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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심 Sep 01. 2020

행복 찾아 떠난 수호씨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장애인’과 접해본 경험이 없는 분들께서 거부감이 있으실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조심스레 올려 본다.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로 편하게 읽어주길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우리는 '가족'이라 부른다. 여기서 가족은 한부모에게서 태어난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호(가명)씨는 우리 시설에서 입소 전에 일반가정에서 사시다가 들어오신 사람이다. 수호씨의 부모님은 그가 시설 입소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지만, 지체장애인 아버지와 지적장애인 형과 어머니와 살고 있다. 소위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역주민들과 관공서의 권유로 입소하게 된 경우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이다. (*지적장애인은 정신장애인과 많이 혼동하시지만 지적장애인은 지적능력이 IQ(지능지수)에 70 이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한다. 1991년에 심신장애자 복지법 관련 규정이 장애인복지법 관련 규정으로 바뀌면서 정신지체로 바뀌었고 2007년부터 지적장애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수호씨는 이곳에 거주하시는 사람들에 비해 똑똑하시다. 그래서 직업재활원에서 충분히 일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로그램 참여나 사회복귀 서비스를 지원하면 단시간에 발전 가능성이 있어 보이셨다. 그래서 난 그 당시 그에게 원하는 것을 묻지도 않고 이것, 저것 서비스를 지원할 상상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수호씨에게 원하는 욕구를 물어보는 절차도 없이 서비스를 지원한 것이 나의 큰 실수였다. 잘 적응하는 것 같았던 수호씨는 어느 순간부터 부적응한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지에 오줌을 싸는 행위, 거실에 침을 뱉는 행위, 무엇보다 사람들과 소통을 단절하였다. 그래서 난 심리족 접근으로 미술치료,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활동 지원 등을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나중에는 식음까지 전폐하였다.

 

그때 난 아차 싶어 “수호씨, 지금 하고 싶은 것 있나요?”라고 물으니 그는 간결했다. “저 집에 가고 싶어요. 보내 주세요.” 난 단순하게 ‘집이 그리워서 그런가 보다.’ 싶어서 “수호씨가 원하시면 다녀와요, 지난번 명절에 다녀오셨는데 또 가고 싶은가 봐요?”라고 물으니 그는 퇴소를 원한다고 하셨다.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그를 위해 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던가? ' 허무함과 서운함들이 밀려왔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학부 때도 대학원 다닐 때도 늘 듣던 말 ‘내담자의 의사결정이 우선이며, 사회복지사는 정보제공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도 흘려버렸던 것이었다. 그 결과 수호씨의 마음을 병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하였다. 그러나 난 그 말을 들은 후에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를 열악한 환경에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라는 이유였지만 돌아보면, 나의 아쉬움과 욕심이 컸었다. 


 결국 수호씨는 퇴소했다. 지금도 읍내를 나가면 그와 마주칠 때가 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추위에 떨면서도 아침에 나와서 저녁 늦게까지 읍내에서 방황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신다. 난 아직도 수호씨를 보면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린다. 지금은 그를 보면 가끔 우리 집에 가서 밥을 대접하고, 더러운 발을 씻겨드리고 구멍 난 신발과 더러운 겉옷을 남편의 신발과 옷을 바꿔 드리는 것 밖에 없다. 가끔 수호씨를 만나면 물어보곤 한다. “수호씨 다시 원에 가서 살까요?” 하고 물어본다. 수호씨 얼굴빛이 변하면서 “싫어요.”라고 정확히 말한다.  


 여전히 관공서에서는 우리에게 수호씨 재입소를 권유한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제시간에 밥 나오고 샤워하고 동아리 활동이며 나들이를 지원하는 것이 수호씨가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호씨는 비록 춥고 덥더라도, 배가 고파도 장터를 구경하고 사람 구경하는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할 것이다. 난 여전히 그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는 나를 보면 치아를 드려내며 씩 웃어준다. 그 미소로 인해 나의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진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인간은 모두 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선택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으므로…….



                              그림 출처:  https://m.post.naver.com/zhenghan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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