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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 Sep 23. 2023

아무튼, 폴댄스

내 직업은 쌍둥이 엄마이자 작가이자 폴댄서입니다.

나는 요즘 폴을 탄다. 맞다. 봉춤. 가능하면 고급스럽게 폴댄스라고 불러주길 바란다.

  

  폴댄스를 하면서 느낀 감정들과 차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 짜릿함을 글로 한번 적어보려 한다. 물론 나의 미숙한 어휘로는 내가 느낀 짜릿함의 1%도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폴댄스는 정말 끝내주거든.

    

  첫 폴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방금 경험한 짜릿함에 완전히 매료되어 말을 잃고 터벅터벅 걸었다. 기다란 봉에 매달려 발만 들었을 뿐인데도 너무 상쾌한 경험이었다. 옆의 폴에는 우아한 몸짓으로 하늘을 걸어 다니는 고수들도 있었다. 폴댄스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매력적인 운동이었다. 그 매력은 말과 글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좋은 것, 직접 경험해야만 알 수 있으며 한번 맛을 보고 나면 더 이상 폴댄스를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다. 일상의 매 순간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스멀스멀 스며들어 잠식하는 것. 육아에 치여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나에게 폴댄스는 그런 것이었다. '그래, 삶의 즐거움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스노클링을 하거나, 스카이 다이빙을 하거니, 패러글라이딩을 하거나 산에서 클라이밍 완등 후 하강하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폴댄스만큼 짜릿하지는 않았다.


  폴스포츠(폴댄스)는 기다란 봉에 매달려 근력과 유연성을 이용해 아름다은 동선을 만들어내는 예술이자 스포츠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발레리나 같지만 그 아름다움의 내면에 살을 찢는 고통과 부상의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폴댄스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두려움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고통을 참아내며 아름다운 포즈를 취하는 폴댄서의 이야기. 왜 폴댄서 들은 고통과 공포를 극복해 나가면서까지 폴을 타는 걸까?


  우리는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황혼을 향해 걸어가고
  살아있는 동안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시간에
  멋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순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백원달, 네이버웹툰 노인의 꿈 34화)

  그렇다. 나는 누군가의 딸, 아내, 부모, 어느 회사의 직원 직급이 아닌 나 자신으로서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오랜 시간 유연성을 갈고닦고, 피멍 위에 피멍이 들어 이제는 고통에 무뎌진 나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고작 1분 남짓의 짧은 영상뿐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나의 흔적이 있다.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의 흔적 말이다. 영상 속 나는 자유롭게 중력과 회전을 이겨내며 아름답게 하늘을 날고 있다. 영상 그 어디에서도 두려움의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이 맛에 폴을 탄다.




폴댄스를 시작하기 전, 나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고위험산모군에 속했던 나는 8개월의 임신기간 동안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고, 출산 후 2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고 쌍둥이의 육아에만 전념했다. 나는 꼽추처럼 등이 굽어버렸허리디스크가 재발했다. 한 마디로 온몸이 약해지고 굳어있는데 심지어 근육까지 다 빠진 상태였다. 설거지를 하거나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나면 허리가 아파 누워서 쉬어야만 했다. 그때 쯔음, 폴댄스가 코어강화에 좋다는 말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다. 집에서 육아만하다가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아 고민만 하고 있던 무렵에 읽었던 정세랑 작가님의 책 속 한 구절이 결정타를 날렸다.


  "병원 근처에 폴댄스 학원이 생겼는데, 내가 지난달부터 배우고 있거든, 아주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코어 근육 단련하는 데는 그만한 게 없을 거예요"

(정세랑『피프티 피플』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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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폴댄스 학원은 20대의 날씬한 여성들이 아름답게 각선미를 뽐내며 우아한 몸짓을 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많은 40대, 50대의 아주머니들이 비키니 같은 폴웨어를 입고 파워풀한 동작을 취하고 계셨다.(물론, 동네의 작은 폴댄스 학원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주름과 복근이 합쳐진 아주머니들의 탄탄한 몸매를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와, 나도 저렇게 나이 먹고 싶다." 회원들의 근육과 실력에 감탄한 나에게 원장님은 "폴댄스는 코어근육과 혈액순환에 좋은 운동이기에 여자들에게 좋을 수밖에 없고, 부상만 조심하면 나이가 먹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운동이야"라고 하셨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위로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폴댄스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폴을 양손으로 잡고 두 발을 뒤로 들어 올리는 간단한 동작을 하는데도 얼굴이 붉어지게 온 힘을 써야 했다. 폴은 근육하나 없이 살만 찐 아줌마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날 타고 싶으면 보통 각오로는 안 될 거야!" 콜. 얼마든지. 내가 너를 정복하리라.


  그 후 주 3회 꾸준히 폴댄스학원을 다녔다. 아이가 아프면 1주를 통으로 날리기도 했지만, 웬만하면 꼬박꼬박 출석도장을 찍으며 열의를 불태웠다. 90도는커녕 70도도 겨우 벌리는 나는 부족한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2주 만에 다리 찢기> 스트레칭을 매일 따라 했고 3개월 뒤 다리 찢기에 성공했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나자, 내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보, 복근 생겼는데?"

  "어머, 정말!"


  오롯이 폴댄스 하나만으로 복근과 등근육이 생겼다. 근육 하나 없던 아줌마였던 내게 갑자기 복근이라니? 그것도 단 5개월 만에?!! 젊은 시절 그렇게 윗몸일으키기를 해도 생기지 않던 복근이 이렇게 쉽게 생기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폴댄스. 말 그대로 봉 잡고 매달려서 춤만 추었는데 근육이 붙었다. 그때부터 나는 '폴댄스 전도사'가 되었고, 이 운동을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11자 복근이 생긴 후 자극을 받아 단백질 셰이크와 식단까지 병행했다. 식단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복근이 쪼개지는 것이 눈에 보였고 이렇게 생긴 복근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유연성도 길러주고, 살도 빼주고, 근육도 붙어서 기초대사량을 높여주고, 예쁜 폴웨어를 입고 찍은 영상은 어디 자랑하기 좋아 건강하고 예쁘게 나이 먹을 수 있는 운동인데 이렇게 좋은 폴댄스를 다들 왜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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