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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심 Aug 26. 2020

'엄마'라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2010년에 결혼했다. 피임을 하지 않는데도 5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장애’ 때문에 나에게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장애인이라 아이를 갖는 건 욕심이라서 주시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남편은 '아이가 생기고 안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인공수정을 원치 않았다. 그 마음은 나를 위한 배려였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원했다. 끈질긴 설득으로 인공수정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공수정 전, 친구의 소개로 수원에 있는 한의원을 찾았다. 그전에도 여러 군데 한의원을 찾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전 한의원들은 약만 처방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간 그곳은 가릴 음식, 혈 자리 누르기 등 약보다는 체질 개선 집중시켰다. 몸이 찬 내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찬 음식을 피하고 따뜻한 성질의 음식만 먹도록 권유했다. 내가 즐겨 먹던 음식들 대부분 몸을 차게 하는 음식들이었다. 나의 소울푸드인 삼겹살을 끊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한 달 후 난임 전문병원을 찾았다. 원장님의 배려로 일주일에 한 번 난포 주사를 맞거나 착상 여부 확인한 차 병원에 다닐 수 있었다. 개중에 사람들은 ‘직장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유난스럽게 아이를 가져야겠냐며’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 희비가 교차하는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어떤 임산부가 진료실을 나오면서 의사에게 ‘감사하다’며 연신 인사를 했다. 나를 포함한 대기하던 사람들은 ‘저 사람이 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심정으로 일제히 쳐다보았다. 난임 여성은 아이를 갖기 위해 희망을 품고 병원을 찾지만, 얼굴에는 초조함과 생기가 없으며 절박함이 묻어있다. 배드에 일렬로 누워서 시술할 때는 기계적으로 알 낳는 닭이 된 기분이 들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인공수정 1차에 성공했다. 한번 만에 성공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난임 병원은 시술이 성공할 때까지 다닐 계획이었다.


 나이도 많고 쌍둥이를 가져서 나는 위험군의 산모로 분류되었다. 의사의 권유로 9개월 동안 난임 전문병원을 거쳐 강남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봤다. 진료 시간은 20분이 걸리지 않았지만 3시간을 차에서 보냈다. 진료 있는 날에는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진료받았고 막달에는 배가 무거워서 누워서 다녔다.


 처음 의사 선생님께서 ‘쌍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황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입대를 앞둔 것처럼 막막했다고 한다. 자기 인생에 없던 그림이었다고 한다. 솔직히 난 쌍둥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장애인이면서 아이를 갖는 건 무책임하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쌍둥이는 더더욱 아닌 것’ 같다고 손가락질했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특히 여자 장애인을 무성욕자로 생각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처럼 생애 주기별로 살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장애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든 건 사실이다. 힘든 것과 키우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힘들다고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차별이다. 장애인 여자가 아이를 가지는 것은 모험이다. 자신의 장애가 아이에게 유전될까 봐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엄마가 장애인이면 태아 보험 가입이 안 된다. ‘약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사람에게는 한국은 불리한 나라다.


 임신하고자 마음먹을 때부터 난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내가 과연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아이를 가진 후에는 나처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을까?’ ‘아이를 낳은 후 잘 키울 수 있을까?’ ‘복직 후 아이 돌보미는 구해질까?’ ‘아이를 낳겠다는 건 순전히 나의 욕심이었을까?’ 하는 등 많은 생각을 했다.


 막달에는 자궁수축으로 입, 퇴원을 반복했다. 출산을 위해 옮긴 대학병원은 유산 확률이 높은 산모들이 따로 입원하는 병동이 따로 있다.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임신 초기 때부터 입원한 산모들도 있다. 병실에는 TV가 있어도 그 누구도 틀지 않는다. 하나같이 이를 지키고자 주수가 채워지기만을 기다리는 마음뿐이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의 공기는 개미 발자국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하고 무겁다. 코골이가 심한 남편이 다른 산모들에게 피해 줄까 봐 추운 겨울날에도 응급을 대비하여 멀리 가지도 못하고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쪽잠을 잤다.


 36주부터는 남의 도움 없이 화장실 가기가 어려웠다. 배가 점점 내려와서 방광을 짓눌렸다. 2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갔다. 누워서 자지 못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왼쪽으로 누우면 선둥이가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고 반대로 누우면 후둥이가 뱃속이 불편하다고 신호를 보냈다. 정자세로 자면 숨이 차올랐다. 결국 나는 앉아서 잘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아이들을 위해 노력했지만, 뱃속에서 후둥이에게 자리를 많이 양보했는지 태어난 선둥이는 사경이었다. 1년 동안 선둥이는 재활치료 시간을 두려워했다. 교정을 위해 몸만 만져도 아이는 자지러지게 었다. 울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기울어진 목을 보면서 내 몸집이 작아 아이를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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