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건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 이야기가 생생한 꿈처럼 살아 숨 쉬는 순간이었다.
< 북샵 >
아무것도 쓰지 말고 바라봐요. 오래 바라봐요. 볼 수 없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쓸 수 없는 것을.
< 쓸 수 없는 문장들 >
안리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것.
보이고 만져질 수 없다는 것.
말할 수 없고 울 수 없다는 것.
사랑할 수 없다는 것.
사랑하기 싫다는 것.
안경을 열 개도 넘게 들었다 놨다 하며 반짝이는 스탠드 거울을 봤다. 반짝반짝 빛나는 테와 렌즈 속으로 이제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눈을 봤다. 호기롭게 안경 가게에 들어가서, 한참 열정적으로 썼다 내려놨다 반복했지만 시간에 쫓겨 사지 않고 그냥 뛰어나와 버렸다.
시간에 쫓겨 빈손으로 나오는 기분이 의아하게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대로 그냥 나와 버린다는 것. 그것이 주는 홀가분함. 스티밍이 아니라 쿨링. 소유가 아닌 존재, 몸이 아니라 영혼.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은, 지금 결정하고 지금 사서 쓰고 나오지 않으면 하나밖에 없는 저 안경테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그런 감정에 쫓길 때. 그럴 때는 그냥 도망쳐버리는 것이다. 서둘러 쓰지 않고, 가볍게 말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하지 못한 시간의 껍질은 이제 모두 벗겨지고 본질만 남게 된다. 생생한 이야기와 기억, 사랑이 남게 된다.
실은 어떤 테로 할지 거의 결정했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가게를 나오게 되어버린 것이다. 치열한 고민에서 우연히 해방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된 게 안경 하나 바꾸는 일도 잘 못하나. 또다시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못하고 삶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기분. 그와 반대로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내가 계속되고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 그런 것이 뒤섞였는데, 그러나 그보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해방감과 영원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만질 수 있다는 것, 볼 수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없지 않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례적인 이벤트이고, 기적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앞에 사랑이 있는, 그 순간에는 온 힘을 사랑하는데 쏟아야 한다. 그리고 짧았던 기적이 끝나면, 이제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에 관해 온종일, 인생의 시간이 모두 소진되어 내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지쳐버릴 때까지 생각해야 한다. 사랑만, 사랑만. 온종일 생각해야 한다.
이제, 나는 오히려 물질성의 제한을 받지 않으니 한 없이 그 속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글로 쓰이는 순간, 보이고 만져지는 순간은 찰나지만 남아있는 눈물은 영원하다. 사랑은 그런 식으로 영원한가 봐, 생각하니 자유로워진다. 그리움이, 잃어버리는 것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게 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들은 만져지지 않고 쓰이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도 배시시 미소 지을 수는 없고. 듣고 싶은데, 만지고 싶은데 없는 순간에는 눈물만 차오른다. 아무리 깨달음이 와도 단 한 치도 초연할 수 없다. 얇은 홑 옷감 블라우스에 벤 냄새, 살결 냄새. 엄마가 자주 쓰던 말들.
마음 놓고 아파할 수도, 아파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 울지 않을 수도, 목놓아 울 수도 없는 것. 가슴에 든 멍. 목 메임. 사랑은 이런 거구나. 엄마는 이런 거구나. 온몸 전체가 완벽히 표현될 수 없는 시가 되고, 영원히 똑같이는 쓸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랑의 박제가 되어버렸다. 사랑의 무엇이 된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어쩌다, 이렇게 거칠은 영혼도 사랑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위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