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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찬 Dec 05. 2023

겨울의 새벽풍경이 존경스럽다.

미소로 기억되는 삶을 살기를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게 들어선 신도시다. 하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는 노지가 많다. 이 노지에는 이른 아침은 아니지만, 아직 잠에서 덜 깬 사람들처럼 안개가 기지개를 켜며 피어오르고 있다.


이곳에는 때를 놓친 것인지 어미 품을 떠나지 못한 코스모스 씨앗도 잔뜩 얼어있으며, 갈대가 언제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겨울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또, 노지를 감싸고 있던 가로수의 나뭇잎 역시 지난 계절에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생의 손을 놓지 못하고 마지막 잎새처럼 외로이 매달려 있다.


하지만 공통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거미가 그들 사이사이를 제 집 삼아 거미줄을 치고 열심히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미줄이 살며시 얼었고, 분명히 겨울을 나지 못할 것임을 알 텐데 그렇게 열심히 거미줄을 친다.


또, 지난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의 파란 하늘 아래 마치 꽃처럼 고고하게 하늘거리며 지냈을 저 갈대들과 가로수는 지난 계절에 마치 제 할 일을 다하고 욕심을 비운 것처럼 서로 호흡하는 흔들거림으로 거미의 삶의 터가 무너지지 않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그래서 매년 찾아오는 겨울이지만, 올해 겨울에는 시작 머리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밤에 맺힌 이슬로 인해 잔뜩 떨며 서리꽃을 피운 갈대와 나뭇잎 그리고, 길가의 잡초와 이들 사이에서 집을 짓는 거미가 이 겨울을 위하여 서로 격려하며 마지막까지 배려하고 있는 것 같아 존경스럽기만 하다.


물론 낙엽이 되어서도 한 장의 그림이 되고 시가 되는 자연에 경탄한 적은 많았지만, 겨울의 새벽에 갈대와 나뭇잎 끝에서 얼어버린 이슬과 거미줄이 겨울의 아침을 더 반짝이게 하고, 파란 하늘을 열어주는 것만 같아 이 역시 겨울 속 한 폭의 그림 같다.


어느 생명이든 하찮은 것은 없다. 하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장소에 갈대와 나무 그리고 잡초 위에도 거미줄을 보고 있자니, 이 있는 것처럼 서로 공존 공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끔은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어울림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겨울이 올 줄 알면서도, 또 알면서도 철없이 모른척하며 자란 갈대와 나뭇잎과 거미줄이 그래도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끼며 누군가에게 어울림의 기쁨과 희망을 줬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 생명이 다한 후에도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서 미소로 기억될 수 있다면 잘 살았다는 인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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