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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심 Aug 22. 2020

여자만 밥 하라는 법 있나요?

 사람들은 생각할 때 나의 '장애'로 인해 시부모님께서 결혼 반대가 심했을 거라 짐작할 것이다. 장애에 대한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신 시부모님 덕분으로 결혼에 골인하였다. 결혼 허락받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있었다. 바로 요리였다. 취직하기 전에는 30년 넘게 엄마가 해주는 밥만 얻어먹었다. 취업 후 기숙사에 살아서 회사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결혼하고 보니 요리가 나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처음에는 네*버에 나오는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했다. 된장국을 끓여서 밥상 차리는 데 1시간이 걸렸다. 간단하게 상차림에도 설거지해야 하는 그릇들은 싱크대에 차고 넘쳤다. 요리는 젬병이라 할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이었다. 몇 가지 요리로 돌려막기 하거나 배달 음식으로 버텼다. '시집가면 다 한다.'라고 어른들의 말씀은 거짓말이었다.     

 

 한 번은 남편이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하여 사전 조사를 마친 후 비장한 각오로 부대찌개를 끓여 다. 끓기 시작하여 냄비 뚜껑을 연 순간 뜨악하였다. 부대찌개에 넣은 사리가 가락국수 면발보다 굵어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남의 속도 모르고 남편은 크게 웃었다. ‘비주얼은 그래도 맛은 있다’고 남편은 말했다. 라면 면발은 맨 마지막에 넣어야 하는 걸 모르고 처음부터 넣었으니 팅팅 불 수밖에 없었다.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를 쓴 줄리언 반스가 ‘레시피란 모두 근사치’라고 말했다. 요리의 초보자는 근사치에 맞춰 요리하는 건 어렵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결국 레시피는 어느 정도 음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봐야 한다.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사람에게 ‘갖은양념을 넣으세요.’에서 ‘갖은양념’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건지? ‘육수를 이용하세요.’는 육수가 멸치, 다시마, 건새우인지 알 길이 없다. 마치 낯선 외국어를 읽는 느낌이다.    

 

 사리에 충격받은 나를 보더니 남편은 제안했다. ‘요리는 자기가 하고 나머지 청소, 빨래는 내가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 제안에 동의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찜찜함이 남았다. 가사는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로서 제 역할을 못 하는 것 같아 위축되었다. 어릴 적 엄마는 가족들의 속옷까지 다림질하셨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집안일을 반의반도 안 한다. 엄마의 모습과 내 모습이 비교되었다.     


 신혼 초 나의 사고방식이 가부장적이었다. 오히려 남편이 더 개방적이다. 남편은 자라오면서 시부모님께서 가사 분담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요리하는 것에 거부반응이 없다. 그때와 지금의 내 생각은 많이 달라져 있다. 가사는 여자 몫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여자라고 해서 요리를 무조건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둘 중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 더는 내가 요리 못하는 것에 죄책감 느끼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요리만 하고 나머지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남편이 얄밉기도 하다. 간혹 내가 볼멘소리 하면 남편은 ‘가사 분담 협의는 끝났다며 재협상은 사절’이라고 말한다. 나는 약이 바짝 오른다.  우리 부부가 해결 못 하는 가사는 아웃소싱으로 해결한다. 서비스업체에 도움받으면서도 ‘내 일인데 그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과소비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또 편으로는 ‘내가 이런 곳에 돈 쓰려고 돈 버는 거야.’ 하며 최면을 건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우리 부부는 남녀 구분에 따라 가사분담이 이뤄지지 않았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역할을 나눠 생활하고 있다.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 volumeNo=17441220&memberNo=27862443&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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