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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May 19. 2023

2.살 빠지는 마법약 어디 없나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열아홉 살,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는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했다. 물론 구체적인 방법에는 오류가 있었지만, 형태로만 보자면 그때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았나 싶다. 탄단지 비율 따위 고려하지 않은 절식 식단과 함께 오직 유산소 운동만 했기 때문에 완전히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로 나는 보조제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지금이야 '내돈내산' 후기를 필히 찾아보고 성분을 분석하며 광고에 속지 않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때는 광고에서 하는 말들을 고스란히 믿었다. “이걸 먹으면 일주일 만에 십 킬로그램이 빠집니다.”, “이걸 먹으면 당신도 소녀시대 몸매.” 너무나 믿고 싶은 말들이 아닌가. 지방을 녹여주고, 운동을 안 해도 운동을 한 효과가 나타나는 획기적인 보조제들이 정말 존재하는 줄 알았다. 아니, 존재하길 바랐다. 그러나 여러분도, 나도 알다시피 그런 보조제는 아직 이 세상에 없다. 세상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알약 하나만 먹으면 뿅 날씬해지는 약이 아직도 안 나왔다니 이상한 일이지만, 하여튼 없다.(혹시라도 그런 약이 개발된다면 꼭 알려주시길, 기꺼이 실험체가 될 의향이 있음.)

 보조제를 통한 다이어트에 몇 번 실패한 뒤로, 나는 한의원을 찾았다. 그 당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언니가 예전에 한약을 먹고 십 킬로그램을 뺐다는 무용담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술도 많이 먹고 딱히 운동도 하지 않았는데 십 킬로그램이 빠졌다는 언니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 한의원의 주소를 물었다. 시내 구석에 있는 한의원 지하주차장에서 사이드미러를 날렸지만, 살을 뺄 수만 있다면 뭐든 괜찮았다.

 한의사는 어쩐지 장인 같은 포스가 풍겼고, 저녁 대신에 한약을 복용하면 한 달 만에 7~8kg는 거뜬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당장 한 달치 한약을 결제했다. 대학생에게는 꽤 큰돈이었다. 한의사의 말대로 저녁 대신 한약을 먹기 시작하자 일주일 만에 삼 킬로그램이 빠졌다. 역시 한약이 답이었다며, 주변에도 입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나를 따라서 한의원에 간 언니도 있었다.

 순조로울 줄만 알았던 감량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 이주가 지났을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배고픔을 참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결국 한약 먹는 것을 중단했다. 한의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 의사의 말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 건 나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그땐 의지가 부족한 나를 자책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애초에 저녁 대신 한약만 먹는 것이 지속가능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그 후에도 한의원을 한 번 더 찾았다.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그때는 인바디 측정도 하고 체질 분석도 하는 등의 절차를 통해 개인에게 맞는 다이터트환을 처방받았다. 그 의사는 맛없는 한약 대신 환을 만들어줄 테니, 식후에 환을 꼭 챙겨 먹으라고 했다. 그 환을 먹는 한 달간 아주 조금 살이 빠지기는 했지만 의사의 말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일 킬로그램 정도를 빼자고 매달 몇 십만 원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한의원을 통한 다이어트는 최종 실패였다.

 내과를 찾은 것은 회사에 취직한 뒤였다. 회사 부장님의 아는 사람이 그 병원에서 약을 지어먹고 살이 엄청나게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지인'의 말에 따르면 이 약은 부작용도 없고, 밥도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어도 된단다. 마침 그 병원은 당시 다니던 회사와도 무척 가까웠다. 출근길마다 그 병원 건물을 쳐다보며, '저곳이 마법약을 만드는 곳이군.'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약을 먹고 싶었지만 주말은 대기손님이 너무 많아 초진인 사람은 방문이 어렵다고 했다. 결국 평일에 연차를 내고 병원을 찾았다. 직장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월급이고 그다음이 연차인데 두 가지 모두를 투자하러 간 것이다. 평일 아침이었는데도 오픈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샤X 오픈런처럼, 다이어트 오픈런이었다. 실제로 1층의 편의점에서 줄 서는 사람들을 위해 의자를 대여해 준다는 전단이 붙어있었다. 기나긴 줄 서기 끝에 간신히 영접(!)한 의사는 아침, 점심, 저녁을 꼭 먹고 약을 챙겨 먹으라고 했다. 다이어트인데 음식을 안 참아도 된다니, 이거구나 싶었다. 약값도 한의원보다 저렴했다.

 신나게 약을 챙겨 먹은 지 한 달째, 오 킬로그램이 빠졌지만 내 몸이 뭔가 이상했다. 이상하게 힘이 없거나, 지나치게 기분이 방방 뜨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몸무게는 빠졌지만 내가 원하는 예쁜 몸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운동을 전혀 안 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 병원에서는 운동하기를 권장하지 않았다. 다시 반복하지만, 먹기만 해도 S라인을 만들어주는 마법의 약 같은 건 없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인가 약을 타서 먹었지만 똑같은 증상이 반복되었고, 결국 이제는 그곳을 다시 찾지 않았다.

 얼마 전 다이어트약을 복용해서 간이 망가진 20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기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체중조절을 목적으로 처방되는 약들은 비만인을 대상으로 처방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상 체중, 심지어 정상 체중 아래인 사람들도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약을 처방받는다.

 절대로 약이나 보조제를 통해서 원하는 몸을 가질 수 없다. 잠시 가진 것 같더라도 그건 착각일 뿐이다. 평생 약을 먹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나는 건강한 다이어트, 그러니까 지속가능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기 위해서 운동은 필요조건이었고, 나는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다이어트여행기는 매주1회, 늦은 금요일 혹은 이른 토요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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