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이 없는 영혼.

by jung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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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해도 일어나기가 싫었다. 1월 1일. 인생에서 2자가 세 개 들어가는 마지막 해일 것이 분명한. 그리고 숫자야 어쨌든 삶의 마지막 해이길 간절히 바라는. 2022년의 첫날. 나는 오후 다섯 시를 훌쩍 넘겨서야 몸을 일으켜 옷을 입었다.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야지. 인스타에 올라온 4샷 아이스 라떼 사진을 보고 문득 커피에 대한 간절함이 생겼다. 이제 일어날 수 있는 동기가 생긴 것이다. 사실 페인트칠도 오늘 해야하는데. 안 그러면 부동산 사장님이 또 말 안 듣는 아들 같다고 한 소리 하실 텐데. 나는 책임보다는 목마름이 동기가 되어야 움직이는 사람인가 보다. 아직 해가 있을 때 얼른 걸어나가서 창가에 앉아 진한 아이스 라떼 류의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이것저것 챙기는 동안 어느새 해는 가파르게 져버렸다.


어제는 히루 종일 굶다 하필 송구영신 예배에 삼십분 정도 늦은 시점에 허기짐이 절정에 달해, 만두집에 들어가 허겁지겁 고기 만두를 먹었다. 아, 맛집이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를 정도로 푸짐한 한 판에 부가 서비스(간장, 단무지, 따뜻한 물)까지 충분히 이용하고 사천 원을 카드로 결제한다는 것이 어딘지 가치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괜히 함께 먹을지도 불확실한데, 가족들이 먹을 떡국에 넣어 먹으면 어떨까, 아버지 생각도 한 스푼 섞인 마음에 테이크아웃 만두를 더 샀다. 결국 누님이 그 만두에 굴까지 넣어서 푸짐한 떡국을 끓여주어서 그 새벽에 싹싹 다 먹고, 얼굴이 붓도록 잠만 잤다. 누나와는 비밀의 숲처럼 얽힌 집안 문제에 관해 말 한 마디 없이 화해한 셈이다. 맛 괜찮아? 어. 어, 맛있어. 그때 한번 누나에게 시선을 향해 주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긴장과 애잔함이 감돌았지만, 애써 외면하며 떡국과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묵묵히 먹었다. 누나는 밥상 옆에 누워서, 나는 밥상 앞에 앉아 할아버지처럼 떡국을 한 수저씩 떠먹으면서, 둘 다 멍하니 드라마를 보았다. 사실 그렇게 배고프지 않았는데. 가족이란, 밥이란, 무엇인지, 엄마는 왜 그렇게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애를 끓였는지.


어제는 한 해의 마지막 날로, 운전면허 적성검사 마지막날이었고, 가족 몰래 혼자 월세로 이사갈 집의 거실과 주방의 전등과 도배지를 결정해야 했고, 국민지원금을 사용해야 했고, 각종 서점의 포인트들을 써서 책을 사야 했다. 그 일들을 해내지 못하면, 어린이대공원에서 놓쳐버린 헬륨가스 풍선처럼 모두 하늘 높이 날아갈 것이었다. 전등만 부동산 아주머니께 싹싹 빌면 연장이 가능했을 테지만.


12월 31일, 집에서 다섯시 이십 분 정도가 되어서 뛰쳐 나갔다. 도봉면허시험장에서 올해 적성검사를 받은 거의 마지막 사람이 되어 새 면허증을 받았다. 하지만 첩첩산중, 부동산 아주머니께 울려대는 전화와 문자에 답하며 죄송합니다, 빨리 갈게요, 지금 끝나고 나왔어요를 연발하며 허둥지둥 전등 가게로 달려가 전등을 고르고, 함께 차를 타고 가서 도배지를 골랐다.


국민지원금은 애플 제품을 판매하는 이마트24 매장으로 달려가 에어팟을 사는데 썼다. 케이티 멤버쉽 십 퍼센트 할인을 받고, 포인트 적립까지 하고, 한참을 갖고 싶었지만 막상 사지는 않았던. 그 에어팟을 뜻하지 않게, 싸고 쉽고 아슬아슬하게, 손에 쥐게 되었다. 지금 모짜르트를 들으면서 쓰고 있다. 송구영신 예배를 빨리 가야 하는데, 밖에서 언 선가락으로 스마트폰을 두드려가며 각종 서점 포인트들을 다 소진하며 이북 몇 권을 샀다.


모든 일을 완벽히 처리했다. 그렇지만 허무함은 그대로였다. 내 영혼의 질량은 1g도 무거워진 것 같지 않았다. 영혼의 핵심이 빠진 인간이 살을 찌워 부피만 늘인 느낌이었다. 나의 마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내 영혼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종교적인 평온함에 있을까. 지적인 포만감에 있을까.


강박증에 대해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 마디로 그걸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착’이라고 정의한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정말 하나도 안 중요한데, 그 좁은 세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왜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느냐 하면 두려움 때문이다. 다른 많은 성격장애들과 마찬가지로 강박증의 본질도 두려움이리라.


정말 두렵다. 온 세상이 두렵고, 하루하루가 두렵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잠을 못잤든 많이 잤든 몸을 일으키지 못하겠다. 이 세상 전체가 두렵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내가 죽는 것은 그렇게 두렵지 않은데,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있다가, 어느 날 내 옆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초현실적이다. 그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체는 무엇일까.


국민학교 때 방학은 끝나가는데 여름방학 일기 숙제는 이삼 일 치도 제대로 안 썼던 날들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날들의 초조함처럼, 그 문제로 인해 아프고 절망적이고 초조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다시 만날 것이라면. 엄마와 나.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라면, 어차피 0 칼로리. 어느 회사의 증권이 어떤 일시적인 악재로 뚝 떨어졌다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어차피 그렇게 보합될 것이라면. 괜찮다. 아무래도 괜찮다. 잘해도 잘못해도. 모든 것들이 어린이대공원의 풍선처럼 날아가버려도, 아무렇게나 해도, 아무렇게나 되어도 괜찮을 것이다. 영혼의 핵심은 헬륨가스 풍선이 아니라 그리움이니까. 사랑이니까.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없어질 수도 없는 사랑이 내 영혼에 고이 스며들어 있다면. 다 아무렇게나 되어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