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제 퇴사를 곁들인_슬픔 편(하)
사랑하는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경제 활동을 지속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수많은 가장들이 사회에서 천부당만부당한 일들을 기꺼이 견디는 것도 내 가정을 지킨다는 긍지에 있지 않을까? 그 긍지가 무너지는 걸 넘어, 소중한 가족을 원망하는 마음이 싹트는 경험. 그것은 내가 퇴사 과정에서 겪은 가장 큰 슬픔이자 깨달음이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들의 삶도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집의 경우 IMF 때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서 이후 가난과 불화의 구렁텅이에서 온 가족이 허우적거렸다. 적은 수입으로 두 명의 늦둥이 동생과 나를 포함한 5인 가족이 생활하기에 버거운 세월이었다. 아빠까지 암투병을 하면서 늙고 지친 부모님에게 일상은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늘 다투며 불행을 호소하는 부모님 밑에서는 나는 내 존재에 대해 무거운 부채감을 키웠다.
마침내 내가 돈을 벌어 스스로 생활을 꾸리고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무겁게 쌓인 죄책감을 조금씩 덜 수 있었다. 빚을 갚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은 내게 거의 구원이었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 쓰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첫 가족 해외여행을 쏠 때, 어린 동생들의 전세금과 학원비를 보태줄 때, 명절에 꽤 두둑한 용돈을 챙겨드릴 때 나는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었다. 나는 부모님보다 편하게 많은 돈을 벌고 있었고,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이 나를 잘 키워준 덕이라 생각했다. 동생들을 도왔던 것은 내가 홀로 경험했던 막막함을 그들이 굳이 경험하지 않길 바라서였다. 단지 내가 바란 건 부모님이 더 이상 불행해하지 않고, 동생들이 작은 보탬을 받침 삼아 조금이라도 쉽게 도약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가족 중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내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고, 몹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무거운 짐에서 든든한 조력가로. 가족 내 나의 역할 변화는 내가 이 직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 덕에 나 역시 여느 가장들처럼 천부당 만부당한 일을 기꺼이 견딜 수 있었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투입할 에너지를 얻었다.
다만 나는 이 사회가 그러한 모욕과 착취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다. 내가 안정을 갈망할수록 나는 모욕과 착취에 적합한 더 좋은 먹잇감이 되어갔다. 하지만 결국 나의 인내와 에너지도 한계가 드러났고, 집착과 불안 속에서 결국 번아웃이 찾아왔다.
퇴사를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가족에 대한 내 마음에 괴이한 변화가 일었다. 가족을 향한 나의 사랑과 긍지가 어느새 타오르는 분노로 얼굴을 바꾸고 있었다. 나는 회사를 쉬어야만 하는데, 수입이 없어지면 필요할 때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면 가족의 상황이 다시 끝없는 구렁텅이로 빠질 것만 같았다. 그러자 원망하는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내가 10년 동안 애쓰는 동안 가족들은 뭘 한 거지? 왜 아직도 가난하고 (부모님은) 불행하고 (동생들은) 준비되지 못한 거야!' 꼬리에 꼬리를 잡는 원망에 사로잡혔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감정이 가라앉자 알 수 있었다. 나는 가족을 끝까지 책임지는 든든한 딸이 꼭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 지위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비겁하게 가족들에게서 잘못을 캐내려 했다. 팩트는 시키지도 않은 책임을 잔뜩 짊어지고는 혼자 아등바등하다 폭발한 것인데 말이다. 가족에 대한 경제적 도움 또한 내가 과거에 품게 된 부채감을 덜기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내가 퇴사한 후 동생들은 사회에서 용케 제자리를 찾아 모두 취직을 했다. 내가 가족 해외여행 경비를 모두 대지 않아도 삼삼오오 돈을 모아 국내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모든 걸 짊어지려 애쓰지 않자 가족들이 모두 조금씩 자연스럽게 그 공백을 채웠다. 나만 몰랐던 것 같지만 나로서는 상상 못 한 결과였다.
이런 일련의 경험은 내 삶에 새로운 신뢰를 만들었다. 가족 내에서 내가 경제적으로, 기능적으로 유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 이제는 더 이상 누가 누구의 짐이고 부채이지 않다는 믿음. 새로운 믿음들로 인해 내 삶은 경제적인 발전 없이도 사뭇 평온해졌다.
직장생활에 시달리다 못해 사랑하는 가족을 원망하고 분노에 사로잡혔던 건 참 슬픈 일이었다. 가족을 생각하며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뼈골까지 빨아먹는 사회와 그로 인한 번아웃을 맞이한 것도 슬픈 일임이 맞다.
하지만 위기라고 생각했던 일을 거쳐왔는데 내 삶은 훨씬 청아해졌다. 비 온 뒤 땅이 굳고, 무지개가 뜬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의 기쁨과 슬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