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Jan 06. 2022

팔자에도 없는 자식이 넷이나?.

명리학으로 알게 된 나와 자식의 인연

싱글 시절부터 사주, 점집에 가면 자주 듣던 말이 있다. 그런 쪽을 신봉하는(?) 친정엄마도 자주 얘기했다. 내 사주에는 '자식'이 별로 안 보인다고...


그래서 그런줄로만 알았다. 사실, 고등학때까지 아니 위태롭지만 파릇파릇 하기는 했던 그 20살의 대학시절에도 나는 공식적으로 '독신주의자'임을 주창하고 다녔으니까, 사주에 애가 없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이 부분은 조금 확대경으로 보고 넘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정말 독신, 그러니까..
혼자 살기를 원하니?


라고 물으면, 내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솔직하게 대답했어야 할테니까..


사실, 이건 이런 내 생각을 맞추고 평생을 살 사람이란 도대체 없을거라는 지레짐작이자 섣부른 포기였다.

나는 진짜 원하는 것은 '난 안 원해. 됐어!'라고 말하면서 철저하게 자기방어기제를 쓴 것으로 지금은 해석이 된다.



그러니까, 난 독신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내 철학을 뚫고도 들어올테면 들어와봐!! 진심이라면 그 정도는 뚫어내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거만을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가지 행동과 말속에 수많은 깊고 복잡한 생각이 끄달려 나오는 나에게 신경성 여성병이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명리학을 배워보니 이게 사주팔자에 따라 내가 주되게 쓰는 오장육부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몸에 메커니즘도 꽤나 많이 이해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신경쓰이는 것이 바로 '다난성 난포 증후군' 말그대로 일반적으로는 하나여야 할 난포가 다낭으로  퍼져있어서 일반인에 비해 임신확률이 낮다는 것. 모든 것은 그렇게 '나에게는 자식복이 없다'는 쪽으로 귀결됐다.





이제.. 그럼 지금 키우고 있는 이 사남매를 설명해야 할 때가 왔다. 사주의 여덟글자는 내가 생애 최초의 폐호흡을 한 순간 바로 그때 자리하고 있던 우주의 기운과 내가 만나 빵!! 바코드가 찍힌 것이기에, 아무리 이 여덟글자를 쳐다봐도 거기엔 별다른 수가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바로 이 사남매의 씨앗주인

일호작가의 사주 여덟글자와 나와의 만남 소위말하는 궁합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 일간이 수 즉 물이라면 나를 극하고 있는 일간이 나에게는 좋은 배우자의 글자라고 한다. 토극수. 물을 극하는 것은 토. 즉 땅이다. 그런데 이 땅이라는 글자가 내 사주 여덟글자 안에 나와야 하고 일지에 깔려있거나 월지에 있어 강한 힘을 받으면 더 좋다고 한다. 나에게?? 토라는 글자? 있다! 그것도 세개나.


그러면 남편의 사주에는 자신이 극하는 사주. 즉 수의 글자가 보여야 좋은 궁합이라 한다. 어라?? 있다 그것도 두개나.


그리고 나에게 안 보였다는 그 자식의 운이 그에게는 주렁주렁 많기도 하다. 10월에 태어난 비옥한 땅이 일간인 그에게는 식신도 있고 씨앗을 뿌리면 뭐든 잘 자라는 글자들이니 당연한 이치다. 그러면 이 사남매는 결국 이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인수였던 것이고 그 대상이 내가 되었을 뿐이라는 결론..





이런 사태를 '팔자에도 없는 자식을 키운다'라고 하는 건가? 그러면 그 팔자치고는 참 사납다 할 수도 있지만 해석에 따라 복도 복도 이런 천지 복이 따로 없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당연 1000% 후자를 택한다. 아무리 곱씹고 마음끝까지 내려가 내 자신에게 천지신명에게 물어도 내가 이번 생에 가장 잘 한 일은 두딸 두 아들을 낳아 지지고볶고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 남편, 여러모로 나에게 귀인이 아닐수가 없다. 한때, 너무 생각이 없이 원재료만 좋다는 이유로 덥석 선택해 버린건 아닐까? 나 정말 이번생 망한거 아닐까? 생각도 했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잘 키워내고 보니, 이만한 멋진 요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지난 12년간의 결혼생활은 서로에게 주는 '인내의 상장'인가보다.


그는 나이 이 지랄맞음을 인내했고, 나는 그가 잘 클 수 있다고 믿고 스스로 싹을 틔워내도록 인내했다.


그 인내의 결실로 이렇게 알토란같이 이쁜 자식을 넷이나 낳고 잘먹고 잘살고 있다.



운명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당연한 것 아닐까? 운명의 여신이 있다면, 늘 자신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믿는이에게 손길을 줄것이다.


참되게 사랑했던 내 인생, 불혹이 넘도록 끝까지 믿고 따라오니 이렇게 아름다운 시기도 맞이하게 된다.



내 비록 오늘 아침에 그 사랑스러운 사남매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제발~~~ 자기 자리만이라도 좀 정리좀 하라고!!!!!" 하면서 몰상식한 엄마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안다. 이내 부둥켜 안고, 서로 쓰다듬고 만지고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100번을 말할 우리라는 걸. 그리고 이렇게 크고 있는 지금이 나의 인생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루하루라는 것을.!



명리학도 어쩌면 큰 흐름을 빼고는 모두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진리와 일맥상통하는 학문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명리학으로 육아를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