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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산 Dec 31. 2018

그는 말했다, 너는 이다지도 행복한 여름을 보냈다고.

필름이 담아내는 권태의 영화 속 빛나는 프레임

외삼촌은 내 나이 즈음 웨딩 사진사로 일했다고 한다. 20년 전, 삼촌은 큰 마음을 먹고 산 비싼 미놀타 필름 카메라를 꼭 쥐고 많은 사람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아내는 일을 했다. 하지만 가족이 생기고 식구가 느니 사진으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힘든 상황이 왔고, 삼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진을 접었다.


삼촌은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했다. 그래서 삼촌은 옛날이야기를 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한 번 내린 결정에 있어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몇 번을 읊조리면서.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삼촌은 당신의 옛날을 그리듯 손 기름으로 앞 고무판이 부식된 미놀타 카메라를 나에게 주었다. 삼촌은 사진을 다시는 찍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신은 카메라를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지만, 자신의 모든 젊은 시절이 묻어있는 이 카메라를 잘 보관해달라고 나에게 맡겼다.


삼촌의 미놀타로 필름 첫 롤을 감아본 건 비로소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캐논 사의 5DMark2 기종이 방송에 도입이 되기 시작하며 다양한 수준의 사양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DSLR 카메라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DSLR을 살 수 있던 형편이 되지 않았던 나는 문득 몇 년 전 받은 미놀타 카메라를 꺼내게 되었다.


수중에 있던 용돈을 모두 털어 후지 C200 필름 다섯 롤을 구매했다. 그렇게 사진을 시작했다.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내가 나중에 사진으로 돈을 벌게 될 줄이야.


올해 초, 엄마와 함께 갔던 폴란드 크라쿠프. 삼촌의 미놀타 카메라로.

이제는 모두가 사진을 찍는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DSLR 카메라의 성능을 유사한 수준으로 구현해낼 수 있게 되었고, 별다른 보정 없이 '감성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필터도 시중에 많이 출시되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그렇게 손쉽게 찍은 예쁜 사진들을 전시할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으로서 기능한다.


불과 몇 년 전 처음 컬러폰이 출시되고 '35만 화소' 카메라가 '세상의 혁신'이라 명명되었을 때, 그 누가 '1200만 화소' 카메라를 가진 핸드폰이 '당연한' 것으로 이야기될지 상상이나 했는가.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하이-테크는 더 이상 'hype'을 일으킬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미래의 것이 아닌 옛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옛것을 향한 대중문화의 향수병은 로우-테크 트렌드와 더불어 레트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일부러 먼지 소리가 끼인 음악을 듣기 위해 LP를 찾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촌스럽다'라고 여겨진 90년대 시티팝을 재현하고, 옛날 옷을 사기 위해 세컨드 핸드 빈티지 의류 샵에서 쇼핑을 한다. '요즘 사람들'은 겪어 보지 못한 기성세대의 문화를 동경한다. 그렇게 '뉴트로' (new+retro의 합성어) 문화가 탄생했다.


뉴트로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필름 카메라'이다. 필름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내 마음대로 찍을 수 없어서, 기다림이 있어서, 그리고 실수도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


사진을 업으로 하는 내게 필름 사진이 더 특별한 이유는 나도 모른 채 지나가버린 내 예쁜 시간을 이 친구가 대신 간직하고 있다가, 지루한 일상 중 갑자기 툭, 내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잊고 있던 코닥 두 롤이 내 지난여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여름이 이다지도 소중했던 시간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사단로 음레코드에서. Nikon TW Zoom QD


나는 사는 게 권태롭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똑딱이 카메라를 하나 장만하고 필름 사진을 취미로 두라 이야기한다. 사진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은 '필름' 그리고 '카메라'라는 두 요소에 높은 진입장벽을 느끼지만, 똑딱이 카메라는 별다른 사진 기술을 요하지 않기에 쉽게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이 필름 사진과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도록, 내가 가지고 있는 다섯 대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조금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나는 AF SLR, 기계식 수동 SLR, P&S (일명 똑딱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필름 카메라들은 이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AF SLR | Canon EOS 5, Minolta dynax 7000i


AF SLR의 외관은 DSLR과 유사하다. 나는  Canon EOS 5, Minolta dynax 7000i  모델을 보유하고 있고, 후자가 삼촌이 사용하던 카메라이다. 캐논 같은 경우 스트로보가 내장되어있고, 미놀타 경우에는 외장 스트로보를 따로 구매해야 한다.

