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에 다음에 찾아온 막내.
딸 셋을 키우고 있던 내게 막내가 찾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아들이이다. 내 눈엔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나만 그런 모양이다. 누나들 눈엔, 다른 사람들 눈엔 그저 천방지축 말썽꾸러기 남자아이일 뿐이었나 보다.
그 사실을 어제, 또다시 실감했다. 딸들을 키울 때는 어린이집이든 학교든 연락이 올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아들은 달랐다. 한글을 아직 떼지 못했다며, 위험하게 뛰어다닌다며, 여전히 한글을 모른다며 연락이 자꾸만 왔다.
‘그럴 수도 있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나이엔 다 그렇다고,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방심이었다.
그러던 어제, 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를 심하게 놀렸다는 내용이었다. 언어폭력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별말이 없었지만, 학교폭력으로 번질 수 있어 미리 연락드린다며.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늘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될까 봐 걱정했다. 차라리 가해자가 낫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피해자가 더 나은 쪽 아닐까 싶었는데.
가해자라니. 나에겐 그렇게나 사랑스럽고 어느새 훌쩍 자란 막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존재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그 어떤 쪽도 원치 않았다.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집에 온 아이와 마주 앉았다.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고. 서로 놀리며 논 거라며 엉엉 울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말은 들어주지 않고 그 친구 말만 믿는다며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진실은, 아직 잘 모르겠다.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학교이다. 누나들에게 물어보니, 둘이 늘 티격태격하며 노는 사이라고 했다. 아이들끼리는 다들 그렇게 논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별일 아니라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화를 받은 엄마 마음에는 결코 별일이 아니었다.
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더 일찍 다독이지 못한 마음, 더 살펴주지 못한 지난 시간들이 미안하고 아쉬웠다.
이 일을 계기로, 아이의 말투와 행동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저 지나가는 성장통이기를. 이 일 또한 아이가 자라는 동안의 그저 한 조각일 뿐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