 있어 행복하다' 고. 책을 내면서 저자활동에 날개를 펼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책이 나왔다고 하니 그걸로 '진짜 내 모습을' 알게 됐다. 나는 이대로 살거다.
내 영혼의 짝을 찾았고 그와 완전한 가정을 이루었고,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며 그냥 그 일을 매일 새벽할꺼라는 것. 이 새벽의 힘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곁을 내 줄 수 있지만 내 곁에 오라고 몹시도 설득하는 일은, 능력밖에 일에 더 힘쓰지 않겠노라고 다짐, 아니 이게 무슨 다짐이랄것 까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행성 B. 2021년 8월 23일 발행일
'바디프로필 도전 1일차입니다' -스텔라지음-
새벽에 블로그를 열어 큐레이팅글을 쓰는데 오른쪽에 익숙한 '글감' 버튼을 눌러 '책' 카테고리를 펼쳐둔다. 그리고 이 제목을 치고 앤터를 눌렀다.
와!!! 나온다 나와. 늘 다른 작가들의 책을 큐레이팅 하느라 눌러보았던 그 곳에서 익숙한 표지와 내 이름이 나온다.!!
신기하군. 오늘이 훗날 어떤 의미를 가질까, 첫 책을 출간한 후의 처음 쓰는 글은 어떤 글일까?
참 많이 궁금했었는데, 별반 다를게 없군.
체력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건강에 대한 마케팅말고 '진짜 동기부여'를 전하는 그런 책이 되길.
작지만 크게 마음에 힘이 되는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책이 되길.
인터넷 서점 링크를 받자마자, 제 첫번째 주문은 내 손으로 했다. 책을 보내준다고는 했지만 내가 내 책을 내 돈주고 사는 경험을 꼭 해보고 싶었다. 아직 실물이 손에 오기 전이지만.
내가 내돈주고 산 내 책을 내 눈으로 읽는 그 순간에, 어떤 감정이 다시 몰려올지.
기대반 두려움반. 이렇게 또 개학을 품은 한주의 시작을 가만히 깨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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