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투스 쿠키와 탐앤치노, 살든지, 죽든지.
어둠의 건축가
건축가 유뿅뽕이라고 있어. 그 사람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재밌더라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직업을 가졌지만. 실은, 열정과 경험. 존재. 그런 사람이더라. 그러니까 재밌지.
특별한 뭔가가 좀 있는 사람 같았어. 슬픔과 불안이 없으면 이야기는 재미있을 수가 없거든. 밝고 가벼운 음료, 뭐 포카리스웨트 같은 거. 깊이 음미할 여지가 없잖아. 밍밍하기만 하지. 명랑한 짠 맛, 밝은 짠 맛은 정말 짠 맛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온 음료겠지, 소금이 아니라.
유학시절 수백 명의 대학원생들이 한 공간에서 공부하던 공간에 관한 이야기, 그가 지은 집들이 관한 이야기. 듣고 있다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재밌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 재밌기는 한데, 꽉 채워지는 이야기의 느낌은 아니었어. 재밌는데 어딘가 허전한, 집밥 같지는 않은 이야기들. 내가 재밌었던 건 그가 공부를 마치고 수백 개의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도 취업이 안 되었던 이야기나, 한국에서 건축 사무소를 차리고도 오랫동안 일이 많이 없어서 힘든 시기를 오랫동안 보냈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게 들리더라. 듣자니, 마음 고생 정말 많이 했을 거야 아마 그 사람.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던 이야기는 이거였어. 아버지가 명문대를 못 나와서 고비마다 승진하지 못하셨나봐. 혼자 뒤쳐진단 느낌에 자존심은 상하고, 가족들은 부양해야 하니 남몰래 숙죽이며 힘들어 하셨겠지. 곁에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아오던 어느날, 무심코 안방 문을 열었는데, 아버지가 욕실 물을 틀어놓고 울고 계셨다는 거야. 왜 그렇게 학교 도장깨기를 하러 다녔느냐고 짖꾿게 묻는 질문에 대한 의외의 답이었어. 자신이 학교에 대한 한이 있었던 것 같다고.
그런 이야기들이 난 재밌어. 빛보다는 어둠에 관한 이야기들. 건축 사무소를 차리고도 일이 별로 들어오지 않아서 15년 정도를 빛을 못보고 근근이 버티며 살았다는 이야기나, 건축 스튜디오에서 열네 시간 동안 나오지 않고 공부하던 그를 보며 친구들이 포틴 아워라는 별명을 지어줬다는 이야기. 어떤 심연에 닿아있는, 그런 이야기들. 어둠. 절망. 비탄. 달변이 그런데서 나오는 거 같더라고.
한가하게, 또 쫓기며. 살아있는 듯, 그렇지 않은 듯, 이런저런 일들을 스터디카페에서 하는데. 손가락에서 왜인지 어포에서 나는 비린 냄새 같은 것이 나더라. 굳이 손을 씻지 않았어. 그냥 킁킁, 손가락을 한번씩 코에 가져가서 냄새를 맡게 되더라. 비린내도 냄새니까. 어둠도 어떤, 어떤. 빛이니까.
그리고 하여튼,
하여튼, 모든게 그대로야. 엄마. 엄마만 빼고. 거짓말처럼, 엄마만 빼고.
탐앤탐스의 차가운 프라푸치노가 어울리는 차가운 계절이 왔어. 작년 겨울이었나. 큰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차가운 탐앤치노를 스토로우로 마시면서 동네의 산책길을 걷는데 맛있더라고.
입안이 얼얼해 질 정도로 달콤씁쓸한 얼음 알갱이가 목구멍까지 가득 채우고, 눈발이 얼굴로 쏟아지고. 마음이 한가득 설레더라. 좋은 일이 펼쳐져 있을 것 같더라고. 앞날에, 앞으로의 삶에.
그리고 난. 아주 캄캄한 암흑.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눈물. 두려움. 먹먹함.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동동동, 아픈 마음. 멍든 마음.
그렇지 뭐. 안 그럴 수 있겠어? 엄마가 그런 사람이었고. 엄마의 사랑이 그런 사랑이었잖아. 대책도 없는. 끝도 없는. 에누리가 없다. 받아보니까. 사랑이란 게.
내가 또 어렸을 때부터 엄마, 눈을 워낙 좋아했잖아. 삼 학년 때는 학교 창밖으로 첫눈이 오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옆에 있는 여자애를 껴앉았어. 그 여자애 이름도 기억한다 나? 겨울, 눈. 정말 아름다운데. 정말 이름다운 건데. 엄마는, 엄마는. 아팠는데. 난 설레고, 약간 행복했어.
오늘은 짓눈개비가 날리더라. 가을은 엄마가 없는 첫 계절이었는데. 나한테는 없었어. 아예. 통째로. 가을이. 계절이 아니었지. 아예. 아무 계절도 아니었지.
그리고 오늘. 짓눈개비가 날리고, 난 교회 모임에 안 갔어. 엄마가 싫어하는 그런 거. 정말 너무 착하고, 너무 성실한, 엄마가 싫어하는 그런 거. 또 그런 모습을. 잘 안 되네. 그래도 괜찮지? 사랑을 알아가고 있으니까. 그래도 좀 괜찮지?
엄마. 나. 두 가지만 약속할게. 엄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이 세상에서 없어. 살든지 죽든지. 없어. 아무도 엄마보다 더 사랑하지 않을게. 그리고 엄마, 난 엄마랑 계속 같이 있을거야. 모든 것들, 모든 사랑들. 기억할거야. 잊지 않고, 기억할거야. 내 영혼에 도루코 조각칼로 판 것처럼 깊이 파서 새길거야. 살든지 죽든지. 그럴 거야. 엄마는 전혀 원하지 않는 약속일 것 같은데. 히여튼 나 그럴 거야. 로투스 쿠키 정말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