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글을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사고를 당했고(공사 중인 에스컬레이터에서 추락했다) 일주일 정도 입원 후,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아, 정말 죽어라죽어라 하는구나.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누군가 내 목을 달랑달랑 쥐고 흔드는 기분이었다.
한 가지 퀘스트를 죽어라 수행하면
또다른 퀘스트가 펼쳐졌다.
반복되는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오히려 내 스스로 조금은 관조적이 되었다.
뭐, 어쩌겠니. 지나가겠지.
그리고 뭐 달리 방법도 없다.
밥먹는 것처럼 묵묵히 퀘스트를 깨는 것 외엔.
그렇게 얼마쯤 시간을 보내고 나니 무기력이 찾아왔다.
입원했을 때 나는 보호자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고,
아이는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나는 내가 보호자가 없다는 사실보다 아이가 내가 없어도 그럭저럭 클 것이라는데 허무함을 느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이가 6살이 되는 내내 아이없이 밤시간을 보낸 적이 없고 꾸역꾸역 일하는 중에도 종일반을 보내지 않고 지금까지 끼고 돌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이는 클 것이다. 매일 피곤한 엄마를 보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병원에 멍하니 누워 있으면서, 아니 입퇴원과 여러가지 입원에 필요한 물건들을 급하게 편의점에서 구매하고 보호자없이 커다란 코스트코 짐바구니에 든 물건들을 어깨에 걸고 목발을 짚고 홀로 퇴원하던 날, 그렇게도 나를 괴롭히던 남편에게 남아있던 여러가지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감정이지만, 만져지는 것처럼 직접적이며 물리적인 일이었다.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를 그사람과도 그럭저럭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끔씩 아이를 보러오는 멀리사는 사촌을 보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드는 생각.
나 누군가를 만나도 되나?
정말 4년동안 홀로 아이를 데리고 나와 열심히 살았고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럼 이제 나도 누군가를 만나면 안되나?
누군가를 만나서 그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나는 처절한 경험을 통해 내가 벌고 나가 만든 것 만큼만 내 몫이라는 것을 안다.
아니 근데 그게 아니라, 나도 이야기좀 하고 싶다고!
나도 손톱만한 위로와 안온함을 느끼고 싶다고!
물론 남편과는 사전에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철저한 남이 되기로 사전에 합의를 했었다.
양육비와 재산분할, 면접도 이미 합의하에 정리했다.
물론, 스스로 그렇게 정당하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부끄러워 혼자 얼굴을 문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지독히도 외로울 때, 동성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위로를 얻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를 재우고 해야할 일들을 마무리하고 홀로 멍하니 거실 책상 앞에 앉아있을때.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는
막막함과 먹먹함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연거푸 찬물을 들이키고 정신을 차린다.
지금, 이 막막함과 먹먹함을 어디에라도 토하고 싶어
미친듯이 핸드폰 자판을 두드린다.
그리고 외쳐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추신. 오타와 비문이 난무함.
당신들의 막막함과 먹먹함을 나도 알고 있으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