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친구가 생겼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한 며칠 초여름의 기분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고, 낮잠을 길게 잔 아기에게 늦은 점심을 먹인 후 산책 나갈 준비를 했다. 아기와 둘이 집에만 있다보면 시간이 멈추는 마법 같은 걸 경험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 재미있게 놀아주고 시계를 곁눈질하면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까지는 아직도 아득하다. 고로 무조건 데리고 나가야 한다. 옷을 입혀서 나갈 준비를 하고, 유모차에 태워서 목적지까지 걷고, 어디서든 놀다가 들어와서 씻기고 나면 어느덧 저녁을 먹일 시간이고 곧 퇴근한 남편이 돌아온다.
우리의 몇 가지 산책 루트 중 그 날은 집 앞 공원이 당첨되었다. 요즘 새로 생기는 공원들처럼 잘 꾸며져 있는 건 아니지만 체육공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소박하고 오래 된 근린공원이다. 공원 앞 사거리에서는 횡단보도 네 개가 차례대로 켜진다. 돌이 지난 나의 아기 미엘은 녹색불이 켜지길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는 차들을 손가락으로 열심히 가리키며 입술을 모아 부르르 떨며 부릉부릉 하고 외치기 바쁘다. 버스가 지나가면 ‘뻐!’ 하고, 커다란 트럭이나 운좋게 이삿짐차 같은게 지나가면 잔뜩 흥분해서는 유모차 밖으로 몸을 빼고 한참을 두리번거린다. 아마도 나는 그런 아기에게 도로 상황을 생중계 해주며 열렬히 반응을 해주고 있었거나 아니면 무심하게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녹색불이 켜져서 건너려는 찰나에 같은 브랜드의 유모차 한 대가 앞서가는게 눈에 들어왔다. 나의 시선은 유모차를 미는 여성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면 슬쩍 말을 붙였을거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도 옆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스몰토크였다. 한국에서는 누군가 별 이유없이 접근해서 말을 건다면 대부분 ‘도를 아십니까’일 가능성이 크지만 아기와 함께하는 나는 용감하기 때문에 스스럼 없이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와중에 다가가 말을 붙이는건 아무래도 뻘쭘한 일인 것 같아 멀어져가는 유모차를 보며 천천히 걸었다.
미엘은 아직 혼자서는 걷지 못하지만 바퀴가 앙증맞게 달려있는 걸음마보조기만큼은 용맹하게 잘 밀고 다닌다. 집에서는 자꾸 여기저기 걸려서 답답해하길래 아예 공원에 들고나가서 실컷 밀고 걸어다니게 해준다. 꽤 부피가 나가는 걸음마보조기를 아기를 태운 유모차 위에 턱 얹어서 씩씩하게 밀며 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어쩐지 조금 경력이 쌓인 엄마가 된 기분이다. 신나게 행진하는 아기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다보니 아까 횡단보도에서 스치듯이 보았던 그 유모차가 한 쪽에 세워져있고 엄마와 아기가 벤치에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는 앉아있고 그 옆에서 아기는 벤치를 잡고 서있었는데 역시 혼자 걷지는 못하는 것 처럼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려고 하는데 아기 엄마는 누군가와 영상통화 중이다.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에 마침 미엘이 그 쪽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와 저기 친구 있네, 친구 안녕하자.”
아기의 뽀얀 피부는 엄마를 닮은 것 같았다. 딱히 서로를 소개하지 않아도 아기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고 이어졌다. 우리의 아기들은 놀랍게도 공톰점이 많았다. 둘 다 남자아이들이고 첫째라는 점, 비슷한 월령대부터 시작해서 돌이 지났는데 걷는건 아직이라는 점, 차분하고 신중한 성향, 또래보다 작은 체구, 잠이 많아서 낮잠을 하루에 세시간씩 잔다는 점 등을 번갈아 이야기하고 “어머 얘도 그래요”하고 맞장구를 치며 감탄했다. 처음 만났음에도 편안하고 더 알아가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녀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차분해보이고 선이 여리여리한 외모와는 대조적으로 강단있는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다. 뭐랄까, 곤란한 상황에서도 문장 끝을 흐릴 것 같지 않는, 빠르지 않으면서 단정하고 깊이 있는 발성과 목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기에게도 그렇게 나긋나긋 말을 걸었는데 참 듣기 좋았다.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아기를 챙기면서 자연스럽게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늘을 두고 자꾸만 환한 땡볕으로 걸어나가는 아이의 뒤를 쫓아 멀어졌다가도 대화를 더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에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그녀 곁을 맴돌았다. 슬슬 저녁을 먹이러 들어가야할 시간이 되었는데 또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호를 교환해도 되는지 물었고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지금 다시 회상해보면 아기들의 수많은 공통점과는 반대로 우리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던 것도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늘 그렇듯이) 내가 대부분 먼저 이야기를 꺼내거나 묻는 쪽이었고 그녀는 고맙게도 다정하고 단정한 말투로 내 수다스러움을 응대해주었다. 또 제법 더웠던 그 날 오후, 아래위로 반팔 반바지에 머리를 힘껏 돌돌말아 올려묶어 까무잡잡한 피부를 훤히 드러낸 나와는 달리 그녀는 얇고 하늘거리는 소재의 긴팔과 긴바지에 얼굴을 충분히 가려주는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려면 확실히 그런 옷차림이 좋다. 그 날 다른 옷차림의 우리는 서로의 방식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며 똑같이 생긴 유모차를 끌고 아기들의 저녁밥 시간에 맞춰 나란히 집으로 향했다.
올 여름, 미엘은 단우라는 친구가 생겼고, 나는 가영씨라고 부르기 시작한, 지금은 언니라고 부르는 동네친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