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제 퇴사를 곁들인_슬픔 편(중)
내 일에 분명 기쁨과 슬픔이 ‘모두’ 있었는데 '슬픔’을 말할 때 청산유수가 된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고난과 역경을)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이겨내는 강인한 인내심)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이 와중에 웃으면서 달리는 긍정)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희망을 갖고 노래도 부름)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캔디 고생많다)
- 들장미 소녀 캔디 OST (나의 해석)
들장미 소녀 캔디에게 어떤 괴로움과 슬픔이 있었는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온 국민이 다 아는 주제곡 덕분에 캔디는 내게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자'로서 내 회사 생활의 롤모델이었다. 괴롭고 슬플 때면 나는 캔디와 달리 자주 울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처럼 어느새 웃으며 극복해내고 싶었다.
더욱이 사회의 무례와 불공정과 같은 시련을 내 앞을 막아서는 장애물로 인정할 수 없었다. 편견과 차별, 쉬이 찍어내는 낙인과 가스라이팅 등 이런 온당치 않은 것들에게 승기를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매일의 전투에서 곧잘 패배하고 베갯잇을 적셨지만 먼 훗날 최종적으로는 정정당당히 승리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내가 경험하는 것은 기대와 달랐다. 공든 탑이 쉬이 무너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무분별한 낙인과 편견을 부수기 위해 수 백번 인내하며 행동으로 증명해야 했다. 진흙탕 속에서 품위 지키고자 하면 나약하고 어리숙한 것, 소신을 지키고자 할 땐 괘씸하고 별난 것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상대는 절대 다수였고 나보다 너무나 큰 권력을 갖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용을 써도 상식적으로 굴러가는 일이 잘 없었다. 오히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부정하고 그들과 비슷하게 행동할 때 이득 보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나의 캔디는 좌절을 배웠다. 우리 사회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라고 생각한 '노력과 선의, 공정과 상식' 같은 게 무력한 수단이 되자 나는 급격히 전투력을 상실했다. 싸울 수 있는 다른 방편을 알 수 없었고, 내 힘으로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되니 도망치고 싶었다. 동시에 그냥 패배를 인정하고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며 그저 연명하고 싶기도 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과 굴욕적 연명을 오가며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엄마아빠는 내게 물질적인 것은커녕 정신적인 자원도 물려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힘들 때 부모님께 지혜를 구하고 안정을 찾고 싶은데, 엄마아빠는 제 몫도 버거워 보였다. 언제나 내 스스로 이겨내고 가까스로 획득한 것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야 하니 억울했다. 그런 생각은 내가 초코우유로 점심을 때우던 학생 시절에도, 부모님 직업으로 역량을 평가당하던 계약직 시절에도 해본 적 없던 생각이었다.
그것을 자각함과 동시에 나는 스스로 링 위를 내려가야 함을 깨달았다. 내 그릇에 시련이 넘쳐흘러 부모탓을 하는구나. 캔디고 못난 자식이고 말고를 떠나 이건 이상 신호였다.
퇴사 후 읽은 쇼펜하우어의 글에서 묘한 위로를 얻었다. 내 도망(퇴사)에 저명한 철학자의 글을 변명으로 갖다 붙일 수 있어서였을까? 다만 확실한 건 범인인 내게는 사육자의 우리에서 도망쳐 제정신을 차릴 시간이 필요했다.
신은 우리에게 충분한 선을 베풀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타고난 선이 부족하다. 신이 우리에게 베푼 선으로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정도밖에 쓰임이 없다. 우리 안에 선한 성질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선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라도 내부의 선함을 지속해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략)
젊은이들이여, 돈과 명예에 한 번뿐인 삶을 팔지 말라. 돈과 명예는 부도덕한 자들과 동행하지 않는 한 그대들을 반기지 않는다. 물질과 직위는 사람의 성품을 얕은 여울로 인도하는 사막의 물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중략)
평안과 안식은 그대에게서 삶의 의지를 빼앗는 적이다. 그대의 삶이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었을 때 그대의 삶은 사육자의 의지를 따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대의 삶이 거대한 우리가 됨을 명심하라.
-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하) 편으로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