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8금의 기록

by 이덕준

1


어깨가 아프다. 운동을 잘못한 건지, 잠을 잘못 잔 건지. 어쨌거나 뭔가가 잘못됐다는 거다. 어딘가가 아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2


쓰지 못한 날의 기록

이틀을 쓰지 못했다. 수요일엔 불편한 마음을 토로한다고 쓸 시간을 보내버렸고 목요일엔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고 쓸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지금은 벌써 일주일의 마지막 평일, 금요일이다.



3


쓰지 못한 날은 그런 날로 두고 오늘을 쓰려한다. 오늘은 아이의 참관수업이 있는 날이다. 장기자랑도 하고 수업도 참관할 수 있는 날. 남편은 연차를 내기 어렵다고 해서 미리 스케줄 조절을 한 내가 아이를 보러 왔다. 미리 준비한 흰 티와 청바지를 입고서 아이가 있다. 그 교실에 도착하기까지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아침은, 늘 바쁘니까.



아이는 6시 10분에 일어났다. 나는 간절히 더 자고 싶었고, 아이는 풍선을 뽀드득거렸다. 그 소리가 나의 잠을 방해했다. 꾸지람 아닌 꾸지람을 하고서 다시 조금 자고 일어나 아이의 옷을 챙겼다. 아이는 옷을 챙겨 입고, 책을 읽었다. 나도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샤워를 마치고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쌀 식빵에 버터를 발라 오븐에 넣고 야채를 씻고 햄을 뜨거운 물에 데치고 프라이를 3개를 만들었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요구르트 하나씩을 쥐여주고 나는 앞에서 샌드위치를 척척 만들어 냈다. 시간이 늦어 하다는 남편이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하다가 입술을 삐죽였다. 나는 그걸 봤고, 내가 쉬는 날 늘 그렇게 하듯 우주는 아빠 등교를 하고 하다는 나와 등원을 하기로 했다. 우주는 먼저 나가고 아이들이 먹은 것들을 치웠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더니 시간이 빠듯했다.


하다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뽀로로 테마파크에 또 가고 싶다고 해서, 어제 좋았던 이유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서 있지 엄마와 있어서 인지를 물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엄마랑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서운했다.

서운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감정이 퍽 상했다. 5살에게도 서운함을 느낄 수 있구나 싶었다. 그 서운함을 어떻게 표현할 지 막막했다. 아이에게 남편에게 하듯 삐친 티를 낼 수 없고, 아이에게 내 감정을 알아달라 할 수 없고 풀어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렇지만 우리는 감정에는 잘 못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풀 길이 막막한 이 마음에도 잘못은 없을 것이다.


엄마랑 있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오늘 등원은 아빠가 아닌 왜 나와하고 싶었느냐고 물었다. 하다를 데려다 주 든 그렇지 않든 우주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은 비슷했을 것이다. 나는 늘 빠듯한 시간관념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조금 화가 났다. 아이들 데려다주고 오는 40여 분은 나의 쉼이 될 수도 여유가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아니 사실 그건 구차한 이유다. 나는 그냥 하다가 나를 제일 사랑하는 줄 알았지 뭐. 그게 아니라 서운 한 거고.


언젠가 아이에게 어떤 대상으로든 나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자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건 그런 것일 테니까. 그래도 아직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어느 것에도 나의 자리를 내어줄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


서운함을 부여잡고 첫째 아이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는 주차를 할 수가 없어서 멀리 차를 대놓고 한참을 걸었다. 날은 추웠다. 손이 시렸다. 창밖으로 보이기엔 따뜻한 날이었지만 길 위에서 서보니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는 나의 집안에서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결국 문을 열고 그곳에 발을 디디기 전에는 맑아 보이는 날이 정말로 좋은 날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가 오는 날도 막상 나가보니 맞을 만한 정도인 날도 있으니까.


아이의 교문을 지나 현관을 지나 아이들의 교실이 있는 2층을 향해 올라갔다. 바글바글 부모들이 모여있다. 오늘 엄마가 오지 않은 아이는 얼마나 서운할까? 다행히 그런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우주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염려되는 부분이 온전히 다 해소된 것은 아니었지만, 우주는 너무나도 열심히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쓰고 있는 지금 코끝을 찡긋하게 된다. 코가 시큰하고 눈물이 살짝 맺혔다. 염려하는 만큼 애정한다고. 못 미더운 게 아니라 너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마치 기대의 쌍둥이 같은 감정과도 같다고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우주는 손들어 발표도 하고 큰 목소리를 내어 책을 읽기도 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우주를 보러 왔으니 수업 중에 우주를 마음껏 봤다. 무얼 하든 한 시간 동안(정확히는 40분) 아이가 하는 행동을 그저 바라보는 기회가 실은 얼마 없다. 그 기회가 있음에 감사했다. 우주의 작품을 넘겨보고 우주와 과제를 같이 수행해 보고 다시 돌아와 자리에 섰다.


우주의 수업은 ‘글’에 관한 내용이었다. 글을 의미 단위로 나누어 읽는 연습을 했다. 각각의 형태소는 모여 하나의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된다. 단어들을 모이고 모여 한 문장을 만들고 그렇게 수많은 문장이 모이면 한 편의 글이, 하나의 책이 되는 것이다.


글자를 읽는다. 단어를 읽는다. 문장을 읽는다. 글을 읽는다.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쓰기도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글자를 쓸 수 있다. 단어를 쓸 수도 있고. 그러나 의미를 가진 묶음들이 모인 문장을 쓰는 일. 그것을 글로 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멋진 일인지 다시 느꼈다. 선생님이 하려던 말과는 무관하게 딴생각을 조금 해버렸다.


아이에게 글을 쓰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쓰고 사라질 글이 아니라 내내 품고 다니다가 자랑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오늘 수업 중에 문장을 나누어 읽는 연습을 하는데 학부모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중 어떤 아이의 엄마가 도라에몽 성우였다고 했다. 아이가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던 모습. 그 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그 아이는 사실 아주 작고 말랐고 검은색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나는 그 아이가 뒤뚱 거리지만 가슴을 잔뜩 내밀고 있는 오리처럼 보였다.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워 자신의 어깨가 잔뜩 솟은 모습의 오리.

그리고 우주를 봤다. 나에게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우리 우주에게 나는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우주는 자신의 엄마를 자랑스러워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저릿해왔다.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내가 그럴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우주가 누구보다도 때로는 자신보다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랑하는 것과 자랑스러운 건 다르니까.


요즘엔 어떻게 해야 우주가 행복할지 생각한다. 행복과 비슷해 보이는 순간들을 포착해서 우주에게 펼쳐 보여준다. 지금 감정은 어때? 지금은 좋아? 지금은 행복하니?


두 번째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 우주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시작은 간단하다. 나를 사랑하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것으로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면 된다. 모든 큰 도약은 작은 걸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나 왜 벌써 초등학생 아기의 엄마고 참관수업을 참과 하고 있을까?


4




이제 곧 우주의 주산 수업이 끝난다. 우주를 데리러 가야 한다. 내일부터 이틀은 출근을 해야 하는 주말이다. 그래서 어제는 하다에게 하루를 내어주었고 오늘은 우주에게 내어주기로 했다. 내어주는 것이 익숙한 엄마의 삶.


지금 남은 쿠키와 음료를 챙겨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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