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쓰지 못했다.
2
이틀이나 냉장고에서 묵어버린 샌드위치를 쉬는 시간에 해치웠다. 해치우고 급히 매장으로 돌아오니 극심한 갈증에 시달렸다. 목이 너무 말라서 아메리카노가 간절했다. 점심 휴게를 일찍 보내주신 덕에 지금 아메리카노를 라지 사이즈로 한 잔 사서 마시는 중이다. 마시는 중이지만 벌써 한 잔 더 마시고 싶다. 그 마음을 우선 얼음물로 달래 본다.
3
면접
면접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상견례에 가까웠던, 면접을 봤다. 면접을 보러 오신 분들의 인상이 모두 좋았고, 나를 좋게 봐주신 것도 감사했다. 그러나 그만큼 부담감이 따라왔다. 잘할 수 있을까? 어떤 기대만큼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웃음으로 마무리했지만 어쩐지 입꼬리가 무거웠던 금요일의 면접이었다.
연봉
일요일 오후였다. 전화가 올 줄 몰랐는데, 전화가 와있었다. 전화를 받으니 연봉 이야기를 하셨다. 얼떨결에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은 그 후로 깊어졌다. 돈을 보고 움직이는데 연봉은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고서 이 돈이 적절한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힘들 거라는 말.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근무
그러나 토요일도 일요일도 아무런 일도 아닌 듯이 웃는다. 오늘이 영원할 것처럼,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인 것처럼.
4
남편과 비슷한 시간을 일하지만, 나의 월급은 그의 반도 안 된다. 나는 그보다 몸을 더 쓰고 그는 머리를 쓴다. 그는 나는 그보다 덜 열심히 살았나. 나는 그보다 더 부족한 사람인가? 남편을 시기하는 것도 질투하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너무나도 보잘것없어서 슬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당수의 사람은 남편이 잘 나가면 네가 잘 나가는 거다. 혹은 남편이 잘 나가면 네가 좋은 거다. 하지만 나는 그와는 별개의 인격체로, 별개의 삶을 사는 타인일 뿐이다. 그의 성공이 나의 트로피가 될 수는 없다.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었다. 그는 기회를 찾아 잡았고 나는 가지고 있던 것조차 버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트로피 따위, 자그마한 상장조차도 없는 삶은 초라해질 새도 없이 비워지고 있다.
생의 가지치기가 이미 시작되었다.
5
연서가 왔다. 수줍은 얼굴로,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연둣빛 패브릭 가방과 같은 색의 작은 손지갑을 들고서. 나는 쓰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반겼다. 내 마음을 온전히 그녀에게 쓰고 싶어서 나의 씀을 미루었다. 그리하여 점심시간의 쓰는 시간은 여기까지다.
6
연서를 생각하면 강릉의 포글포글한 연두부가 떠오른다. 포글 하다는 단어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포근하고 폭식하면서도 뭉글뭉글 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수저로 아무리 휘저어도 나오는 것이라곤 뽀얀 국물뿐인 한 그릇의 순두부.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이 아이와 함께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온화해진다. 부드러워지고 순해진다.
뭐든 주고 싶은 마음, 언제나 응원하고 싶은 마음. 그런 순백의 마음이 샘솟는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먹는 내가 좋아진다.
이런, 연서와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7
돈을 왜 벌까. 얼마까지 벌어야 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나를 잘 돌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노후를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만큼 벌고 싶다. 돈의 효용이란 무궁무진하겠지만, 그 정도라면 벌 만큼 벌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맛보게 해 주고, 더 좋은 집에 살게 해 주고 좋은 차와 좋은 학교를 보내주는 것도 좋다.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나의 그릇에 그릇된 욕심을 채우고 싶지는 않다. 나는 늘 분에 넘치는 삶을 원해왔다. 그 마음이 사는 나를 자꾸만 지치게 한다. 얼마나 더? 언제까지? 이런 생각은 자꾸만 나를 함정에 빠트린다. 왜 살까,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생각을 하게 한다.
멈추고 싶어 다른 생각을 했다.
나는 돈을 왜 벌까. 얼마까지 벌어야만 할까.
최소한을 원하면, 주어지는 것은 모두 과분해진다. 그러니 사실 나는 늘 과분한 삶은 살아왔다. 나에게 최소한이란 나다.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울 수 있는 정도. 나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정도. 나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정도. 그 사이 커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정도.
얼마인지 환산을 한다면 머리가 꽤나 아프겠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그리 욕심낼 필요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도 나는 살 수 있다. 아무도 없어도 아무것도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 죽음의 순간에 인간적인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만 소유하고 싶다.
그 정도만, 그만큼만 나는 벌고 싶고 나는 살고 싶다.
8
부족한 글을 퇴근 후 운동을 가기 전에 조금 수정하고 조금 더 썼다. 나는 글을 위해 마음을 쓴다.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것처럼. 그러면 마음은 도리어 닳지 않고 채워진다. 쓴 만큼 채워진다. 아무래도, 정말로 글은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운동하러 갈 시간이다.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비어버린 시간만큼 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