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후회들과 함께할 여행 계획 짜기

나를 갉아먹는 내 안의 악마와 마주하던 날, 시작되었다.

by 두고두고

사실, 나의 수많은 후회의 단서들을 마주하게 된 건, 2025년 8월 어느 날이었다. 한창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던 탓인지, 누군가 툭 하고 건들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할 정도로 우울한 상태였다. 그 우울감 중 상당 부분은 나의 기질과 맞는 일을 하고 싶은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감정이었다. 특히, TV나 유튜브 등에서 자신만의 전문성을 길러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젊은 사람들을 볼 때, 나 자신이 하염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일찍 찾아서 멋지게 해내는 젊은이들이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이런 감정들이 생기면서, 점점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내 안에 알 수 없는 분노와 짜증이 생기면서 나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위험을 감지한 나는, 집에서 나와 오롯이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장소로 가야 했다. 나 혼자만 가는 게 아닌, 나보다 더 연륜 있고 지혜로운 작가님 한분과 함께. 나는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쓰신 임상심리학자이자 작가인 ‘메리 파이퍼’의 책을 선택했다. 왜 이 책이었을까? 우선, (나의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는 상태였기에) 내 인생이 한심해지긴 싫다는 의지가 담겨있었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불순한 마음 없이 내가 제일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면, '글쓰기 활동을 해야지.'라는 생각도 강했다. 그래서 그 당시, 이 책을 자연스럽게 선택했던 것 같고, 결과론적으로는 이 책을 선택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 후회의 단서들을 찾게 해 준, 그리고 나 자신을 돌볼 수 있게 해 준, 아주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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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글 막힘은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봄으로써 체계적으로 풀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악마를 키우고 있지만 구원의 길이 영 까마득한 건 아니다. 비결은 악마로부터 달아나는 게 아니라 직접 대면해서 원하는 목적지로 이끄는 데 있다. 악마를 직면했을 때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다면, 그는 약해지고 우리는 강해질 것이다. 이 비결은 비단 글쓰기에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114p)


이 책을 읽으며 또 나 자신에 대해 하나씩 짚어보았다. 내가 스스로 만든 상처, 어느 누구도 치료해 줄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오직 나만이 내 상처에 대해 잘 알고, 잘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어차피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되는 건 나 자신이니까. 나의 문제, 나의 오점을 회피하고 무시할수록 더 곪아지게 되는 거라고. 피하지 말고 인정하고 직시함으로써, 이 고름을 터뜨리고 새살이 돋게 해야 한다고. ‘과거’의 나에서 내가 변하고 싶은 ‘나’로.


[내면의 어둠을 인정하고 다스리기] 나는 끔찍한 행동이 무지에서 비롯된 미숙함의 표현이라는 불교의 개념에 공감한다. 벨 훅스는 이렇게 썼다. “모든 끔찍한 일은 사실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무력한 무엇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안으로 곪아 터진다. 어두운 감정을 무시하면 중독과 폭력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 세상의 온갖 흉측한 행동은 대부분 자신의 어두운 감정으로부터 도망쳐서 생겨난다. 심리치료사와 작가는 어두운 감정을 다루는 첫 단계로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애쓴다. (137p)


바닥이 된 나의 자존감을 직시하고 싶다. 그래야만 이 무기력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심리가 왜 이러는지, 내 삶이 변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내가 여태까지 살며 행했던 문제 및 실수들을 되짚어보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내 문제를 직시하고 변해야만 한다.


이 날, 나는 나의 후회들과 여행을 떠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후회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캡처하여 단서이자 단어로 메모를 해두었다. 내가 반추하며 찾아갈 후회 여행지들이 몇 군데가 될지 정확하게 가늠할 순 없지만, 그 여행 과정이 결코 불행하진 않을 것이다. 그 후회들이 있기에, 내가 이 글을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내 안을 갉아먹는, 그 어두운 감정을 인정한 다음, 회복시킬 유일한 수단으로 나는 ‘글쓰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나에게 최고의 치유책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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