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래전부터 돈이 생기면 얌전히 모아 두었다가 가차 없이 책을 사는 습관이 생겼다. 다른 곳에는 거의 돈을 안 썼다. 적금을 붓거나 가구를 사거나 차를 사거나 작고 예쁜 그림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은 머릿속에서 떠오르지조차 않았다. 몇 년 전 만나던 여자애와 헤어진 후로는 옷도 거의 안 사고, 사람도 잘 안 만났다. 어디에 있든 혼자가 되면 가만히 서점을 찾아 들어가서 눈에 띄는 책 등을 내게로 기울여, 목덜미를 집어 들고 능숙한 손동작으로 책의 속지를 아무 곳이나 쫙 펼쳐버렸다.
그리고 책을 읽었는가 하면, 그렇다곤 할 수 없다. 꼭 선비처럼 정직하게 책을 읽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바라던 것은 다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일이었다. 나의 삶이 유보되어 있지 않고, 지금 이곳에서 살아있다는 감각. 나도 이 땅을 두 발로 힘 있게 딛고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을 잊지 않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할 뿐이었다. 생의 감각을 일깨우고, 가슴을 멎지 않게 해주고, 수십년간 데펴진 피를 식지 않게 해줄 무언가. 미래를 꿈꾸는 일과 차디찬 현재에 대한 당혹감, 과거의 열기, 그러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긴 나의 마음이 해석되지 못한 채 풍선처럼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그것들과 마찰과 정전기를 일으켜 줄 지표면이 필요했다.
본능적으로 그러한 대상으로써 책을 집어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보고 만지고 펼치고 훑어보다가 다시 꽂고 고민하고 거절하고 선택하는 일련의 경험으로 그러한 자각은 충분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거의 완벽히 에로틱한 삶의 감각을 선사해 주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답답한 현실을 타계할 또 넓은 세계가 얼마나 펼쳐져 있는지 다만 알아보고자, 단지 빼꼼히 열어보고자 했던 것이지, 그 세계 속으로 다리가 풀릴 정도로 달려가 볼 생각은 아직 없었다. 그 정도의 마음의 힘은 아직 없었다.
어쨌든 아무것도 아닌 그 행동들은 내게 설레기도 하고 에로틱하기도 한 순간들이 되어주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 장르를 초월한 미지의 책들과 위무를 나누는 일은 가장 쉽게 미지의 시간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건 마치 매일 와이프가 누굴지 모르는 집으로 퇴근하는 일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문장이 비난을 받을 만한 문장이라면, 마치 매일 와이프가 어떤 옷이나 화장, 매소드한 새로운 분위기로 나를 기다릴지 모르는 집으로 퇴근하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도 비난받을 문장이라면. 마치 매일 해피가 어떤... 그만 두자. 처음부터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생각이었다.
글이 의도치 않게 자꾸 에로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어쨌든 난 청순한 싱글이고, 또 지금은 아침이고, 그럼에도 이런 글이 써진다는 것은 책과 관련한 경험들이 나에게는 어떤 결에서든 에로틱한 측면이 있다는 암시일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에로틱한 감정과 헷갈릴 만큼 강렬하게 설레는 경험인 것이다. 약간의 땀끼를 머금고 씩씩하게 걸어가,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씩씩거리면서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는 일. 신비로운 책장으로 둘러싸인 복도를 헤매며 한 권이나 네댓 권, 또는 열댓 권의 책을 가슴에 안고 나오는 일. 에로틱한 것인지 설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그 숨 막히는 과정들은 너무도 막연한 기쁨이어서 날 선명하게 만족시켰다.
책을 산다는 건 그러니까 적어도 내게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굶주림이자 떨림이자 삶을 지탱하는 마약이었다. 적어도 책을 고르는 동안은 한없이 넓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을 수 있었고, 그렇다면 그것은 현실보다 훨씬 더 생생한 현실이었다. 오로지 꿈을 바라보는 이에게 현실은 오히려 몽환일 뿐이니까. 꿈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삶에게 비좁은 하루는 짧은 봄날의 잠꼬대 같은 것일 뿐이니까.
