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다는 것.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우린 3년 전 무더웠던 어느 날, 진천에 있는 한 순복음교회에서 아이들의 여름성경학교 사역을 도왔었다. 그곳에서 4박 5일을 함께 먹고 자고 웃고 떠들었다.
바이러스 시국에, 삶에 치여 잘 보지 못하다가 어렵게 연말 모임을 가졌다. 만나서 음식과 커피를 마주하며 보다 보니 다들 하나도 안 변한 모습 같았는데, 앨범을 보니 불과 삼 년 전의 모습에서도 지금보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모습이 읽혔다. 이공일팔의 여름날들. 자매들은 교육관 왼쪽에 있는 작은 방에서 잤고, 형제들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큰 방에서 잤다. 하루의 일정이 끝난 밤에는 가끔 공공 공간인 식당에서 모임을 하거나,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교육관의 야생 방바닥에 대충 널브러져 쓰러져 잤다. 이대로 잠을 이루기가 아깝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하루종일 분주한 일정으로 지쳐 쓰러져 잠들던 날들이었다. 그날들 동안 우리의 삶의 간격은 정말 가까웠다.
그럼 이후에, 우리가 삶을 함께 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 모였던 은혜나 정선, 수정, 동준. 그리고 오늘 못 온 명철, 혜란, 사랑, 요한, 선우. 아직 난 그들의 짠내 나는 눈물을 모른다. 우린 여름성경학교에서 아이들이 즐거워할 프로그램을 이끌고, 양로원에 가서 어색한 재롱을 부리며 할머님들을 교회로 초대하고, 삼계탕을 만들고, 율동을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한동안 가끔 만나 맛있는 것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선물을 교환했다.
나도, 그동안 많이 변했다. 겉모습은 비슷하겠지만 마음의 모양이 어쩔 도리 없이 많이 변해갔다. 나의 기쁨과 슬픔이, 꿈이, 궁극적으로 변한 것이다. 컬러 티브이가 흑백 티브이가 되었다. 온 세상이 무채색이 되었다. 나의 변화를, 절망과 아픔을 단기선교팀 사람들에게 읽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냥 한 번은,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싶었다.
다들 어떤 식으로든 변했을 것이다. 다들 눈빛이 조금씩 깊어진 것 같았다. 언듯 보면 거의 똑같아 보였지만, 약간은 무거워지고, 조금 더 삶에 축축하게 젖고, 세련되어지고, 신중해지고, 그러다 보니 약간은 화려해진 것 같기도 했다. 젊음의 미숙함은 많이 가신 것 같았다. 그것이 얼마나 싱그럽고 아름다운 것인지 그들이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알고도 점차 지워간 것인지, 어쩔 수 없이 모르는 새 조금씩 지워진 것인지.
나이가 든다는 것은 깊어지는 일이다. 깊어진다는 것은 미숙했던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축복이다. 하지만 왜인지 슬프다. 깊어진다는 건 어렸다가 어른이 되는 일이고, 사랑을 받다가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는 일일 텐데.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나눠주고, 가벼워지고, 사라지는 일 차럼, 결국 모두 다 사라져 버리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축복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다. 아직 내겐.
e자매가 투썸 럭키백에서 하얀 머그컵을 하나 꺼내서 줬다. 먼저 일어나는 내가 머그컵을 가져가는 모습이 마땅치 않아 보이자 팀장이었던 자매가 머그컵을 슬며시 큰 하얀색 쇼핑백에 넣어 주었는데, 소핑백 안에 책이 들어 있었다. 위로가 필요해 보였나 보다. 나중에 책 제목을 보고서 피식 웃음이 났다. 제목이 <혼자>. 그녀는 자신의 관계의 우산 아래에 있는 사람을 챙기는, 특별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막내로 자란 난 사실 그렇지 못한데 주변 사람들이 제법 날 그렇게 챙겨주고는 한다. 엄마도, 그런 말을 자꾸 여러 번 하곤 했다. 난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게 없는데 사람들이 나에게 너무 잘해줘서 이 빚 다 갚으려면 큰 일이라고. 이게 다 빚이라고. 어떤 권사님이, 누구누구가 양념갈비를 사서 갖다주고는 돈도 안 받았다고, 추어탕을 사줬다고. 뭐를 해줬고, 뭐를 줬다고.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본인은 그 모든 사랑을 합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나한테 줬으면서. 쨉도 안 되는 사랑을 줬으면서. 그래서 나는 이제 망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