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닿을 수 없는
또 집안의 문제들로 걱정에 휩싸였다. 동파가 되고. 누수가 되고. 적지 않은 수리비가 또 나오고. 돈에 얽힌 문제들로 결정하고 대화하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하지만 난 생각과 말의 잔치로 극도의 피로감에 빠져 있고. 따라서 나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어떡하지. 다 그만둘까. 도망갈까. 사라질까. 감정의 화염을 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버릴까. 내 인생의 마지막 대환장파티를 벌여야 할까.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이 연결되고 십자가의 신학이 꽃피우는 자리에는 아름다운 cosmos(질서)가 찾아온다. 그렇지 못하고 감정에 함몰되어 무의미하고 현실적인 언어의 인플레이션만 있는 자리는 chaos의 자리다.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고 있다는 성서의 말씀처럼, 용서와 평화의 복음이, 십자가 신학이 중심이 되지 않은 자리는 한 발짝만 옆으로 헛디뎌도 무한한 절망의 블랙홀이 입을 벌리고 있다.
나도 여느 성인 인간처럼 합리적인 사고 능력과 욕심, 욕망을 가진 생물학적 덩어리다. 미움과 애증, 사랑과 분노와 연민이 뒤섞인 오로라 빛갈 같은 감정을 일순간에 느끼는. 내 힘으로 다스릴 수 없는 모순적인 에너지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위험한 인격이다. 그래서 희망과 기다림, 여유와 질서보다 절망과 분주함과 조급함과 무질서 속에 빠져 있곤 한다. 오늘 오후에도 여느 하루처럼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쫓기며 무질서 속에서 어푸어푸 허우적거리고 있던 것이다.
그러고 있는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갑자기. 고요하게. 펑펑.
눈발은 아무 음계도 언어도 없이 하늘의 성가처럼 아름답고 사무치게 쏟아지고, 늦은 오후의 먹먹하고도 은은한 빛이, 쏟아지는 눈발과 조화를 이루며 거리를 따뜻하게 덮는다. 나는 또 천치같이 눈이 좋아 카페 문을 열고 나가 눈발이 쏟아지는 픙경을 바라보고 사진도 찍는다. 설레고 뒤숭숭해진다. 괜히 전화와 메신저를 한다. 마음도 삶도 이토록 무거운데. 무언가 나의 세상이 확 달라진다. 아무 맥락도 합리성도 없이 일순간 마음이 흰 눈처럼 된다. 무언가에 의해 하얗게 뒤덮여 버린다.
우리가 속한 이 지구, 특히 인간의 세계는 무질서와 질서가 도저히 해석하기 어려울 만큼 독특하게 뒤엉켜 있다. 인간 세계의 표면을 보자면 마치 그 자체가 하나의 질서인듯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미세한 이익과 돈과 이해관계, 미움과 오해, 화해와 해소, 연민 등이 끝없는 매트릭스처럼 얽혀 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은 채 한계를 느끼며 넘어가는 것들, 강박증과 해방, 억눌림과 자유, 그가 나를 좋아하는 걸 알아서 강해짐, 내가 좋아해서 약해짐처럼 이루 다 언어의 짝을 지워주기도 어려운 수많은 화학적 감정을 느끼며 바삐 살아가는 곳이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애증의 행성인 것이다.
이러한 감정과 상념들은 무성영화 필름처럼 숨가쁘게 지나가고, 마음은 찝찝하게 무겁고, 눈은 벅차게 내리고 있는데. 두 명의 여학생이 마스크를 쓰고, 눈빛에 웃음기를 머금고 흰 눈보라를 생생하게 그대로 맞으며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온다. 그녀들은 거침없이 살아 움직였다. 내 마음의 선명도와는 전혀 다른 선명한 생기를 머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카페 앞 비가림 지붕 아래로 총총 걸어와, 활기차게 머리와 옷에 쌓인 눈을 털었다. 나는 설풍경에 이끌려 유리문 안쪽 바로 앞에 엉거주춤 서 있다가, 마침 내 앞에 펼쳐지는 그런 장면들을 하나 하나 가만히 바라보았다.
밝다, 경쾌하다, 싱그럽다, 살아있다, 청춘이다. 환하다. 그리고 내 복잡함과 무거움. 굳음. 경직됨. 칙칙함. 캄캄함. 죽음. 그러한 생각들을 다 깨끗이 지워버리는 눈과 두 여학생. 왠지 답답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스노우볼처럼 보였다. 나는 이제 결코 그 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뒤집어서 흔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잠깐 볼 수 있는, 두터운 스노우볼 속 세계 같았다. 통유리창 너머, 바로 내 앞의 스노우볼은 숨막히는 눈발이 나부끼는, 생생히 살아 숨쉬는 세계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닿을 수 없는 곳 같았다.
주님이 흔들어주신 오늘의 스노우볼은 아름답고 눈물겨웠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광경은 고작 한 삼십분. 아주,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