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워지는 삶
비워야 채워짐을 저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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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 녀석들과 매주 마주칩니다.
우리 회사는 사무실 3층에서 문화센터를 운영해요.
월요일 오후는 노래교실이 있는 날.
대부분 70세를 훌쩍 넘기신 할머니들입니다.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매주 돌아가며 음식을 해 오시고
수업 중간에 나눠 드시며 웃음꽃을 피우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처럼,
항상 우리 직원들 몫까지 따로 챙겨 주세요.
그럴 때마다,
부담스러워도 내색하지 못하고
감사히 받게 되고요.
‘언젠가는 꺼내 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날짜 라벨을 붙이고 냉동실로 직행하는 그 녀석은, 떡입니다.
오늘,
선물 받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넣으려고
냉동실 문을 열었거든요.
눈동자를 가득 채운 건,
빈틈없이 빽빽하게 쌓여 있는
백색 사각형의 탑.
그 정체는,
버려야 할 떡일까요,
거절하지 못한 마음일까요.
먹지 않을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정성이 고마워서,
거절하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한 그것들은
냉동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
생을 마감하였고
그곳은 떡들의 공동묘지가 되어 버립니다.
정작 들어가야 할 케이크도,
그 틈을 찾지 못하고 녹아내리면서
급하게 이별을 고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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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우리 냉동실만의 풍경만은 아닌 거 같아요.
당신도 혹시,
호시탐탐 발등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덩어리들을
정성껏 쌓아 두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작 담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넣을 여백은 없이,
'언젠간'하면서 비우지 못한 채
꽉 차있는 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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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해 봤어요.
‘우리의 감정도 그렇지 않을까?’
희망고문 같은 미련들.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들.
이젠 관성으로 유지되는 관계들.
무작정 받아
마음속 곳간에 쌓아두기만 한다면,
결국 상해버린 마음이
지금의 나를 무겁게 짓누르게 될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비워 놓아야,
지금 필요한 감정,
따뜻한 관계,
지금의 나를 위한 것들이
이미 자리 잡은 것들과
충돌 없이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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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할머니들의 정성도
감사의 마음으로 정중히 사양해야겠어요.
오늘도, 마음의 채는
삶의 무게를 조금씩 걸러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