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산 Jan 06. 2019

적절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법

슬퍼할 자격이 없는 나는 얼마큼 슬퍼해도 되나요?

H가 죽었대. 발인은 금요일, 세브란스 장례식장.


H의 장례식장에 가는 날이다. 검은 터틀넥 니트에 검은 셔츠를 덧입는다. 검은 바지에 검은 구두를 신고 문 밖을 나선다. 눈 화장은 하지 않는다. 입술만 얌전히 톡톡. 오늘은 적절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 날이다. 삶에 찌든 어른처럼, '저는 오늘 상갓집에 들러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퇴근을 한 후 세브란스에 들러야 한다. 적절한 애티튜드로 부조금을 넣고, 조의의 말을 남긴 후 적절한 인사말과 함께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 않은 걸음으로 그곳을 떠나면 된다.

 

H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나는 얼마큼 슬퍼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H와 나는 길게 알았지만 깊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H와 나는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일을 했고 업무적인 고민이 있을 때 서로의 편이 되어 주었지만, 진심 어린 고민이 담긴 쓴소리는 하지 않았다. 지나가며 마주치면 발랄한 인사를 나누었지만, 굳이 먼저 서로를 찾지는 않았다. H와 나 사이에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나에게는 얼마큼 슬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걸까.


SNS에 추모의 물결이 몰아친다. H와 이만큼 가까웠고, 이만큼 특별한 시간을 이만큼이나 많이 공유했다, 그래서 H를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그곳에선 부디 행복해.


나는 이렇게 전시할 기억도, 시간도, 자격도 없다. 나는 그의 죽음 앞에 평안을 빌어주어도 되는 걸까.


스무 살 때 처음으로 독립적인 사회적 인간으로서 부고를 통보받았다. 동아리 선배의 부친상으로 기억한다. 장례식장은 분당의 어느 병원이었고, 일산에 살던 나는 따로 '적절한 외형'을 갖출 여유 없이 빈소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마침 그날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이 정도면 '적절한 조의'를 보여줄 수 있다 생각했다.


병원 앞에서 만난 선배들은 나에게 한 마디씩 했다. 너는 상갓집에 시스루를 입고 오니? 화장은 그게 뭐니? 어휴, 답도 없다.


내가 입고 있던 원피스는 양겹으로 되어 있었는데, 겉 겹은 소위 시스루(see-through)라 불리는 반투명 원단이었다. 얼굴 위 얹혀있던 건 갓 스물 된 미숙한 여자아이가 저지른 농도 조절에 거나하게 실패한 메이크업이었다.


그럼 알려나 주지. 상갓집에 갈 때는 검은 옷을 입되 시스루 원단이 덧대져 있으면 안 된다. 화장은 하되, 브라운 톤의 옅은 메이크업만. 아이라인 길게 빼기 금지, 블러셔 절대 금지.


그 누구도 나에게 적절한 어른으로서 행동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 입장 전 한껏 지적을 받은 나는 장례식장에 난입한 무례한 파티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상갓집의 어른들은 육개장에 머리 고기를 먹으며 '어른'의 자세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자니 몇 가지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듯했다. 대화의 주제는 돌아가신 분이 빛나던 옛날이야기와 나의 요즘 안부를 적절한 비율로 유지할 것. 짜증 나는 직장 동료에 관한 이야기는 하되 내가 승진한 이야기는 하지 말 것. 대화 중 간간히 터지는 웃음은 순수한 웃음이 아닌 슬픔과 조의를 한껏 버무린 웃음일 것.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던 건 식탁에 고개를 박고 대화의 리듬에 맞추어 가끔 사이다를 마시는 일, 귤을 까먹는 일 정도였다.


스물 하나가 되자 '어른으로서 적절히 행동하기'의 난이도는 한참 올랐다. 정말 친한 친구인 A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적절한 어른으로서'의 행동이 시작되어야 했다.


지인에게 A의 부친상을 전해 듣고, 상대가 숨을 쉬는 몇 초간의 정적 동안 나는 적절한 대답에 대해 재빠르게 고민했다.


    "아, 진짜?" (그럼 진짜겠지 가짜겠니.)

    "헉, 어떡하면 좋니.." (어떡하냐니? 이렇게나 어설픈 동정의 말을 내뱉다니, 한심하군.)

    "아... A는 괜찮고?" (괜찮지 않겠지. 뭘 그런 쓸데없는 걸 묻니.)

