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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기에 삶을 버텄다.(2)

1부는 기억, 2부는 기적같은 이야기

by 감성반점

제목: 잊었기에 버텼다 (2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코치 옆 그늘에 다소곳이 누워 있었다.

주변 말에 따르면,
공을 맞고 벌떡 일어난 나는
아무 말 없이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고 한다.

"괜찮냐?"는 질문에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상황에서 119에 신고한 사람도,
병원에 데려간 사람도 없었다.
그 시절 무모할 정도의 용감함이란…

그런데, 놀랍게도
그 데자뷔 같은 일이 한 번 더 벌어졌다.

이번엔 좌익수와 부딪혔다.
포지션만 달랐을 뿐,
나는 또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두 번째 헤딩으로
내 기억세포 일부는 영영 나의 뇌와 작별을 고했다.

무승의 4강 신화

우리 5학년 멤버는 전력이 막강했다.
6학년 위주의 팀들과도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지난겨울 동계훈련을 소홀히 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운이 나빴던 걸까?

6학년이 된 우리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채
예선 탈락을 거듭했다.

야구특기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최소 한 번은 4강에 들어야 했다.


6학년 마지막 대회를 앞두고

제자들의 앞날을 걱정하신
우리 감독님은 고심 끝에
승부수를 던지셨다.

'그래… 애들은 살려야지. 내가 나설때가 되었군'

그 시절엔 인간적인(?) 청탁이 통하기도 했었다.
원로인 우리 감독님의 인맥으로
우리는 단 한 경기도 치르지 않고
기적처럼 4강에 직행하는 대진표를 받게 된다.
당시엔 출전 학교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전무후무한,
0승 1패의 4강 .


---

우리는
그래도 마지막 대회에서
1승은 하고 졸업하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상대는 올해 모든 대회를 우승한
최강 ○○국민학교.

선공인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치고 달리고 던지고 받았다.

5대 4.
우리가 앞서 있었고,
이제 마지막 수비.
투수는 좌완 에이스, 바로 나.

그러나…
끝내기 안타를 얻어맞으며
1승의 꿈은 눈물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래도 감독님 덕분에 우리의 서사는
‘무승의 4강 신화’로
기적 같은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명문 중학교

우여곡절 끝에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육지의 명문 중학교에 스카우트되었다.

그것도,
내가 가는 조건으로
두 명을 더 데려가는 거래였다.

"야구 좀 했다"는 이야기다.

입학과 동시에
엄마는 나를 야구부에서 탈퇴시켰다.

공부하란다.

큰 물에서 공부시키는 것
그게 당신의 '빅피처'였다.

그땐 모르셨겠지.
결국, 고등학교는
다시 섬으로 돌아오게 될 거란 걸.


그리고 지금

무슨 얘길 하다가
이렇게 말이 길어졌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
(사실 어떤 기억은 또렷하게 오래간다.)
그게
내 삶엔 실보다 득이 많았다.

감정도, 상처도, 후회도…
기억이 흐려지면
다시 일어나 걸어갈 수 있었다.

적당히 잊는 것(물론, 본의는 아니지만) 그게
내가 오늘을 또 살아가는 방식이다.

만약 그때
두 번의 야구공 펀치가 없었다면
예민한 나는
삶을 더 고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중단기 기억의 잦은 소실>

이것이 기록과 메모를 보내줬고

결국엔 글쓰기까지로 이어진 거 보면

한 가지 가르침을 받는다.


인생에 모든 조각들은

각자의 의미대로 제 역할을 하면서

이어져 있다고.


'호사다마'와 '전화위복'이

공존하는 인생.


잘 풀릴 때 겸손하고,

힘들어도 기죽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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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가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이 졌다.

지금은 아쉽지만, 뭐 괜찮아 질거다.

내일이면 패배는 잊고

난 또 "부산갈매기'가 되어

열심히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을 거니까.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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