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8 토의 기록

by 이덕준

1


어쩌면, 어쩌면 가질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2


출근하는 길에 바람이 불었다.



부는 바람에 물든 잎들이 벚꽃잎처럼 시야에 맴돌았다. 붉어서 어여뻤고, 노래서 고왔고, 갈색이라 멋졌으며 그 사이 초록한 것들이 남아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그것들이 떨어져 바닥을 수놓았다.

내일은 비가 올 예정이라,

아무리 부지런한 경비원도

속절없이 떨어진 것들이 바닥으로 스미는 것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어 잃어만 가던 가지 위는

이튿날이면 남는 것 없이 비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겨울이 온다 했다.

그날 불어오는 바람은 아무것도 떨어트리지 못한다.

겨울바람에 나부끼는 것은

그저 움켜쥔 외투 자락뿐이다.


그러니 겨울바람은 모든 계절의 것 중

가장 시답지 않다.


가을바람보다도, 봄바람보다도 매서운 것이 아니다.


나는 온통 겨울이라, 버려질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의 생이 움켜쥔

곱게 물든 잎 하나,

피어난 지 얼마 안 된 꽃잎 하나가 있다.


바람이 분다.


나는 모두 잃기 직전의 메마른 가지다.


비가 오기도 전에 바닥은 흠뻑 젖었다.




3


올해 도전했던 모든 글은

누구의 마음도 사로잡지 못했다.


아주 애틋했으나,

그렇게 쓰인 단 하나의 문장도 남지 못했다.

남겨지지 못하고 하찮게 버려졌다.


그래서 알게 됐다.


쓰레기 수거차도 가져가지 않은 나의 것이

풍화되어 사라질 때까지

영영 나의 생계가 될 수 없을 것임을.


그리하여

나는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이 몸에 붙은 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름 아닌 그 자체를 써야만 한다는 것을.


때론 길 위에서, 때론 남들이 떠난 자리에서

생의 의미를 희미하게 하는 일을 하며

그렇게 나를 빌어먹여야 한다는 걸.


올 한 해는 알려주었다.


총총히 빛나는 밤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아무것도 아닌 글을 쓰는

아무것도 아닌 나만

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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