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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31일까지 있다. 10월이 끝나고 핼러윈도 허무하게 지나가면서 11월이 당겨져 왔다. 내 엉덩이 밑에 있는 것 3일이라는 날짜. 정말로 눈 깜짝할 새에 3일이 지나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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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을 요약하자면, 11월 1일, 목포에서 예정되어 있던 지인의 결혼식을 방문하기 위해 31일 저녁 광주로 갔고, 1일에는 목포로 가서 결혼식을 다녀왔다. 그리고 2일인 어제는 다시 인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살면서, 아무런 의심 없이, 온전한 진심으로 서로의 안녕을 바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 좋은 일에 축하를 해주고, 어려웠던 시기를 견뎌왔던 서로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사이.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주고받는 마음에 의심할 거리를 두지 않는 사이의 사람이 친구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매일 만나지 못해도,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도 그동안의 밀린 시절을 몇 가지 털어놓기만 해도 눈시울 이 붉어진다. 친구에게 큰일이 일어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와 하루의 삶을 꿋꿋이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저 바랄 뿐이다. 우리의 조만간이 정말로 조만간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간이 이어지는 우리의 만남이 우리의 연을 빛내주기를 하고.
목포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어째서 거기까지 가야 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라고 말해야 한다. 결혼식을 핑계로 하지 않으면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거리와 마음 때문이다. 신부인 세영 언니도, 수비도 성준이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만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야 했다. 성준이가 결혼을 한다면 그땐 언니와 우리 셋이 모이겠지.
온 가족이 다 가야 하는지 그렇지 않아야 하는지 한 달 동안 결정하지 못했고, 마지막 주가 다 되어서야 모두 함께 내려갔다가 오기로 했다.
원래 결혼식의 주인공은 이야기를 오래 나누기 힘든 법이고, 수비와 성준이와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카페에 갔다. 이렇게 살았구나 저렇게 살았구나 하는 이 이야기. 우리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애석하게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렀고 우리는 다시 이별했다.
만남이 부재했던 기나긴 시간에도 왜 우리는 이토록 여전히 애틋하고, 서로를 애정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나누었던 시간이 비밀이라면 비밀이다. 우리가 각자의 일터에서 같은 일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함께 했던 시간. 우리가 같이 험난함을 거쳐왔던 시간. 그것들이 우리를 더 돈독하게 해 주었다. 죽음을 공유한 사람들처럼 죽을 것처럼 힘든 시절을 우리는 이겨냈다. 다만, 그들은 안정을 찾았고 나는 아직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다른 점이랄까.
우리는 방재안전 1 기다. 도청에 있던 세영 언니는 이번에 6급 TO가 났음에도 격무로 인해 교육을 챙기지 못해서 승진에서 밀렸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휴직 상태. 그러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다. 수비는 타 지역에 일하던 남편과 만나 결혼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청에서 함께 사나 했지만, 남편이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결국 수비도 일을 그만두고 다시 지방 행정직 시험을 보고 얼마 전 일을 시작했다. 성준이는 자신의 초임 지에서 온갖 일을 다 겪고, 도청 9급과 7급을 연달아 붙으며 지금 도청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기나긴 육아 휴직 끝에 결국 의원면직을 하고 인천에 올라와 면세점 직원으로 1년여간을 일했다.
나도 다시 공무원 시험을 보고 공무원을 해야 하는 건지, 하지면 여기서의 삶대로 그저 이어가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각 지역위 재난을 방지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하면서, 젊은 시절은 다 바쳤지만, 결국 각자의 안전은 위협받아 모두 그 자리를 떠나오고 만 것이다.
그러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서로가 애틋하고, 그저 잘 되기만을 바랄 수밖에. 살면서 한 번이라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달려가 만날 수밖에.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나의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의 조만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조만간 또 만납시다.
3
죽음
시그리느 누네즈, <어떻게 지내나요?>와
넷플릭스 [SANDMAN]을 동시에 봤다.
글을 읽을 수 있을 땐 책을 보고, 그럴 수 없을 땐 영상을 봤다. 그리고 최근 이전에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도 봤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죽음’이다.
사실 사람의 인생의 서사에 빠질 수 없는 게 탄생, 삶,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우정은 없을 수도, 사랑이 없을 수도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삶은 존재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가 아무리 짧아도 단 몇 초라도 존재하는 것이 삶이다. 모든 죽음은 태어난 것에만 주어지는 것이니까.
곧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긴 글을 쓸 수는 없다.
몇 편의 작품을 보며, 최근에 잃었던 소중한 동료를 떠올리며,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동료와 가족들을 연이어 떠올렸다. 이미 죽은 사람들을 떠올렸고 이제 죽을 사람들도 떠올랐다.
[은중과 상연] 중 상연은 말한다. 이런 죽음을 오빠가 맞이 하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그렇게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죽음을 조장하는 사회는 안 되겠지만, 아무런 선택권이 남지 않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도 주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나 또한 나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를.
4
이제는 일을 하러 가야 한다. 여기보다 훨씬 따뜻하고 긴장되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