책을 펼쳐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읽고 싶은 만큼만 읽어나가거나, 그 가격에 합당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모든 감각의 날을 세워 감정하는 일. 책을 계산대로 가져가 부들부들 떨고 콩닥콩닥 설레어 하며 계산하는 일. 서점 한 구석에 앉아 책을 끌어안고 잠들거나, 책을 손에 들고서 꾸벅꾸벅 졸거나, 집에서 책을 아예 베고 자는 일. 이처럼 에로틱하고, 진정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순간들이 나의 삶에서 또 언제였을까.
커피
그 외에는 원두를 사는 일 정도에 돈을 썼다. 밖에서는 거의 굶다시피 하더라도, 책을 샀고 남는 돈으로는 커피를 샀다. 한순간이라도 그 두 가지가 없으면 물 밖에 나온 붉은 금붕어처럼 옆으로 누워 뻐끔거리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좋아서 능동적으로 즐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속수무책으로 그것들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기꺼이 당하는 지배였다. 즐거운 복종이었다.
커피를 수준 높은 애호가로서 마셨느냐 하면 책과 마찬가지로 그렇지는 않았다.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카페 매장에서 산 케냐나 에티오피아 류의 원두커피를 주야장천 마셨다. 계량기 사용이나 시간 측정은 물론 생략했다. 드립이나 모카 포트 정도의 간단한 추출 방법으로 대충 추출한 커피를 얼음을 담은 스탠리스 텀블러에 따르고 칵테일처럼 흔들어서 지하철이나 서점 같은 곳에서 위스키처럼 한 모금씩 꼴깍꼴깍 마셨다. 그때 느껴지는 진한 커피의 감칠맛을 통해 행복을 꿈꿨다. 이제 보니 그 순간 자체가 행복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길 잃어버리기
며칠 전 표현하기도 감당하기도 어려울 만큼 슬픈 일을 당했다. 오랫동안 제대로 인사 한번 못 드린 친척분이 돌아가셨다. 마음이 너무 울적했다. 시름시름 앓다가 늦은 문상을 다녀오는 길. 한 동아리 여자 후배 녀석과 메신저로 수다를 떨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옛 학교 지하철역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과 한참 다른 방향이었다.
더 멀어지기 전에 무작정 내렸다. 아, 나는 나이를 먹어도 왜 이렇게 허술할까. 허탈함 뒤로 커피 아로마처럼 올라오는 오기를 느꼈다. 이렇게 된 김에 학교 주변을 거닐어보자는 생각에 닿았다. 불쑥 지하철역을 나가버렸다. 밤늦은 시간. 객기에 가까운 행보였다. 어떻게든 실수를 좋은 경험으로 돌려놓고 싶다는 선한 의지와 불가해한 놀부 심보 사이 어딘가에 있는 동기가 원래 목적지가 그 역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유유히 하차 게이트를 빠져나가도록 했다.
한남동. 정말 오랜만에 오는 좁은 지하철역 출구 길. 옛 캠퍼스 주변에 가까워 오며 어둑어둑한 밤길을 거니는데 거짓말처럼 대학생 때의 감각들이 되살아 났다. 잔잔히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도서관이나 서점 복도를 걸을 때처럼 설렜는데, 그보다 훨씬 더 가슴이 벅찼다. 귀까지 가슴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쿵쾅거렸다. 학교도 사라졌고, 주변도 퍽 바뀌었지만, 그 땅, 그 동네는 어쨌든 옛 풍경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뭉클했다. 한 삼십 분 정도였을까. 꿈결을 걷듯 그렇게 찬 밤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들 중 중요한 한 구석에는 태어나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시게 된 사건이 있다. 유독 학교에 일찍 나왔던 어느 날 아침, 나는 거의 한 번도 이용해본 적 없는 도서관 지하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커피 애송이였다. 당시는 학교 정문 앞에 이디야도 있었고, 제법 많은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서울 곳곳에 조금씩 생겨나고 있던 이천 년대 중반이었는데, 난 그러한 시대의 흐름과 전혀 무관한 존재였다.