Canon EOS 5
Minolta dynax 7000i


AF SLR은 autofocus single-lens reflex의 줄임말이다. 이 기종은 DSLR에서 디지털 기능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디지털카메라를 다뤄본 사람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디지털카메라처럼 쉽게 찍을 수 있다. 시중의 미러리스나 DSLR모델과 유사하게 캐논 EOS 5 같은 경우 오토와 매뉴얼뿐만 아닌 조리개 우선 모드, 셔터스피드 우선 모드 모두 갖추고 있다. 미놀타 dynax 7000i의 경우 오토와 매뉴얼, 셔터 스피드 우선 모드, 그리고 프로그램 모드가 있다. AF SLR 렌즈들과 호환되며 오토 포커스 기능이 가능하므로 평소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던 방법 그대로 촬영하면 된다. 렌즈 사양에 따라 조리개 값도 다양하게 세팅할 수 있어 첫 사진처럼 아웃포커싱을 주고 촬영할 수도, 두세 번째 사진처럼 배경의 디테일을 살려 촬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에 디지털카메라를 촬영해본 경험이 전무하거나, 조리개나 셔터와 같은 요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진입장벽이 조금은 있는 기종이다.  


2. 기계식 수동 SLR | Canon FTb


canon FTb
canon FTb + speedlite 244T

필름 카메라를 가장 필름 카메라답게 느껴볼 수 있는 기계식 수동 SLR. 노출계를 작동을 위한 건전지를 제외하고는 건전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이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FTb 모델은 내장 노출계가 존재하지 않아 노출계를 별도로 쏘고 사용해야 한다. 요즘은 Camera Light Meter와 같은 노출계 어플리케이션이 잘 되어있어 비싼 노출계를 굳이 따로 구매해야 할 필요는 없다. Canon AE-1과 같은 모델은 노출계가 내장되어있다.


기계식 수동 SLR은 필름을 넣는 과정부터 다 찍은 후 다시 감는 과정까지 모두 손수 이루어진다. 카메라 뒤판을 열고 필름을 넣은 후 뻑뻑해질 때까지 롤 감는 레버를 돌려주면 촬영을 시작할 수 있다. 한 컷 찍고 나서는 상어 이빨처럼 생긴 레버를 한 번 씩 돌려주어야 한다. 셔터스피드와 감도는 돌림판을 돌려 직접 설정할 수 있다. 외장 스트로보를 장착할 시 발광을 원할 때 Flash ON으로 레버를 돌려놓으면 된다. 한 롤을 다 써서 더 이상 사진이 찍히지 않을 때 롤 감는 레버를 위로 뽁 뽑아서 다 감길 때까지 돌려주면 된다. 다 감기 전까지는 뒤판을 열면 안 된다. 필름이 빛에 노출되면 다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기계식 수동 SLR의 가장 큰 매력은 한 컷을 찍은 후 레버를 돌릴 때마다 나는 사가각-탁! 하는 촉감과 소리이다. 또 셔터를 누를 때 짱!하는 경쾌한 튕김은 '내가 정말 사진을 사진답게 찍고 있구나'라는 기분을 한껏 낼 수 있게 한다.


다만 기계식 수동 SLR은 모든 것이 수동이기 때문에 직접 감도와 셔터스피드, 그리고 초점까지 하나하나 다 만질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보여준  AF SLR보다 조금 더 높은 진입장벽을 가진 기종이다.


3. P&S (Point & Shoot / 똑딱이 카메라) | Ricoh FF9, Nikon TW Zoom QD


지금까지 글을 읽으며 "뭐야, 필름 사진 찍기 정말 복잡하잖아?"라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면, P&S 카메라로 그 모든 착잡함을 날리기 위한 작전상 후퇴였다고나 할까. P&S는 Point & Shoot의 약자로,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모든 건 카메라가 알아서 조절한다.

SLR 기종과 달리 똑딱이는 바디와 렌즈를 분리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화각과 줌 레인지를 따져본 후 사야 한다. 나는 Ricoh사의 35mm 단렌즈 똑딱이와 니콘 사의 줌렌즈 똑딱이가 있다. 두 카메라의 사양을 비교해보자.


