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후회들이 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성향과는 다른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일상 속에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우울함, 화남의 연속을 지내오며 ‘세상사가 다 그렇지 않겠어?’, ’다 이렇게 사는 거지.‘라는 영혼 없는 통상적인 말로 나의 감정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냥,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시간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지는 거야.' 하며 나의 인생과는 관련 없는 도파민 자극이 가득한 콘텐츠만 소비하면서요. 그런 콘텐츠들을 볼 때만 즐겁고, 그걸 보지 않을 땐 우울해졌습니다. 그때서야 위험성을 감지했던 거죠.
아, 이거 큰일 났다. 나의 중심이 없구나. 내가 나의 감정에 끌려다니고 있구나. 나의 감정의 원인을 돌보려 하지 않고 그냥 일시적인 쾌락만 찾아다니고 있었구나. 나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은 채, 타인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하면 되지.'란 마음으로 살아온 나, 이렇게만 살다가 늙어버리면 엄청 억울할 거 같은데? 아 그럼, 지금부터 난 어떻게 해야 할까.
(2025년 8월 어느 날 쓴 일기)
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먹고살기만 했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나 또한, 그 세월 속에 어영부영 살아가네. 세월을 붙잡을 순 없고, 뭐라도 붙잡고 싶은데, 잡을 수 있는 거라곤 나의 ‘생각’뿐이네… 나에게 어떠한 영감이나 단상을 갖게 해 준 ‘아무것’들이 빨리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천천히, 오래 곱씹어보고 싶어졌어. 흔들릴 때마다 그걸 찾아보며 마음을 잡도록.. 그렇게 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은 역시, 자신의 생각을 다듬은 ‘글’이겠구나. 그렇게 ‘두고두고’ 꺼내어 보며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보자. 이건 정말 남 눈치 보지 말고 해 보자. 그렇게 하다 보면,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이 자연스레 생길 거고, 그렇게 나의 정체성이 정립될 수 있지 않을까…
전 최근에서야 나의 기준이 아닌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애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흔들리며 살다가는 정말 이도저도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저는 제 자신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읽으며, 반추하고 성찰해 보는 시간을 꼭 갖도록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글로 남기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겠다는 생각도요. 최근에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적어둔 짧은 코멘트들을 돌아보니, 대부분이 ‘후회’와 닿아 있었습니다. 후회란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치는 것’인데, 그 말만 들어도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아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향, 생각,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여러 환경, 상황 등에 대한 변수도 많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복잡 다변한 사회에서 후회하지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후회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안 드시나요?
‘후회’라는 게 자신이 직접 경험해 봐야 깨닫는 일인데요. 우리가 하루를 살아도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나요? 고민만 하면 좋게요. 고민하고 선택하면 응당 그에 따른 결과는 필히 나옵니다.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겪은 후에 후회할 수도 있고, 그 결과를 겪기도 전에 과정 속에서 이미 후회를 할 수도 있죠.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그 선택을 한 것도 나, 그걸 후회하는 것도 나.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때 그 상황, 그 시기, 그때의 감정에 따른 선택을 한건 나이기에, 그 순간의 나를 부정할 순 없습니다. 아무리 과거일지라도, 지금의 내가 봤을 때 한심했고, 모자라고, 안타까운 선택이었을지 몰라도요.
'후회'는 나의 잘못에 대한 부정이 아닌 만큼, 나의 과거를 지우는 일도 아닙니다. 그때의 나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나'를 인정하는 ‘후회’를 통해, 나의 생각이 변하고 단련되며 발전할 수도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내가 발전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들을 줄지어하다 보니, ‘후회’라는 단어가 그리 부정적인 단어로만 느껴지진 않네요. 꼭 그렇게 슬프고, 안타까운 그런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후회를 하지 않는 삶은 너무 재미없을 수도 있습니다! )
‘후회’를 한다는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 후회할 일이 생긴다고 해서 자존감이 떨어진다거나 우울해지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나의 그 ‘후회’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며, 내가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는 건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저에게 있어서, 후회되는 일이 많을수록 그것에 대한 애석함보다는 귀중함으로 다가올 거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글로 남길 수 있는 재료들이 그만큼 다양 해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