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남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by HeukYi
6.


필자는 문신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sns에서 문신을 한 남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우정을 다지는 듯한 단체 사진을 한번 쯤 볼때면 미처 사진을 넘기기도 전에 불쾌감이 올라와 기분이 나쁘곤 하다. 학창시절에 ptsd라도 왔냐고 묻는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마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아마 사진을 올린 이들이 그들의 껄렁함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그 의도가 너무 선선하게 보여서 역겨움이 올라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모든 문신이 불쾌한 건 아니다. 내향적인 성격임에도 헤어 디자이너 성생님의 말쏨씨로 친해진 분이 계신데, 어느날 문득 선생님의 목줄기와 팔뚝에 타투가 눈에 띄었다. 그동안도 선생님에게 문신이 많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선생님의 문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분께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몸을 훤히 드러내놓고 문신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과 몸에 문신이 가득하지만 친근하게 느껴지는 디자이너 선생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처음에 말했다시피 전자는 의도가 역겨운 것이고 후자는 의도가 전혀 나쁘지 않기 때문인듯 하다. 즉, 겉으로 드러난 외면보다도 그것을 한 사람의 의도가 분위기 따위로 묻어나와 혐오스럽게도 보이고 패션적으로도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외면보다도 내면


작업을 위해 종종 들리던 카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딱 한 명이 아주 불쾌한 태도를 가지고 일을 했다. 필자도 나름 그가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노력했으나 그의 일하는 태도를 보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그 종업원에게는 드러난 문신 따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과 툭툭 던지는 말을 듣다보면 삶에서 마주쳤던 문신남들 못지 않게 역함이 느껴진다. 아니, 더 불쾌하다. 왜 그럴까? 외면으론 문신 하나 없는 평범한 남성이지만 그의 내면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말투 행동 분위기로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문신남들은 사진만으로 불쾌하기 짝이 없었는데, 어떤 사람은 문신 하나 없는 깨끗한 몸으로도 불쾌한 느낌을 받게 했고, 또 어떤 디자이너 선생님은 오히려 문신이 패션 처럼 잘 어울렸다. 결국 외부에 드러난 것은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기인한 것이고 한 사람의 외면을 유심히 보면 그의 내면이 어떠한지 드러나는 것이다.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성경에 전도서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성경에서는 재미있게도 마음 속으로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한다. 어찌 보면 엄청나게 깐깐한 율법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이 구절은 남이 아닌 율법을 지키려는 스스로를 위한 구절이다.


내 마음 속은 들여다볼 수 없을거라면서 나쁜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마음이 혼탁해지고 내면으로부터 부정적인 태도와 분위기가 알게모르게 외부로 드러난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일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히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상 끝날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본다. 마음 속에 품은 것은 무엇이든지 바깥으로 표출되고자 한다. 하물며 남을 업신 여기는 생각이 태도가 된다면 그것이 아니 드러날까.


그러므로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다른 모든 태도들 전에 사랑을 품어야 할 것이다. 남을 업신 여기는 마음은 결국 독이 되어 자기 자신에게 불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면을 잘 가꾼다면 문신을 하든 무엇을 하든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함을 베풀고 집단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드는 빛과 소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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