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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Nov 22. 2020

너는 아주 큰 귀를 가지고 있구나.

만드는 거 관두고 살고 싶어(./?)

 4주간 머물었던 포틀랜드에서는 주중에 ESL 영어 수업을 들었고 그중 하루는 봉사활동을 가거나 현장학습을 가는 등의 체험학습이 껴있었다.  번은 보육원을 방문했는데, 나는 말도  못하는 아주 어린아이들 반에 배정됐다. 한창 블록놀이를 같이 해주고 간식을 먹이고 나니 아이들을 모아 두고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 책의 줄거리에 대해선 아주 상당한 기억의 왜곡이 있을  있으며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당시로 돌아가 사실을 알고 보면 내가  동화를 새로 지었다고 판명 나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의 정확도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 교실에 있던 장식, 나무와 숲이 많은 오레곤

 여러 가지 동물 친구들이 나오는 이야기였는데 그중에  명만 엄청  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책 안에서도 선생님이 등장했는데, 아이들의 각기 다른 귀를 서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동물  동물 차례가 지나고 귀가  아이의 차례가 되자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뜨끔하는 기분. 하지만 “너는 귀가  크구나."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아이들이 모두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나는 괜히 눈물이   같은 기분이 되었다.


 나는 20살이 넘어서도 나의 아주 작은 다름을 들킬까  매번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이제야 아주 조금씩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인  같은데,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그림책을 읽어줬는데 그때의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방대한 것이었거나 단순히 내가 기억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만.

Beautiful

 보육원은 봉사활동의 일부였고 어떤 날엔 다운타운으로 초등학생들처럼  같이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견학을 가기도 했다. Zadoc 우리에게 그날 하루 동안 신기하거나 기억에 남는 것들을 찍어오라고 했다. 나는 쇼핑몰 안에서 걷다가  화보를 보고 멈춰 서야 했다. 옆구리살이 접혀있는 저런 화보가 어떻게 저기에 걸려 있을까?


 멈춰 서서 계속 바라봤다. 그러면서 떠오른 끊임없이 제단 하던 나의 몸매, 몸무게, 얼굴, 인맥, 인기, 무엇을 하건 간에 절대 충분할  없었던 시간들. 책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던 내가 지나치다가 저런 광고들을 발견할  있었더라면 그런 시간들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글쎄, 그리고 아마도.

하프프레임으로 촬영한 포틀랜드 다운타운

 이처럼 미국은 여러 가지로 한국과는  다른  같았지만 한편으론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그리 다르지도 않았다.  주간 다양한 미국인들을 인터뷰하면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피티를 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세대에 대해 주제를 잡고 World War 2 세대인 로레타 할머니부터, 에릭과 같은 베이붐 세대, 내가 속한 밀레니얼들을 인터뷰하면서 한국의 세대들과 비교하기로 했다.


 나의 부모 세대쯤 되는 어른들은 우리가 버릇없고 응석받이로 자랐으며 조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세대인 밀레니얼   명은 부모 세대 때처럼 집을 사거나 직업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트럼프 지지자였던 로레타 할머니는 우리나라가 '경제 대통령' 뽑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주 비슷한 이유들로 그를 지지했다.

로레타 할머니의 집

 어느 날은 할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수다를 떨다가 우리는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냐는 그녀의 질문에 고민을 하다가 아마도 그다지 주목받고 싶지 않고, 수업이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인  같다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여기도 그다지 다르진 않다고 이야기했다. 주목받고 싶지 않아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국에도 있다고.


  Forever 21 옷을 자주 입던 나는 미국에서   옷들이 학교와 길거리에서 그리고 가끔 놀러 가는 몰에서 입기에 은근히 튀는 옷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의아했다. 옷과 관련해서 할머니의 딸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있는데, 그녀의 딸들도 대학시절에 시선이 불편해 노출 있는 옷을 입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이야기도 들을  있었다.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있었던 할머니와의 수다시간. 앞좌석에 앉아 벨트를 타고 이상하게 화가 많은(?) 아저씨의 라디오를 들으며 장을 보러 가며 떠들던  시간들이 그립다.

맑은 하늘과 구름, 그림이 넘쳐나던 도시

 내가 짧은 시간이나마 경험한 미국은 우리나라와 180 다르지 않았다. 내가 인터뷰한 밀레니얼 헤일리는 청년 실업에 대한 나의 질문에 경제 불황을 지나친 지금은 조금 괜찮은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Some people just choose wrong major."라고 대답했다. 나는 "Like Art?"라고 말했고 그녀는 "Exactly."라고 답했다. 그녀의 명쾌한 대답에 나의 과를 통폐합시킨 사람들이 떠올랐다.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나온 미국에서 면전에다가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되니 쓴웃음이 지어졌다.


 완벽한 유토피아가 있을  없다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라탔지만  안에 간질거리는 희망과 지푸라기를 잡고 싶어 하는 순진한 마음이 없었을  없다. 하지만 그런 포부와는 다르게 정작 나는  곳에서의 생활의 새로움과 즐거움에 잠식되어 나의  따위  포기하고 그저 '살고 싶다' 생각만 가득  돌아오게 됐다. 미국에 가서 2n  만에 처음으로 마음의 집을 찾았다며.


 나의 큰 귀가 거슬리지 않으면 나는 뭔가를 만드는 일을 멈추게 되는 걸까. 사실 나는 살고 싶지 뭘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지 않을까? 잠시나마 집을 찾고 나니 아무것도 상관 없어졌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던 ‘꿈을 쫓던 나’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나만의 집이 되어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로도 몇 번 그 사실이 너무 외로워서 자주 여행을 떠났다.

한번도 들어가보지 않은 건물들 멀리서 그렇게 스치듯 마음에 눈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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