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지둥한다.

애지중지 사랑받고.

by jungsin


1

엄마가 내 두 볼을 쓰다듬어 주던 감각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 겨울 밖에서 추운 데서 떨고 있다가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아이구 추웠어? 하면서 따뜻한 손으로 두 볼을 쓸어내리며 억세게 쓰다듬어 주셨다. 두 손을 따뜻하게 비벼서 쓰다듬어 주셨던 기억도 어렴풋하게 나는 것 같다. 몇 살 때까지의 기억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아주 컸을 때도 엄마는 그랬던 것 같다.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처럼. 엄마는 손을 대어 스킨십으로 나를 사랑해주셨다.


애지중지. 그 단어가 나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엄마는 아들을 애지중지 아끼셨다.


그 쓰다듬음의 감각은 누군가 나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해주고 있다는, 이 세상이 온통 안전하고 사랑으로 가득하리라는 너무 분명한 감각이었다. 그렇게 늘 사랑받던 어린 시절에는 정말 아스팔트 바닥에서 뒤로 넘어져도 안 다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안전하고 그렇게 사랑으로 가득한 감각이 일거에 갑자기 사라져 버려 그저 소스라치게 놀랐을 뿐 나는 채 슬퍼하지 못했다. 아직도 슬퍼할 겨를이 없는 상태다. 너무 크게 넘어져서 울지도 않는 아이가 된 것 같다. 머리를 천장 같은데 너무 세게 부딪히면 한 동안 머리 한구석 어딘가에서 딩 하는 소리만 나고 아픈 줄도 모르겠듯이 멍하고, 띵하고, 삶은 왜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정신없이 부산하다. 허둥지둥하기만 한다. 독립한, 아니 독립하고 있는 집은 며칠 째 비워두기만 하고 있다. 칠을 하다 말고 놔둔 페인트와 붓이 굳어가는 것이 꼭 어디에든 잘 칠해지던 내 마음이 차갑게 굳어가고 있는 것만 같아 페인트 통을 보면 더 속상하다.



2

죽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아직 그렇게 실제적인 생각은 아니다. 그냥 그러고 싶다는 것이지 죽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너무나 실제적이다. 그런데 독특하고 이상한 것은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죽고 싶은데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처럼, 죽고 싶은데 스페인은 한번 더 가보고 싶어. 죽고 싶은데 아일랜드는 가보고 싶어. 아일랜드에서 제임스 조이스나 더블리너스의 지적이고도 음울한 분위기를 한번 느껴보고 싶어와 같은 것들이다.


그외에 또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은 곳은 아이슬란드다. 꽃보다 청춘에서 네 명의 남자 연예인이 자유롭게 우정을 나누며, 차가운 겨울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생동감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겨울이 춥고 움츠러들기만 해서 정말 싫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가장 일깨우는 계절은 겨울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오로라도 보고 싶고 갑자기 높이 솟아오르는 온천 분수 같은 것도 보고 싶지만, 그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장난의 죽이 잘 맞거나 대화가 잘 되는 친구와는 호텔방에 하루 종일 있어도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친한 친구 한 두어 명과 아이슬란드 여행을 간다면 퍽 행복한 느낌을 되찾을지도 모르겠단 생각 같은 것이 들었다. 물론 깊고 먼 대화를 할 수 있는 어느 여자와 단 둘이 가도 좋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아마 내 남은 생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죽고 싶지만 해보고 싶어 소원 리스트는 초등학교 때 먹었던 그 매콤 달콤했던 사거리 포장마차 떡볶이를 한번 더 먹어보는 것이다. 정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다. 그곳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하시는 작은 포장마차 떡볶이집으로, 주 손님층은 초등학생들이었다(그때는 그 포장마차 안이 아주 크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떡볶이를, 할아버지는 튀김을 만드셨는데, 떡볶이든 튀김이든 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언제나 초등학생 손님들로 붐벼서 바로바로 떡볶이와 튀김이 소진되고, 그때마다 분주한 손길로 바로바로 새로 만들어서 언제나 신선했고, 바삭했고, 매콤달콤 감칠맛으로 가득했다.


그곳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 사거리에 있었다. 그 포장마차 떡볶이 집에서 새어나오는 군침 도는 떡볶이 냄새를 맡고도, 주머니에 몇 백원이 없어 그 집을 지나치는 일은 초등학생에게 매우 깊은 갈등과 상실감이 되곤 했다. 하지만 다행히 내 주머니에는 대체로 짤랑짤랑 동전이 적당히 있곤 했고, 따라서 난 주로 떡볶이 백 원어치에 튀김 두 개를 할머니께 달라고 해서 먹었다. 두 개의 튀김 중 한 개는 무조건 깻잎말이여야 했다. 고소하고 신선한 깻잎 향과 깻잎에 덮인, 김이 솔솔 나는 탱글탱글한 당면의 맛을 모르는 자는 인생의 큰 부분을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는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의 한 중요한 단면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세상에. 그 포장마차 떡볶이집 떡볶이를 못 먹어 봤다고? 너무 불쌍한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어느 큰 도서관에 처박혀, 책더미에 파묻혀서 책을 읽으며 한 1년을 보내보는 것이다. 보고 싶은 책들을 끊김 없이 읽으려면 도서관에서 나가지 않아야 하므로 도서관 바로 옆에 연결되어 있는 떡볶이집이 있어야 한다. 그 떡볶이집은 당연히 사거리 포장마차 떡볶이집이어야 한다. 정감 어린 얼굴과 아담한 키의 그 할머니가 떡볶이를 만들고, 키가 큰 그 할아버지가 묵묵히 땀을 흘리며 기름에 깻잎말이를 하나씩 담그고 계셔야 한다.


떡볶이 백 원어치와, 과감하게 깻잎말이 다섯 개 정도를 먹고 다시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 복도로 걸어 들어와 어디 한 구석 바닥에 기대앉아 애거서 크리스티나 앨런 포우의 추리소설 전집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것이다. 입에서는 깻잎 향을 풍기면서. 입술에는 맨질맨질한 기름기와 입가엔 약간의 떡볶이 국물. 그렇게 추리소설을 읽다 질리면 아무 서가나 가서 그냥 예쁜 책을 뽑아 또 주룩주룩 읽어나가고 싶다. 읽고 싶은 책은 먹고도 싶다. 너무 예쁘면 쓰다듬고 싶고, 펼쳐 보고 싶고, 무심코 펼쳐 읽다 내용까지 달면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일들을 한 번쯤 해보고 싶다. 두 번은 말고 딱 한 번씩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다시 좀 살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정신 차리자, 절대로 오래 살아서는 안된다 다짐하게 된다. 정말 임팩트 있게 살아있다가 순식간에 그곳으로 날아가고 싶은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마음 다해, 영혼이 가진 두 손의 지문이 없어지도록 간절히 빈다.


그렇게 깻잎말이나, 스페인이나 아이슬란드나 큰 도서관에 파묻히기 중에서 한 두 가지만이라도 할 수 있게 되면 됐다. 안 해도 감사한 일이고 해 봐도 감사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웃으며 안녕 say good bye 하고 싶다. 친구들아 안녕. 쎄굽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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