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는 ‘돌봄’이 필요하다
기술이 아니라 마음과 시간에 기대는 일.
나는 그런류의 일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싶다.
내가 해온 그런 류의 일은 출산이고 내가 하고싶은 그런류의 일은 출간이다.
출산과 출간을 마침내 모두 이루어 본 어느날, 나는 꿈을 이뤘다는 가슴뻐근한 뿌듯함을 기대했지 설마, 이러고 있을 나를 감히 상상도 못했다. 난 잃어버린 날개라도 달고 상공을 훨훨 나는 한마리의 새가 되어있을줄 알았지만 여전히 나는 쭈글쭈글한 일상의 한 중년 여성일 뿐이다.
성공 말고 성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성공과 성장의 차이는 그 안에 진정한 돌봄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왜 이런일이 반복되고 긴 노력끝에 꿈을 이뤘다고 하는데도 이 모양일까를 생각해보니 나는 나를 진정으로 돌보지 않고 여기까지 끌고(?)왔다는데서 이유가 찾아진다. 무력으로. 힘이 있어야 해서 힘을 다 썼다. 그리고 마침 첫 책의 주제도 ‘사남매 엄마의 바디프로필’이라는 제목만으로 부담스러운 그런책의 주인공이 됐다.
그냥 이 책을 먼저 보게 된 사람들은 생각할것이다. 참 에너지가 많고 엄청난 사람일꺼라고.
이 코로나시국에 네 아이를 키우는데, 몸을 만들고, 책을 쓴다고. 나조차도 하도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는 바람에 뭔가 대단한 줄 알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힘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모든 것을 다시 0점 초점으로 데리고 와서 새로 시작하라는 신호탄이 될 줄이야.
나는 참 궁금했다. 출산이란 엄마가 된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그래서 엄마가 되어봤고 그것도 네번이나. 이짓을 기분내려고 기분이 궁금해서 했단말이더냐?
이 무식한 인간아…를 아무리 되뇌어봐도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앞으로도 변하지 않겠지..
나는 참 궁금했다. 내 이름이 박힌 책이 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래서 책을 쓴 저자가 되어봤고 아직 계약서만 써놓고 손도 못대고 있는 건도 2건이 더 있다.
이 기분이 뭐라고 그리 궁금했을까. 안물안궁해도 되는거 아니었나. 싶게 뿌듯함말고 희안한 ‘에게??’라는 기분에 휩쌓여있다. 이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특이사항일테니 혹여나 ‘책을 낸 후의 기분은 별로라더라’는 일반화의 오류는 하지 않기를.
출산과 출간처럼 사실은 겪어나고 보면 ‘굳이 궁금할 필요 없었네’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궁금해지면 그 길을 꼭 가게 되어있다는 것을.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제고 그 길을 지나와야 할테고 가장 필요한 때가 지금이라 그 신호를 감지했을것임을
그래서 성실히 임해보려고 한다.
출산과 출간이 지나고보면 별게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걸 구할때의 절실함이 나를 이만큼 성공시켰다.
성장이 아닌, 성공이라는 사실은 속빈 강정과 같아 다시 속부터 채워야 하는 것도 이만큼이나 와 봤으니 알게 된 사실이었으리라. 그래서 또 하나의 궁금증 ‘마음의 평안’함을 향해 노력을 해본다. 방법을 몰라 전전긍긍한 나를 도와줄 사람도 생겼고, 이해해주고 적극 함께 해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궁금증을 해결하러 가는 길 그 언저리에 서 있다.
성공이 아닌 성장을 하고 싶다.
성장에 필요한 것은 ‘진정한 돌봄’임을. 여기에 도착했으니 이제 다음행선지를 바로 찾는 좌표찍기식의 여행이 아님을 네아이의 엄마가 되고 까맣고 까만 터널을 지나고지나서야 알게됐다. 현재를 완전하게 사는것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것이라 한다. 그럼 도대체 현재를 사는것이라는 것은 뭘까?
그건 어떤 결과물이 아니라 느낌이다. 진짜 내 안에 스며들고 내게 어떤 감각으로 다가와서 행동을 변화하게 하는 느낌. 오롯하게 나의 마음이 알아채는 그 느낌말이다. 이론으로는 나도 아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돌봄’이 ‘인간애’가 ‘본질’이 살아있는 그런 성장을 해보고 싶은건가보다.
과거의 아픔에 고개를 파묻고 싶거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압도당할때마다 ‘지금의 너로 돌아와라!’는 마음의 신호를 읽어낼 수 있도록. 나를 지켜주는 소원요정의 가호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