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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심 Aug 13. 2020

우리 그냥 썸만 탑시다!

그와 첫 만남,

 나는 입사 후 직장 동료가 다니는 교회를 다녔다. 그 당시 남편은 군인이었고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지금의 남편은 교회를 다니는 군인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때 남편은 새하얀 원피스 입고 나타난 내 모습이 예뻐 보였다고 한다. 그는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얼마 후 그는 제대했고 포항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몇 달 후 출근했는데 그가 긴장된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아 여긴 웬일이세요?” 하고 물었다. 남편은 ‘면접 보려 왔다.’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는 농담조로 합격하면 ‘축하 기념으로 밥이나 먹어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며칠 후 남편은 우리 시설에 입사하였다.


 내가 근무하는 시설에는 기숙사 생활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시골이라 도시처럼 문화생활을 누릴 수는 없어도 우리는 나름대로 놀 거리가 많았다. 그 당시 기숙사 멤버들이 모두 다 미혼들이어서 떼거리로 몰러 다니면서 놀았다. 6시 퇴근 후에는 산으로 산책하거나 강가로 가서 고기 파티, 물놀이 등 재미있게 놀았다. 주말이 되면 기숙사에 사는 직원들은 썰물같이 각자의 집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면 지금의 남편과 나, 그리고 나의 룸메이트인 영양사만 기숙사에 덩그러니 남았다. 우리 셋은 나이도 비슷하고 셋 다 같은 동향이라 동지애를 느끼며 잘 어울려 다녔다.


 어느 날 지금의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에 삼겹살 먹으러 갈래요?” 하며 뜬금없는 문자가 왔다. 그날 남편은 자기 나름대로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였다. 나는 약속 장소에 룸메이트와 함께 나갔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다음 남편이 말했다. 룸메이트와 함께 나와서 당황스러웠다고 하였다. 속으로 ‘저렇게 눈치 없는 여자는 처음 봤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개그맨 김준현의 덩치를 닮은 그는 산책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남자가 꼬박꼬박 산책을 따라 나오는데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남편에게 거리를 둔 것뿐이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가 지금의 남편에게 다른 마음을 가진다는 게 이기적인 것 같기도 하고 욕심 같아 보였다. ‘그냥 썸 타는 기분만 즐겨보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고백을 했다. 그 고백을 받았을 때 첫 느낌은 ‘날?, 왜?’라는 생각과 장난처럼 느껴졌다. 그 고백을 듣고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설레는 감정보다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나에 대한 감정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이나 ‘동정심’을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앞섰다. 남녀가 연애하다 보면 헤어지기도 한다. 나는 헤어지는 것도 싫고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서 시작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상처는 나만 받을 것 같았다. 나는 지금의 남편에게 ‘연애만 하다 헤어지는 것은 싫다’며 거절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왜 앞서가냐며 만나다가 좋으면 결혼도 하지 않겠냐며 나를 설득했다. ‘결혼’이라는 말을 꺼내는 그에게서 진중함이 느껴졌다. 나도 결혼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다만 그것은 나에게는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평상시에 나는 ‘내가 결혼에 대해 욕심내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나와 결혼하는 남자는 고생문이 열린 것'이며, '나 같은 며느리를 들이는 시댁은 뭔 죄가 있을까?’라는 생각과 ‘연애하더라도 시댁에서 반대하면 끝’이라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였다. 


 지금 남편의 고백을 받은 후 철벽같이 닫아 놓았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이 남자, 내가 욕심내어도 되지 않을까?’라며 내 안에서 욕심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저 남자는 시설에서 장애인을 늘 소통하는 사람이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를 심심풀이로 만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머리와 다르게 몸이 움직였다. 그렇게 이 남자와 연애를 하기 시작하였다.



출처: http://www.jobnjoy.com/portal/joytip/study_fun_view.jsp?nidx=83827&depth1=2&depth2=3&depth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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