    "장례식장은?" (아이고, 정 없다 정 없어.)


계산 중 과부하가 걸린 내 뇌는 모든 걸 쉴 새 없이 뱉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헉, 진짜? 우짜냐. A는 괜찮대니? 그나저나 장례식장은 어디야? 넌 언제 갈 거고?

    야, 하나씩 하나씩. A 아버지가 워낙 길게 앓다 가셨는지,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아. 장례식장은 삼성 근처.


어쩌다 튀어나온 오류로 어른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무례하지 않은 대화를 무탈하게 마무리하며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성공했다. 솔직히 A의 부친 장례식에서 나는 어떤 의식을 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국화꽃 한 송이를 단상에 올려놓았는지, 향 하나를 촛불에 태워 꽂았는지. 나는 적절한 조의를 표하기 위하여 어떠한 행동을 했고 A는 모나지 않은 자세로 나를 맞이했다. 우리는 소주에 머리 고기를 먹으며 서로 간의 적당한 안부를 묻고, 주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와 웃음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시간이었다. 그렇게 안심하며 A에게 안부인사를 남기고 빈소를 떠났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건 내가 빈소에 도착했을 때 A는 울고 있지 않았다는 것, 바쁜데 와줘서 고맙다는 말, 맛있는 음식이 별로 없어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나는 A의 부친상에서 적절하게 슬퍼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는 것, 그 잡념은 삼성의 어느 장례식장을 떠남과 동시에 그곳에 남겨두고 왔다는 것 정도가 그 날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친구 S와 만나 세브란스로 향했다. 우리는 연세로를 걸으며 새로 생긴 피자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맛없는 맥도날드 불고기 버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순간의 정적이 나와 S 사이에 드리우지 않도록 나는 부단히 사소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H의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1층 로비에 뜬 대형 스크린은 생전 H의 모습을 오롯이 담지 못했다. 그는 영정사진 속에서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양쪽 귀에는 업무 중 사용했던 무전기에 연결된 인이어를 꼽고 있었다. 누군가 업무 중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조악한 포토샵 기술로 회색 배경에 갖다 붙였음이 분명했다. 사진 속 H는 웃고 있었지만, 그 마지막으로 남겨진 웃는 모습조차도 일그러진 화질 속에 갇혀있었다.

    

H의 빈소는 H의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모인 어른들로 북적였다. 그의 아버지는 사회에서 꽤나 성공한 사람이었는지, 화려한 이름들이 박힌 화환들이 그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나와 S는 부조금을 넣고, 장부에 이름을 쓰고 향 하나를 촛불에 태워 향꽂이에 꽂았다. H의 영정사진을 마주하고 두 번의 절을 했고, H의 동생들을 마주하고 한 번의 맞절을 올렸다. 세 번의 절을 하는 내내 나는 옳은 방법으로 절을 하고 있는지, 얼굴 표정은 적절한 조의를 담고 있는지 신경 쓰느라 H를 떠나보내는 의식행위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내 얼굴은 안면근육에 경련이 온 사람처럼 삐죽빼죽 했을 것이다.


빈소에 앉아있는 몇몇의 아는 얼굴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바로 그곳을 떠났다. S는 1층 스크린에 떠있는 H의 영정사진 속 인이어를 가리켰고,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슬퍼할 자격에 대해 고민했다. 과거의 어느 순간 H가 약한 모습을 보였을 때, 그의 강하지 않음에 대해 비난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그의 죽음에 얼마큼 책임이 있는지 끊임없이 되새겼다. 내 안의 심리적 부채의식을 명료한 언어로 내뱉으며 계속 괴로워하면, 나는 H의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슬퍼해도 되는지 - 이런 한심한 생각을 곁들이면서말이다.  


S와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한국에 온 동아리 선배와 만나 가볍게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선배와 나는 괴델과 비트켄슈타인의 전기•후기 철학에 대해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다 "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아무도 날 만족시킬 수 없어" 따위의 말들을 허공에 내뱉고 헤어졌다. 선배와 함께한 지적 허영심의 전시는 H의 죽음 앞에서 부적절한 어른의 모습을 내비친 나 자신에 대한 잡념을 잠깐은 잊게 해 주었다. 비트켄슈타인과 괴델의 장단에 맞추다 얼큰하게 취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잠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나는 여전히 적절한 어른으로 자라지 못했다. H가 나의 무례함을 용서하길 감히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그는 말했다, 너는 이다지도 행복한 여름을 보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