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씨 안녕. 지금 여긴 달리는 SRT 기차안입니다. 문득 자연씨 생각이 나 왼팔엔 잠든 아기를 안고, 오른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고 메모앱의 STT(Speech to text) 기능을 이용해 몇 자 써봅니다.
점심 때쯤 출발하는 기차라 친정 엄마와 집에서 아침겸 점심으로 중국음식을 시켜먹고 허둥지둥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출발지는 친정과 가까운 구포역(부산 북구에 위치한 작은 역)인데 거기서는 동탄역까지 한 번에 가는 열차가 없어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SRT로 환승을 했어요. 터지기 직전인 큰 백팩을 메고 갈 땐 없었던 무거운 에코백을 손목에 걸은 채 아기까지 안은 모습이 진풍경인지, 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몇몇의 시선을 받으며 무사히 환승에 성공했습니다. 팔은 좀 아프지만 아기가 잘 먹고 잠들었으니 마음이 편안하네요. 출발할때만 해도 흐렸던 하늘이 지금은 파랗습니다. 멀리 떠나 온 게 실감나기 시작하네요. 벌써 친정엄마가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게 새로워지는 마법에 걸리는 것 같아요. 학생 때부터 수없이 탔던 기차인데, 아기와 함께 기차를 탄 것은 처음이라 기차안의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영유아 동반석’이라는 것도 처음 구입해보고요. 기차에 들고 타는 짐, 옷차림,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까지. 모든 면에서 예전과는 차이가 큽니다.
늘 가던 친정집도, 엄마가 사시는 동네도 아기랑 오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입니다. 엄마랑 혹은 동네 친구랑 자주 산책하던 길도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인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기를 챙기느라 정신없는 엄마에겐 매순간이 ‘미션’인 하루잖아요. 친정이라도 크게 다를 건 없는 것 같아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아기와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니 정신적 피로도 평소보다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고 감당해보기로 마음먹고 내려왔으니 괜찮았습니다. 아기가 돌이 지나도록 외할머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많은 것을 감수하더라도 와야만 했는데, 자연씨 덕분에 뭐든 부딪혀볼 용기와 추진할 에너지가 생겼던 것 같아요. 만약 자연씨를 알지 못했더라면, 자연씨가 ‘저라면 갈 것 같아요.’ 라고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더 늦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아기가 걸을 때까지 내려가지 못했을거에요. 하물며 남편없이 혼자서는요. 엄마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천천히 올라왔으면 좋았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줄기차게 내리던 장맛비도 한몫 하네요. 아. 곧 도착이라네요. 슬슬 내릴 준비를 해봐야겠습니다.
다시 집입니다. 어제 집에 도착해서 초저녁부터 뻗어버렸네요. 전날 잠을 거의 못자서 고단하기도 했지만 아기를 재우려 같이 눕는 순간 긴장의 끈이 탁, 하고 풀려버렸나 봅니다. 거의 10시간 정도를 잔 것 같아요. 참 오랜만에 심신이 개운한 기분입니다.
며칠 집을 비우고 와서 그런지 집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친정을 다녀온 꿈을 꾼거 같기도 하고요. 평소처럼 보드라운 이불이 깔린 침대에서 아기랑 굴러다니며 꺄르르 웃는 아침입니다. 익숙한 촉감과 향기. 모든 것이 그대로, 제자리인채로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Classic FM을 틀어두는데 오늘도 평소처럼 라디오를 켰습니다. 그러다 문득 흘러나오는 음악(나중에 찾아보니 슈베르트의 즉흥곡 Op.142 였어요.)을 듣고는 꺼이꺼이 울어버렸네요. 특별한 사연이 있는 음악은 아니었는데 음악에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죠. 음악을 듣고 자연히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어제 플랫폼에서 점점 멀어지는 친정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몇 걸음 가다 뒤돌아 저와 아기에게 손 흔들고. 또 몇 걸음 가다 돌아보고. 또 몇 걸음.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엄마의 모습. 뒤이어 ‘그때 그런걸로 엄마랑 말다툼 하지말 걸’ 하는 후회. 늦은 시간 병원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의 피곤한 얼굴. 육아 피로에 찌든 딸에게 비타민 주사를 놔주시던 엄마의 능숙한 손길. 연쇄적으로 떠오른 이미지와 언어들은 가슴 한 켠에 고이 담아두었던 감정을 범람시키기에 충분했죠.
너무 갑작스럽게 넘쳐버린 감정이라 어찌할 새도 없이 한동안 정신을 놓고 울었는데 어느 순간 아기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저의 머리를 쓰담 쓰담. 15개월 밖에 안된 아기가 엄마가 슬프다는 걸 알까요. 놀라서 얼른 고개를 드니 방긋 웃는 아기 얼굴이 보였습니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훔칠 새도 없이 다시 웃을 수 밖에 없는 그 얼굴을 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쉴새 없이 받는 아기의 사랑,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몰랐을 모먼트겠지요.
고3 이후로 워낙 서울과 부산을 왔다 갔다 해서인지 저에게 엄마란 존재는 늘 그랬습니다. 가까이 있을 땐 잘 모르다 멀어지면 아련해지는 존재. 이젠 제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할머니가 된 엄마를 마주합니다. 블럭을 가지고 움직이는 집을 만들어 아기와 재밌게 놀아주시는 엄마를 보며 옛날에 나랑도 저렇게 놀아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자잘한 것도 잘 기억하는 저이지만 세 살 이전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억에는 없지만 옹알이하는 아기와 대화하는 엄마를 보며 그냥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그냥’ 느껴지는 거니까요.
자연씨는 ‘엄마’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전 예전엔 ‘엄마’ 하면 그냥 우리 엄마만 떠올랐었는데 지금은 그 단어 자체가 제 자신인듯 느껴집니다. 그리고 좀 지나서 ‘엄마였고 지금도 엄마인 엄마’가 떠올라요. 그래서일까요?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더 그립고 보고싶어집니다. 엄마가 되어 더 깊이 엄마를 사랑하게 되는 건(혹은 반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여성들의 숙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7월의 어느 아침.
엄마가 더욱 그리워진
가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