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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28. 2018

6펜스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과일 향 파라다이스

김현주 작가의 <FRUITS PARADISE – 색, 향을 담다> 평론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의 탈피, 휴식과 삶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 등 우리는 계속해서 파라다이스로 나아가지만 종종 길을 잃곤 한다. 실제를 흉내 낸 거짓에 휘둘리고 때로는 험악한 진실 대신 기꺼이 거짓을 선택하기도 한다. 허나 겁낼 것 없다. 우리는 이미 ‘진실’ 앞에 도달했다. 아니, 그 길 여정 모두가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중략)

매 순간 기꺼이 문을 열어 파라다이스로 떠나라. 이 과일을 맛본 사람이라면, 도착할 수 있을 테니.





<FRUITS PARADISE-adventureⅠ>, 비단에 채색, 105.0 x 78.5 cm, 2017



Ⅰ. 노골적으로 드러낸 환상의 세계는 그것의 부재를 의미하는가.     




 달콤한 향기와 오색의 과일들이 가득한 그곳은 낙원이었다. 그 낙원으로의 초대는 뻣뻣한 조화로 꾸며진 문인 <Green Paradise>를 지나 귀퉁이에 설치된 이끼로서 연출된 <The Perfume Paradise>, 화려하게 장식된 많은 과일 무더기로부터 더욱 선명해진다. 고운 비 단위에 전통의 재료와 아교를 섞어 만들어낸 물감으로 차근차근 쌓아진 작가 김현주의 작품 속 과일들이 낙원을 꿈꾸게 하고 그곳에 들어선 이들은 전시 《FRUITS PARADISE- 색, 향을 담다》속으로 빠져든다. 김현주 작가의 작품 속 과일은 익숙한 소재지만, 전혀 본 적 없는 환상의 공간에서 누군가의 안식이 될 커다란 섬이 되기도 하고 깊은 밤 꿈꾸는 작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전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전시장에 관객이 직접 참여하여 파라다이스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작품 <Feel Paradise>를 관객에게 선보였다. 


그곳에서 관객들은 오감을 이용하여 만지거나 맛보며 저마다의 낙원을 경험한다. 작가가 의도하는 파라다이스란, 동양의 낙원과 서양의 파라다이스 즉,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가 염원하는 이상향의 공간이다. 짧게나마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각자의 파라다이스와 낙원을 경험하지만, 모두가 본 적 없는 절대적인 이상향은 있을 수 없다는 보편적인 인식처럼 작가는 군데군데 함정을 설치한다. 복잡한 동양화 화법을 철저하게 고집하면서 서양화적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는 이러한 함정들과 더불어 동양화적 장치들도 적절하게 배치해두는 명민함을 통해 상기한 동서양의 두 이상향을 모두 재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Feel Paradise>,혼합재료, 가변설치, 2017

 


작품 <Feel Paradise>에 설치된 모형 과일과 조화들은 직접 만져보지 않으면 시각적으로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더구나 관객들이 파라다이스로 구현된 전시 공간에 발을 들인 순간 맡게 되는 향 역시 저마다의 인식 속에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인공적인 과일향일 뿐, ‘진짜’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화폭 안에 가득 자리하고 있는 과일의 부피와 대비되도록 김현주 작가의 작품 속 인간은 그 이상향에서 꽤 먼 곳에, 아주 작은 모습으로 표현되곤 한다. 오색찬란한 과일 앞에서 인간은 마치 다가가려 하면 멀어지는 달을 쫓는 아이처럼 매우 작아지는 것만 같다. 김현주는 어떤 낙원으로의 초대를 한 것일까.      





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두 면을 마주 보게 하자. 






“과즙이 흘러 계곡이 되고 달콤한 향기에 몽롱해지는 이곳은 바라만 보아도 황홀해진다. 비현실적인 장소인 이곳에서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던 행동을 모두 할 수 있다.”     



 김현주 작가의 이번 전시의 작가노트에서 발췌한 이 부분에서 작가는 화폭 안의 공간을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던 것들을 모두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지전능한 이 공간에서 관객들은 오색찬란한 낙원의 달콤한 맛과 향을 즐긴다. 낙원에서 기대하는 것들이란 대개 이런 것이다. 휴식과 행복, 그리고 정서적으로 완벽히 무결한 상태. 이처럼 비현실적이지만 모두가 염원하는 이상은 닿을 수 없기에 우리의 발이 닿아있는 현실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곤 한다. 쉽게 현실과 이상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등을 마주하고 함께 공존하는 이 두 세계는 평행세계처럼 한 번에 쥘 수는 없다. 그래서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주인공 찰스 스트릭 랜드는 현실의 세계를 등지고 타히티 섬으로 떠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이상의 섬 역시 그에게 영원한 삶을 선물하지는 않았다. 이상을 뜻하는 달과 현실을 의미하는 6펜스의 동전 사이에서의 균형은 소설 밖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필수적인 생존 활동이다. 그런 지독한 운명에서 위로가 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매일 밤에는 꿈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민음사에서 발간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폴 고갱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인간은 꿈꾸기에 살아간다. 물론 매일 밤 꾸는 꿈이 늘 행복한 결말을 이끌지는 않는다. 껍질을 까 봐야 떫은지 새콤한지 맛을 아는 과일처럼 늘 반복되는 불행과 행복의 확률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우리들은 그 끝에 있을 이상향을 바란다. 하지만 행복과 일상은 그저 한 걸음의 차이일 뿐임을 우리는 알면서도 그 양면이 합쳐진 자아의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쳐진다. 이제 그 두 면을 마주 보게 하자. 

