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는 기억, 2부는 기적 같은 얘기
제목: 잊었기에 버텼다 (1)
나는 기억을 잘 못 한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이 쉽게 사라지는 편이다.
사람들은 내가 금융회사를
30년 넘게 다닌 걸 보면,
“일은 좀 하시는 분이다”라고들 한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내가 해낸 일의
대부분을 잘 기억 못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몇 해 전, 꽤 복잡한 민원을
내가 맡아 해결했다.
법령과 판례를 뒤지고, 근거를 찾아
조목조목 반박한 다음,
그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 남겨두었었다.
그 일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비슷한 이슈가 다시 생겼고,
담당 직원이 내게 찾아왔다.
“전무님, 이 건도 그때처럼 하면 될까요?”
“예전에 작성해 놓으신 문서가
정말 도움이 됩니다.”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문서? 내가 그런 걸 썼다고?”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발뺌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기억이 없었다.
이야기를 듣고, 문서를 보고 나서야
서서히 퍼즐이 맞춰지듯 장면이 떠올랐다.
심지어 그 문서는
‘진정 이걸 내가 쓴 게 맞는가?’
싶은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
사실 이게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과거의 프로젝트,
회식 자리에서 나눈 대화,
누가 건넸던 위로나 비난의 말들…
쉽게 사라진다.
조용히, 조금은 빠르게.
처음엔 단순한 건망증이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본다.
그건 분명 어떤 사건 이후부터였다.
---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부산, 영도.
수국이 흐드러진 절벽 아래로
바다가 부서지는 곳.
내가 태어난 섬이다.
표현은 섬이라고 했지만
다리 두 개로 연결되어 있어
배 타고 들어가야 되는 그런 섬은 아닐뿐더러
요즘은 커피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는
젊은이들의 핫플이기도 하다.
그 시절,
섬에서 육지로 나가
중학교를 다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야구 특기생으로 스카우트되는 것.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는
섬에서 유일하게 야구부가 있었고,
엄마는 나를 거기에 넣었다.
큰 물에서 놀게 하겠다는
‘그분만의 큰 그림’이었다.
다행히 나는 공을 잘 던졌고,
잘 달렸고,
무엇보다 야구를 좋아했다.
그래서 들어갔다.
그래서 시작됐다.
그래서, 잊게 되었다.
---
그 사건이 내 기억의 전환점을 만든 것이었다.
처음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확신한다.
내 중단기 기억의 잦은 상실은,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야구공 두 방의 흔적이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
우리는 수업을 마친 오후마다 야구 연습을 했다.
첫 번째 사건의 전말
나는 그 시절 보기 드문 왼손잡이였고,
믿거나 말거나,
3루수를 제외한 여덟 개의 포지션을 다 소화해 낸 멀티플레이어였다.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만화 같은 얘기인지 짐작하실 거다.
그날 내 포지션은 중견수.
타자가 친 공이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멋지게 떠올랐다.
나는 공만 보고 달렸다.
"이건 내가 잡는다!"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달렸다.
우익수도 달려왔다.
나와 마찬가지로 '잡아야 한다'는 의지로.
하지만…
그는 나를 봤고, 나는 그를 보지 못했다.
우익수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웅크려 앉았다.
하필, 내가 달려오는 딱 그 선상에.
공에만 집중한 나는
그를 보지 못한 채,
그대로 우익수의 등에 걸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축구스타 손흥민이 되었고
마치 헤딩슛을 하 듯 야구공은 축구공이 되어
정확히 내 이마를 강타했다.
그리고…
나는, 수면내시경 받는 것처럼 의식을 잃었다.
(2부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