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18

안녕 안녕.

by jungsin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음으로 세배해. 엄마. 세뱃돈은 곧 만나면 꼭 주세요.



어젯밤은 너무나 무서웠다. 수십 수백 번을 갔던 시골이건만. 밤늦게 버스를 환승해 가면서 타고 가서, 또다시 맵을 보며 걸어갔던 적은 처음이었다. 원래 예전에는 버스도 가지 않고, 택시도 수백 미터 근처까지만 다가가서 엄마와 나를 내려주고 돌아 나오던 시골이었다. 명절이면 심할 때는 화장실도 참아가며 열몇 시간을 고속버스에 갇혀서 가야만 했다. 그렇게 약속의 땅 천안 시내에 도착해 터미널 근처를 헤매며 고생 고생하며 택시를 잡으면, 왕복 택시비를 받아야 한다며 기사님들이 으름장을 놓아 수십 년 전 물가에도 택시비를 오만 원 십만 원은 드려야 했었다(이제 와 맵으로 보니 겨우 8km 거리였건만). 힘없는 엄마와 나는 그렇게라도 할머니 댁에 가야만 했던. 부엉이 같은 산새 소리가 고요한 산길에 울려 퍼지곤 하고, 어떤 날은 반딧불도 볼 수 있었던. 사방이 한 치도 안 보이던 어느 명절 밤에는 가다가 산길에서 혹시 뱀이 나오지는 않을까 무서워하며, 엄마 손을 꼭 붙들고 찬송가나 메칸더 브이 같은 노래를 부르며 한 걸음 한 걸음 헤쳐 나갔던. 너무 늦은 밤에 도착해 할머니의 호통이 떨어질까, 추운 밤길을 부랴부랴 걸어갔던. 험한 산길 깊고 깊은 시골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 시골길을, 깊은 밤 홀로 위풍당당하게 무려 시내버스와 지도 어플만으로 도전하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길도 잘 닦였고, 버스로 환승을 해 가며 잘 타면 1.5km 정도 되는 거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골은 여전히 시골의 위용을 뽐내려는 것일까. 맵에는 이렇게 가라고 나와 있는데, 갑자기 또랑이 나온다. 날이 이렇게 추운데 당연히 물이 얼지 않았을까. 그냥 다짜고짜 건너보려고 갈대 풀 같은 것을 가로질러 언 땅을 밟고, 자재 같은 것을 투닥투닥 밟으며 또랑에 다가가는데, 저기서 오리 두어 마리다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 꽥꽥 울며 푸드덕 날아간다.


이토록 춥고 캄캄한 밤인데도 야속한 또랑은 얼지 않았고. 난 저기를 건너가야만 하고. 이 또랑 길이 1km를 걸어가면 끝날지 5km를 걸어가면 끝날지 한강에서 끝날지 어떻게 알고 돌아가란 말이야. 카카오는 주식도 엉망이더니 일도 무슨 이렇게 엉망으로 하는 거야. 장화를 준비하세요라든지, 차가운 냇물을 수영으로 가로질러 건널 수 있으니 각오를 해야 합니다라든지 뭐라고 안내 문구라도 알려 줘야지. 도대체 이 추운 밤에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워커는 서양식 디자인이라 발볼은 좁고, 끈을 꽉 조여 묶어 놔서 걸을수록 발등은 아파오고. 배는 고프고. 가로등 불 하나 없이 달빛에 의지해 가느라 앞은 캄캄한데. 마침 스마트폰이 꺼져 버린다. 여기서 길을 잃으면 이대로 엄마 만날 것 같은데. 얼마나 헤매야 시골에 갈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는데. 수십 년 전 엄마 손을 붙잡고 걸어갈 때는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혼자서 헤매며 시골의 겨울 밤길을 걸어가니까 이토록 하나하나 다 부대끼고 새삼 두렵다. 안전하다는 감각. 그래도 된다는, 어떻게 해도 된다는 감각.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는 것. 폭신하고 몰캉몰캉한 엄마의 감각들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다.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셔셔러셔셔 셔셔셔. 오로지 감에 의지하여 폰이 켜져 있을 때 보았던 방향이라고 상상이 되는 길을 따라, 캄캄한 길을 한참 걷고 또 걷는데. 도무지 예전에 갔던 시골길이 아닌 것이다. 두렵고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할 무렵. 혹시 하는 마음으로 한번 폰을 켜보았는데 폰이 켜진다. 재빠르게 앱을 켜서 확인하자, 길을 크게 잘 못 가진 않고 있었다. 오던 길을 조금 다시 돌아가 맵을 따라 숨 가쁘게 걸어갔다. 드디어, 저기 익숙한 건물이 나온다. 우리 시골 우사다. 맵이 알려준 길은 한 번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시골 뒤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잠시 더 걸어가면 엄마의 비석이 있는 곳이다. 우사를 따라 걸어가는데, 슬슬 마음 저 깊숙한 곳이 회오리친다. 아이슬란드 굴포스 온천 삼백 미터 속처럼 갑자기 영혼이 들끓기 시작한다. 엄마 - 한번 불러봤다. 엄마아, 엄마아? 캄캄한 밤길의 어둠 속에서 모든 페르소나는 걷히고, 완전히, 명절 때마다 엄마 손을 붙잡고 시골길을 오가던 아이가 되어 그냥 괜히 한 번씩, 잘 울리지도 않는 차가운 시골 밤공기에 대고 엄마를 부르며 걸어갔다. 잘 밟히지 않는 언 밭길을 가로질러 우걱우걱 밟아 걸어가며 엄마, 엄마, 몇 번이고 계속 부르며 걸어갔다. 저기, 보인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엄마 손을 놓친 다섯 살 아이가 엄마를 찾은 것처럼 울면서 뛰어가 차가운 비석 돌 위에 엎드려 엉엉 목놓아 울었다.


이제 다시 집에 가는 길. 버스에 몸을 실어, 맨 뒤 구석 자리에 앉아, 옛날 풍요로웠던 명절처럼 짭조름한 전이나 동그랑땡이나 포도나 배도 하나 없이 서울로 돌아간다. 서울. 집. 이제 아무리 되뇌어 봐도 까끌거리며 입 안을 굴러다니는 동남아시아 밥알 같다. 고향이지만 고향이 아니고, 집이지만 집이 아닌. 어떤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오고 가는 동안 한 글자도 읽지 않은 책 몇 권과 열지도 않은 바게트 봉지, 괜히 들고만 다니고 뜯지도 않은 블루베리 요플레 같은 것들이 든, 의미 없는 에코백들을 두 개나 왼쪽 옆 좌석에 두고 앉아 멍하니 차창 풍경을 이따금 바라보며 이 날들을 써 두어 본다. 현실이 겨울밤에 시골에서 길을 잃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다. 나도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얼마나. 어떻게, 어디서 살아가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아는 나는 아마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가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돈키호테처럼, 무모할 정도로 이상적인 사람이다 난. 아마 나는 한동안 새로운 인사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어디를 향해서든 안녕, 안녕하고 새로운 인사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안녕 시골. 안녕 고향. 안녕, 안녕. 안녕 안녕 모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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