수년만에 학교에 풍운아처럼 다시 나타난 고학번의 재입학생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첫 수업이 한참 남은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한다. 아침이니까 커피를 마셔봐야지. 지극히 단순한 생각을 가진 20세기 학번 남학생은 카페 바bar 위쪽 높은데 붙어있는 메뉴판을 인상을 쓰며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 아르바이트 여학생은 그런 나를 빤히 보고 있었고. 이른 아침, 서울 한복판의 캠퍼스는 고요했다.
이탈리아어로 된 커피 이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남학생은 적막한 아침 공기를 채우는 새소리에 더욱 초조함을 느끼며 아무 죄 없는 새를 괜히 미워했다. 얼른 메뉴를 정해야 되는데. 빨리 정해야 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계속 날 쳐다보고 있는데. 아침 공기를 머금은 상쾌했던 몸에서 어느새 열이 나고 등줄기에서 쪼르르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외친 외마디. 에스프... 레소마...끼아또? 주세요. 어차피 난 커피는 모르겠고. 이름이 근사해 보이면서도 그중에 저렴한 선상에 있는 메뉴였으니 모험과 안전함의 요소를 절묘하게 충족시키는 커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잠시 후 큰 테이크 아웃 종이 잔 바닥에 거짓말처럼 앙증맞게 담겨있는 생크림과 함께 너무나 적게 담겨 있는 검은색 액체. 나는 발걸음을 돌려 물어보고 말았다.
저, 커피가 이것밖에 없는데요. 하하. (정말 당당하게 물었다.) 저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라는 커피 시켰는데요. 뭔가 착오가 있는 것 아닌가요? / 네.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시키신 것 맞죠? / 네. / 그럼 맞아요. 그게 에스프레소 마끼아또예요. / 아.. 네. 그러니까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는 원래 이렇게 나오는 것이 맞다는 말씀이시죠. / 네. / 아 전 처음 시켜봐서 이런 건 줄 모르고요. 아.. 이런.. 커피도 있네요.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음. 네. 이런 거군요. 아, 죄송합니다. 수고하세요.
얄밉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적막한 캠퍼스와, 캠퍼스에 가라앉은 싱그러운 풀숲 공기,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냄새. 이제 더 이상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그렇게 이른 아침에 일어날 필요도 없는 날이 반복되고. 그런 날들이 버거울 정도로 힘든 날이면 가끔 이상하게 그 아침이 떠오르곤 했다. 캠퍼스의 풀기 머금은 아침 공기 냄새와 상쾌한 분위기, 너무 써서 한 동안 목청 밑에서 감돌았던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맛.
시간이 한참 흐르고 돌아보니, 그렇게 에스프레소 마키아또를 두서너 모금에 해치우다시피 하고, 연신 컵을 홀짝이고, 허무하게 입을 다시며 도서관 지하 카페를 나왔던 그 싱그러웠던 아침이 너무나 눈부신 순간이었다. 그 평범한 기억이 왜인지 내게는 그렇게 떨리고 설레던 아침으로 냉동 보관되어 있다. 시간은 이토록, 파도가 되어 수만번을 부서지고 나서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속삭인다.
한 작가가 이탈리아에 가서 현지 가이드에게 이탈리아를 가장 잘 여행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묻자, 가이드는 기꺼이 길을 잃어버리라고 답했단다. 어차피 애당초 가이드란 전혀 없는 인생을 여행하면서, 그동안 내가 바랐던 것은 무엇일까. 이제야 조금씩 나는, 즐거이 길을 잃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를 마시던 아침이 그 달콤 쌉싸름한 맛처럼 짙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