35mm | f/3.5    35mm는 화각을 뜻한다. 단렌즈 카메라이기에 35mm 화각에서만 촬영할 수 있고 줌은 불가능하다. f/3.5라는 것은 고정 조리개 값 3.5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카메라는 고정 화각과 고정 조리개 값을 가지고 있는 단렌즈 카메라이다. 단렌즈 똑딱이의 장점은 초점을 잡아내는 정확도가 높고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해당 모델의 경우 플래시를 터트려 찍어도 피사체가 화이트로 날아가거나 배경이 블랙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이 모델은 상당한 광량을 자랑하는 플래시가 내장되어있다.  


Ricoh F99


35-80mm | f/3.5-7.8    니콘 TW zoom QD 모델은 줌렌즈 똑딱이이다. 35-80mm는 해당 렌즈의 줌 레인지를 뜻한다. 35mm 화각에서 80mm 화각까지 줌인할 수 있다는 뜻. 조리개 값 역시 3.5부터 7.8까지 촬영 당시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설정된다. 조리개 값은 작을수록 조리개가 열려 피사체 바깥 배경을 아웃포커싱으로 날리고, 값이 클수록 조리개가 조여져 피사체 주변 배경의 디테일들이 조금 더 살아난다. 줌렌즈 똑딱이의 경우 줌을 최대로 당겼을 때 초점을 섬세하게 잡지 않으면 의도했던 사진이 나오지 않을 확률이 크니 유의할 것. 해당 모델의 경우 줌을 최대로 당겨 찍어도 화질이 뭉개지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장점이다.


Nikon TW Zoom QD


똑딱이 카메라는 촬영 당시 주변 상황에 따라 모든 설정을 자동으로 맞춘다. 따라서 어두운 곳에서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으면 충분한 빛 흡수를 위해 셔터를 오래 열어놓게 되고, 셔터 스피드가 길어짐에 따라 사진이 흔들리게 된다. 이런 흔들림도 가끔은 참 괜찮을 때가 있다.


Nikon TW Zoom QD


필름 사진을 찍을 때 몇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1. 절대 나의 의도대로만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버리는 컷들이 꽤 나올 것이다.  

필름 사진은 사용하는 필름과 카메라 기종 뿐만 아니라 촬영 순간의 세팅값, 빛, 밝기, 날씨, 스캔환경 등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먹고 주변 세상이 만들어내는 마법을 감상하라. 의도치 않게 타버렸거나, 날아간 컷들에 대해서는 너무 아쉬워 말고, 셔터를 누르던 세상의 순간이 만들어낸 작품에 감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2. 필름 한 롤을 다 쓰기 전에 필름 스트립을 빛에 노출시키면 안 된다.

필름 스트립은 빛에 매우 예민하다. 빛이 닿는 순간 그 컷은 모두 날아가버리고 만다.


3. 필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필름의 유통기한은 보통 몇 년씩 되기 때문에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끔 유통기한 지난 필름이 내는 독특한 색감을 원해서 일부러 유통기한 지난 필름을 값을 지불하고 구매하기도 한다.


4. 필름이 카메라에 걸려 빠지지 않는다면, 건들지 말고 바로 전문가에게 달려가자.


좋은 필름 사진은 기다림, 그리고 소소한 감사함에서 태어난다.




올해 엄마가 쉰을 맞아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엄마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언젠가 '나이 들어보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더라'라는 말을 하셨다. 짐을 챙기던 중, DSLR을 가져가자니 너무 '일을 하는' 느낌이라 온전히 행복한 마음으로 엄마의 모습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머나먼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자유로이 여행하는 엄마의 모습을 삼촌이 내가 남겨준 필름 카메라로 남겼다.


로모그라피 일회용 카메라


높은 선예도와 해상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너무 벅찰 때가 있다. 20년도 훌쩍 넘은, 그다지 고급 기종도 아닌, 앞 고무는 손 기름으로 모두 부식되었고, 오래된 연식으로 렌즈에 곰팡이도 살짝 슬어 그레인도 과하게 끼는 삼촌의 미놀타 카메라가 여전히 제일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어낸다. 타인에게 삶의 무게를 지우는 것, 참 잔인한 일이다. 내 사진은 삼촌의 어린 날의 무게를 감당해내고 있을까?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오늘도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의 삶은 적절한 음악과 시각 효과로 잘 편집된 드라마도, 모든 복선이 얽혀 운명의 결실을 맺는 영화도 아니다. 권태의 덫에 갇힌 우리의 삶 속 빛나는 순간들을 필름 스트립에 담아놓고 이따금씩 꺼내보자. 나의 기다림과 순간의 세상이 오롯이 비치는 필름을. 그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너는 이다지도 행복한 기억으로 맺어진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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