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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심 Sep 04. 2020

학부모가 되고 나서야 그분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4살 되던 해에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부모가 되어보니 두 가지 마음이 생겼다.


 첫 번째는 ‘장애인 엄마로서 피해 의식’이 생겼다. 한 분의 선생님께서 여러 명의 아이를 돌보다 보면 다칠 수도 있다. 아이들을 소홀하게 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생긴 작은 상처에도 전화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장애인이라 아이들까지 무시한다.’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피해 의식이었다. 나에게 향한 손가락질이 아이들에 향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나의 장애로 오는 불편한 시선’이 대물림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장애로 인해 아이들까지 놀림당할까 두려웠다. 나는 아이들이 극성스럽지도 않고 다른 아이에 비해 뒤처지는 것도 싫었다. ‘장애인 엄마 밑에 자란 애들치고 잘한다.’라는 말도 듣기 싫었다.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이목이 쏠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다. ‘장애인 엄마를 둔 아이’라는 말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아이들과 나를 서로 다른 객체로 바라봐주길 바란다. 나에 대한 편견을 아이에게까지 연장해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들의 말로 아이들이 상처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이 단단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두 번째는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로서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변했다. 시설에서 근무하면서 극성맞은 보호자들을 보면서 ‘나는 나중에 학부모가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이만 더 신경 써서 봐 달라’고 하시거나 사사건건 확인 전화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시설을 믿고 맡기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럴 때는 서운함과 ‘이럴 거면 집에 데려가시자 왜 시설에 맡길까?’라고 생각했다. 철저히 시설 입장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후 나도 그분들과 똑같이 요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전에는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보호자들이 서운한 말씀을 하실 때도 있다. 그럴 때 원장님께 ‘보호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서 기분이 나쁘다.’라고 말한다. 그때마다 '자식을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을 어떻겠냐며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직원 입장이 아니라, 보호자 입장으로 말씀하셔서 원장님께 서운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장님 생각이 옳으셨다.’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로 인해 자식과 떨어져 살면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 살을 비비며 함께 살지 못하는 그 마음이 이제야 느껴진다. 이래서 자식을 낳아봐야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고 하나 보다. 당사자가 되기 전에는 판단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7시간을 보낸다. 퇴근 후에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은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 가끔 어린이집에서 다쳤거나 싸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다친 경위나 왜 싸웠는지 전화를 주시지 않는 날에는 섭섭하다. 그 마음이 시설에 장애인을 맡긴 부모의 마음으로 옮겨간다. 우리 시설에서는 매주 보호자와 통화하기, 장애인의 생활일지를 월 1회 발송, 정기적인 보호자 모임, 명절 귀가 서비스 지원, 보호자와 함께하는 캠프 등을 진행하고 있다. 보호자 방문 및 임시 귀가도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행사들이 이루어지지만, 부모 마음은 ‘자식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궁금하고 걱정될 것이다. 어쩌면 ‘내 아이가 다른 친구들보다 선생님께 귀염 받기를 원하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었다. 부모라면 당연히 생기는 마음이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내 눈에 다 예쁘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이를 놓기 전에는 정이 가지 않는 장애인에게 기본적이며 사무적으로 대한 적도 있다. 이제는 내 아이도 어린이집 선생님께 미움받으면 속상할 것 같다. 그 생각에 정이 가지 않아도 내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부모가 되어보니 내 중심에서 주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통해 나는 성장하고 있다.


출처:https://blog.naver.com/j_oana/22033470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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