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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an 04. 2022

명리학으로 육아를 합니다.

사남매 엄마, 명리학에 푹 빠진 이야기

결혼을 했든 연애를 하든 동거를 하든 독신이든
우리 모두의 지상 과업은 자기창조이다.
-대프니 로즈 킹마-

내가 나를 알아가는 것. 제대로 아는 것. 그리고 가야 할 방향성을 알고 사는 것이 이 지구에 태어나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렵다. 그러니 난제(難題)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나름의 사투를 벌인 세월을 살다보니 어느새 40대가 훌쩍 넘었다. 가끔은 이 난제는 풀고 싶지 않다. 첫째, 너무나 어렵고 둘째, 지금 당장 이 문제를 풀지 않는다고 죽지 않는다. 내가 아침밥을 먹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땡기는 영상을 보면서 희희낙낙 하는 나의 일상에 어떤 부침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걸 또 알지 않고서는 사는것에 참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사실 많은 것을 해봤다. 연애도 할 만큼 해봤고, 방황이라면 누구 부럽지 않게 많이 했고, 나의 20대는 방황의 퍼레이드로 치면 그 누구도 이길 자신이 있을만큼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인생을 헤매이고 다니는 모든 질문에 끝엔 9살 그 어린 내가 던져놓고 찾지 못하는 질문이 있었다.



인생이 뭔데? 그래서 난 왜 태어난건데?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여태 이렇게나 흘러흘러 온게 아닌가 싶다. 막연하게 심리학과가 가고 싶었다. 사람이 궁금했고 어린마음에 심리학과에 가면 사람마음을 읽게 될 줄 알았다. 정신과 의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공부를 잘 할 자신도 그 당시에 높게만 보이던 '의사'라는 전문 직종에 나를 넣을 자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남편을 만났고 아이를 넷 낳아 키우면서 하드코어 육아를 통해 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의사가 되는 일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글을 오랜만에 쓴다. 어떤 연유에서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다시 생기기 전엔 당분간 절필'을 선언했는데 명리학이 나를 도로 글쓰는 스텔라로 만들어 놓았다.



세상에는 유명점집도 많고 명리학 전문가도 많다. 내가 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나는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함께 글을 쓰던 글벗들에게 나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지인들에게 부부관계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좀 더 좋은 솔루션, 확실한 것,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은 이유에서 시작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이전 공부는 모두 '나를 위함' 이었다. 이것도 말을 맞춰 보자면 내가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어야 호흡곤란인 상대를 도울 수 있듯이 내가 먼저 반듯이 세워져야 타인을 도울 수 있기에 나를 위한 공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 나를 위한 공부가 끝났느냐? 물으면 고개를 가로 저어야 한다. 이게 끝나야 남을 도울 수 있다면 평생 나는 할 수 없다. 아니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나를 위한 공부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생을 사는 동안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이니까.



'어느 정도' 내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이 정도면 .. 뭐.. 하는 곳까지는 온 느낌이다. 이제야 나 말고 우리 가족말고 타인들이 보인다. 내가 도울 바가 있을 것 같고, 마음을 내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가진 경험이 지금 써먹을 수 있다는 확신들이 약했다. 아이 넷 부부사이만 좋으면 그리고 엄마가 공부하면 아이 잘 키울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실제로 다 크지 않았다. 정말 뚜껑 열어봐야 알 일이다. 여태껏으로만 봐도 우리 아이들은 참 잘 크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나의 자부로 타인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학문' 내가 선택한 것은 우주의 이치를 깨우치는 이 명리학이었다. 왜 이제야 만났나 싶을 만큼 하지만 이제 만난데도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이 바로 따라온다. 너무나 사람만을 미시적으로 보아왔다. 나하나도 해결이 어려우니 너도 어렵고 이런 너와내가 만나 낳은 창조물을 키워내기란 더더욱 힘들다.



이 육신들이 속해있는 이 공간, 우주에 대한 이해가 덧되어지면 이렇게 세상을 보는 눈이 맑아지는데, 그리고 이 맑음이 실제로 내 삶을 밝혀주는 기분이 드니 이 것은 나에게만 해당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몇몇 가까운 친구들에게 임상실험을 해봤다. 결과는 대만족.

여태 갔던 그 어떤 점집보다 와닿고 실제로 일상이 조금씩 밝아진다. 이제야 자신을 바로 알게 된 것 같고 그렇게 바로 보고 나니, 남편도 덜 밉고 아이들도 이해가 된다. 여태 갔던 점집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생생한 육아현장에 있는 동시대의 엄마에게 듣는 명리학 이야기, 그리고 내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신뢰가 가서 삶이 조금 그날 이후로 달라졌다. 그런데 도대체 돈은 언제 버냐. 이동수는 있냐 없냐. 이런것까지 봐줄라면 얼마나 너의 공부가 완성되기를 기다려야 하냐.. 등등..


시작은 그랬다.

부부가 먼저다를 주창하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만나 살게 된 건지 그 원리를 몰랐다. 내가 소원노트 26년간 매일 다이어리 이런 나의 개인사적인 노력으로 모든 게 이루어졌다는 것에는 내 자신이 일단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내가 내 삶을 세워내면서 겪은 수 많은 경험담으로 누군가를 돕거나 조언할 수도 있었고 실제로 효과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내 자신에게 더 떳떳하고 싶고 더 확실한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이 욕심과 경험에 명리학이라는 학문은 정말 딱이다. 아직 깊다고도 볼 수 없고 누군가의 삶을 이렇다고 확신에 차서 얘기할 수도 없지만, 이 여덞글자가 내 몸에 들어와있다는 것. 그 큰 의미만 알아도 모를때와는 일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이런 것이 공부의 힘 아닐까..?





 


메타인지가 중요한 세상이다. 나를 바로 알고 세상을 바로 알고 이 세상에 속해 있는 나의 상황을 바로 볼 줄 알아야 그 다음 행로를 찾을 수 있다. 사람마다 나를 알아가는 방식조차 모두 다르겠지만 우주속에 속해있다는 것은 모두 같다. 그러니 이 우주의 기운으로부터 어느 한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기운과 큰 흐름을 알고 이를 활용해 최대다수의 타인들에게 이 선명한 '명리'의 안경을 나눠주는 것. 내가 참 하고 싶은 2022년의 큰 과업이자, 기쁨이다. 이 기쁜 마음으로 명리학 1일 1글쓰기를 꾸준히 이어 나가 봐야겠다.



2022년 임인년. 호랑이 기운이 솟구치는 한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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