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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심 Sep 10. 2020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는 해*씨

 내가 근무하는 시설은 시골에 있다. 쇼핑하거나 영화를 보는 등 문화생활을 누리는 면에서 대도시에 있는 시설과 비교하면 열악하다. 그러한 이유로 입소를 희망하는 장애인들은 도시에 있는 시설에 입소하기를 원한다. 자연적으로 대도시 시설에서 입소 순위에서 밀려난 장애인들에게서 입소 문의가 들어온다. 즉 교사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분들의 보호자님들께서 입소를 의뢰하신다.                


 한 달 전 장애인 한 분이 가입소하셨다. 우리 시설은 정입소가 되기 전에 1개월에서 3개월 정도 시설에서 체험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 기간에는 입소를 희망하는 장애인은 ‘이곳에 사는 것이 만족스러운지?’ 기존에 사는 장애인들은 ‘새로 들어오시는 분에 대한 적대감은 없는지?’에 대해 서로 간에 탐색해보는 시간이다. 해*씨는 소리를 많이 지르시고, 침을 많이 흘리셔서 냄새가 심한 분이었다. 예전에도 그런 특성들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입소하셨기에 무난하게 적응할 것 같았다.                


 해*씨도 적응 기간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뚜렷하게 크게 나타나는 문제행동이 보이지 않았다. 한 달이 되면서 어느 정도 적응하셨다. 그전에 보이지 않았던 문제행동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이불과 생활공간에 대소변을 보셨다. 생면부지인 사람들과 생활하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며 밥을 먹어야 하는 단체생활이 해*씨에게는 힘들었으리라 짐작된다. 가족이 보고 싶은 마음과 자신이 ‘이곳에 버려진 건 아닌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을 것이다. 장소 불문하고 대소변을 보는 것이 우리가 볼 때는 문제행동이었지만 말을 못 하는 해*씨는 나름의 의사 표현이었다. 집에서는 온 가족이 해*씨 중심으로 움직이고 많은 사랑을 받다가 시설에 오셔서 적응하는 것을 힘들었으리라 생각된다.                


 ‘도가니 사건’이 터지면서 사람들은 ‘장애인 인권’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우리는 입소 체험하는 날부터 ‘앞으로 함께 살아갈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입소 예정인 장애인이 케어가 힘들어도 보호자가 입소를 원하면 ‘시설에서 끌어안고 가자.’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장애인이 입소를 거부하거나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피해가 가면 퇴소를 권한다.                


 ‘인권’이 중요시되는 대신 장애인들의 거주권과 재활 서비스가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해 개입했던 ‘행동수정’이 이제는 ‘강압’이라는 의미로 변했다. 개중에 의욕 넘치는 선생님들께서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해 힘쓴다. 그 재활이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도 당사자가 싫으면 그만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비만으로 체중 관리가 필요하지만, 당사자가 윈치 않으면 개입해서는 안 된다.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교사의 뜻대로 진행하면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그 문제로 인권위원회에 소집되는 일도 있다. 인권위원회는 시설 외부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 단원들이 주기적으로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보호자가 장애인을 보살필 여건이 되지 않아도 갈 곳이 없어도 장애인 당사자가 ‘싫다.’라고 말하면 시설에서는 서비스를 종료한다. 해*씨도 우리 시설의 ‘가족’이 되지 못하였다. 보호자님께 퇴소 절차를 밟기 위해 전화를 드렸다.  


  퇴소 회의를 할 때 ‘내 자식이 갈 곳은 정녕 없는가?, ‘내가 죽기 전 거처를 마련해 놓고 가야 한다.’며 어머니의 목소리의 떨림에서 눈가에 맺힌 눈물에서 절박함을 보았다.                


 어머니께서 해*씨에게 ‘집에 가자’는 말을 듣자마자 시설 밖으로 뛰어나갔다. 한 달 동안 살면서 ‘집이, 가족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래도 해*주 씨는 행복한 사람이다. 구박하거나 '나 몰라라’하는 보호자도 아니시고 돌아갈 수 있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장애인들도 많다. 부모가 돌아가셔서 형제들이 부담되는 존재가 되었거나 가족의 죽음으로 연고자가 없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갈 곳 없는 장애인을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입소를 받아야 하는지?, 장애인 의사가 중요한지? 에 대해 무엇이 우선이고 정답인지 모르겠다.                


 장애인들의 ‘인권’이 예전보다 민감해졌다. 그 결과 중증 장애인들의 거주권이 위협받고 있다. 인권에 대한 정책이 강화되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빈껍데기다. 어느 부분을 개선할 때는 그 문제점만 바라보기보다는 그 문제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까지 국가는 파악해야 해야 한다. 탁상공론으로 행정이 처리되지 말아야 한다. 급한 불을 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더디게 개선되더라도 서비스를 받는 입장을 들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적응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해*씨 어머님은 다시 해*씨가 안정감을 가지고 살아갈 시설을 찾으셔야 한다.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죄송하였다. 어머님께 해*씨의 거처를 마련하셔서 평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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