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 형성기 1) : 독서와 운동
요란한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직장생활 10년 동안 그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과 생산성, 취향을 하염없이 좇다 보니 퇴사쯤 나라는 인간은 텅 비어 있었다. 직장생활이 식민지 유사한 시기라면 그 속에서 경험한 식민지 문화라도 형성되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러지 못한 걸 보면 어지간히 안 맞았나 보다.
문화가 없는 인간은 매력이 없다. 스스로 고민하고 정제한 취향과 가치관이 없기에 자체 콘텐츠가 없다. 문화가 없던 시절 내가 업계 사람들과 만나 비싼 와인을 마시면서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수준은 처참했다. 높아 봐야 프로젝트(일) 이야기, 낮으면 업계 가십이었다. 그런 내가 별로라고 느꼈다.
또 퇴사 후 주어진 무한한 자유시간을 채울 행위 자체가 필요하기도 했다. 나는 텅 빈 내면과 시간을 채우고자 끌리는 대로 손 닿는 대로 주섬주섬 취미를 수집해 갔다.
독서는 내게 치유의 시간이다. 나는 독서를 통해 여러 자극으로 흐트러진 정신을 다듬고 나의 세계를 정돈한다. 남의 말과 새로운 정보에 쉬이 흐트러지는 나란 인간에게 주기적으로 필요한 정화 작업이다.
다만 퇴사 직후에는 평소 찾지 않았던 판타지 소설,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를 추천받아 읽었다. 잡념에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제법 효과가 있었다. 판타지 취향이 아닌 나마저 그 장엄한 세계에 어느새 심취하게 만들었다.
재능이구나 했다. 빈틈없는 세계관을 구축하고 캐릭터를 입히고 스토리를 엮어내는 대단한 재능.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창작의 고통을 겪어냈을까. 인간의 의지와 능력은 정말 무한하며 대단한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구나 감탄했다.
동시에 나는 남은 생에서 어떤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재능이 발휘되기 전에 포기하지 않는 재능이 먼저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하며 씁쓸했다.
보통은 심리학과 철학책을 주로 읽었다. 나는 이해하면 괜찮아지는 사람이라 현재 나의 혼란한 심리와 부정적인 경험들을 분석하고 객관화하는데 몰두했다. 책을 통해 내가 개인으로서 경험하고 느낀 문제들을 보편적인 인간의 희로애락으로 치환할 수 있었다. 또 그것을 미리 경험한 성현과 전문가의 지혜를 단돈 만원, 이만 원에 습득할 수 있었다.
마지막 회사를 다닌 동안은 너무 바빠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책을 그때 읽었더라면 하고 아쉬웠던 적이 참 많았다. 그래서 후배를 만나게 되면 종종 책을 선물한다. 아마 그들은 읽지 않겠지만 혹여라도 읽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
맞다, 꼰대다.
퇴사쯤 내 건강은 무너져 있었다. 체력도 약해져 있었고, 걸핏하면 여러 ~염이 도지곤 했다. 정신적 건강에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권유하는 것은 운동이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요가 : 꾸준히 좋아하던 운동이라 선택하기 수월했다. 몸을 유연하게 풀어주고 단련하는 운동. 요가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고요해서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백화점 문화센터, 동네 요가원, 지역문화센터를 모두 다녀봤는데 가격순으로 만족도가 높아 맴이 쓰렸다.
- 클라이밍 : 어릴 적부터 아슬아슬 어딘가 매달리고 건너 다니는 걸 좋아했다. 징검다리, 난간에 매달리기 같은 거. 3개월짜리 클라이밍 비기너 클래스에 등록해서 벽에 매달리는 순간 느꼈다. 예전에 그 빵뎅이가 아니구나! 어릴 적 감각과는 달리 사무직의 체형을 그대로 수용한 나의 몸뚱이는 빈약한 팔근육과 묵직한 엉덩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클라이밍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홀드에 매달려 루트를 고민하며 벽에 매달린 시간만큼은 잡념을 잊는다는 점이었다. 꽤 재밌었고 꾸준히 하고 싶었지만 겨울이 오고 클라이밍장이 멀다는 핑계로 추가 등록은 없었다.
- 등산 : 남편과의 주말 활동으로 시작했다. 에너지가 차니 주말에 나들이를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등산은 나들이 겸 체중 관리까지 일석이조의 활동이었다.
처음에는 산이 좋은지도 모르고 오기로 정상만 노려보며 올랐다. 체력이 쌓이니 서서히 찬란한 자연을 누릴 수 있었고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하나씩 정복하는 성취감도 있었다.
다만 체중 관리 효과는 없었다. 산을 내려오자마자 산채비빔밥이며, 백숙이며 그 지역 맛집을 산보다 더 열심히 탐방했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다닐 땐 만성적으로 소화불량이 있었고 밥을 반공기를 채 먹지 못했다. 스트레스받으면 살이 빠지고 종종 아프기도 해서 스우파에 나왔던 리정의 통통하고 탐스러운 건강미를 부러워했었다. 등산은 나를 ‘심리정’으로 만들어주었다. 통통하고 건강하게! 치마가 맞지 않을 때 나는 싫기도 하고 또 좋기도 하다.
돈을 벌지 않으니 집에서 내 역할을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무주택자니까 내 전문분야를 살려 부동산 경매, 바로 재테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과를 이룩하는 자는 드물지만 대다수 퇴사자의 흔한 꿈이다.)
추천받은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들으러 매주 2번 강남으로 향했다. 새로운 지식은 흥미로웠지만 경매로 돈을 버는 방법은 내 기대만큼 클린 하지 않았다. 내 기대는 일반인보다 높은 지식으로 사람들이 놓친 기회를 내가 알아보는 것이었다(환상). 이미 경매 시장은 정보의 문턱이 낮은 완전 시장에 가깝게 성숙했고, 기회라고 부르는 것들은 남의 땅 앞에 알박기를 하거나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애매한 방법이었다.
배가 부른 건지 순진한 건지 나는 남의 고혈을 빼먹거나 변칙적인 방법으로까지 돈을 벌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에 금방 흥미를 잃었다. 직장 생활에서도 가장 후회가 남는 것은 타인에게 모질게 대한 것이었더랬다.
쓰고 보니 새삼스레 퇴사 직후에 했던 활동이 주로 잡념에서 도피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잡념이 시작됨과 동시에 올라오는 자책과 불안이 싫었던 것 같다.
그게 새삼스러운 이유는 지금 내게 잡념은 별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분하고 억울하고 아쉬운 일이 끊어진 지 오래란 이야기다. 지금도 지금의 고민이 있고 나름 치열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그것을 피해 매 순간 도망쳐야 할 정도는 아니다.
어쩌면 이게 보통 수준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고난, 어느 정도의 고난은 이겨낼 수 있는 정도의 회복력. 힘든 시간을 잘 지나온 나를 오늘도 칭찬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