 김현주 작가가 구성한 낙원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행복으로 초대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FRUITS PARADISE-adventure> 시리즈의 오색찬란한 과일들의 이상은 달콤한 색과 향으로 이 초대로의 여정을 응원한다. 그렇게 도착한 김현주 작가의 타히티 섬, 달콤한 과일의 섬 위에서 인간은 현실의 ‘6펜스’를 끌어안고 있더라도 잠시나마 행복하다. 가끔 덜 익어 씁쓸함을 맛본 들 한번 맛본 이상의 달콤함은 뇌리에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는 현실이란 고작 ‘6펜스’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하찮으리만큼 가벼운 무게의 고민이었다는 사실마저 깨닫는다. 드디어 밤의 정서가 낮의 이성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는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설레는 마음을 간직한 것처럼, 일상에서 이상향을 추구하며 사는 이들의 모든 삶에도 사랑할 순간들도 알고 보면 꽤나 구석구석에, ‘항상’ 살아 숨 쉬고 있다. 고개 들어 마주한 달콤한 과일처럼 말이다. 그것들은 이내 인간에 의해 ‘섭취’되지만, 결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는 새로운 꿈들이다. 현실의 소재인 과일로 탄생한 행복한 이상향의 공간은 일상의 행복으로 초대로서 이 상상력에 힘을 실어준다.     






Ⅲ. 매 순간 기꺼이 문을 열어 파라다이스로 떠나라.     




“인간은 누구나 ‘완벽한 행복’을 꿈꾼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행복을 위해 시작한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이로 인해 삶이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들의 표정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들의 마음을 ‘refresh’ 시켜줄 그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작가노트의 맨 앞으로 돌아가 보면 사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간단명료한 문제의식이 창작의 욕구를 자극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러한 ‘refresh’의 수혜자로서 온 세포를 열어 감상할 수 있었던 필자는 끝을 향하며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탐험자이자 화가인 김현주와 같은 인물을 다시 책에서 꺼내고자 한다. 필자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서 인용하고자 하는 부분은 놀랍게도 환상의 섬, ‘파라다이스’에 당도한 스트릭 랜드의 죽음 이후 화자가 마주한 ‘과일 정물화’에 관한 묘사이다. 파라다이스에서 죽음을 맞이한 스트릭 랜드에게는 너무나 많은 현실이 개입한다. 그의 그림의 화폐적 가치에 관하여 논하고 삶을 평한다. 허나 그림만은, 과일만은, 그 오색의 빛을 간직한 채 이상향으로 향하는 문으로 자리했다.     





“그 과일들은 지나치리만큼 탐스러웠고 열대의 향기를 짙게 풍기고 있었다. 그것들은 각자 그 자체의 어두운 정열을 소유하고 있는듯했다. 그것은 마법에 걸린 과일로, 그것을 맛본 사람이라면 신만이 알 수 있는, 영혼의 비밀과 신비한 상상들의 궁궐로 통하는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신비한 상상들의 궁궐로 통하는 문으로 향하는 것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원초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인지 스스로 대답하는 과정이 아닐까.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의 탈피, 휴식과 삶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 등 우리는 계속해서 파라다이스로 나아가지만 종종 길을 잃곤 한다. 실제를 흉내 낸 거짓에 휘둘리고 때로는 험악한 진실 대신 기꺼이 거짓을 선택하기도 한다. 허나 겁낼 것 없다. 우리는 이미 ‘진실’ 앞에 도달했다. 아니, 그 길 여정 모두가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현주 작가가 구성한 조화와 과일, 모형 그 사이에서 순간의 선택은 모두 값지다. 비록 이상향을 향해 여정을 떠난 모든 이들이 매 순간 낙원을 마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폭에 가득 찬 김현주의 과일처럼 이상향은 눈을 돌린 그 모든 곳에 있다. 그렇다. 드디어 당도한 이 글의 끝에 이르러 두 발은 현실 위에 덤덤히 자리하고 있다 한들, 김현주의 초대에 응한 순간 당신은 분명 이 ‘진실’에 답하며 또 다른 파라다이스를 향해 나아갈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매 순간 기꺼이 문을 열어 파라다이스로 떠나라. 이 과일을 맛본 사람이라면, 도착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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