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와 만두의 대척점에서.
엄마는 태양이었다. 엄마가, 그러고 나자, 지구에는 즉시 빙하기가 찾아왔다. 빛도 없어졌고 온기도 없어졌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사라졌다고 하면, 사라진 것의 여운과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고 어딘지 아직 조금은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엄마의 그러한 일은 그처럼, 마치 딤 아웃dim out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없어진 것이었다. 없다 할 때의 그 없음. 명명백백한 없음이었다.
그 즉시 나의 식사는 변변찮아졌고 나의 풍요로웠던 내면도 가난해졌다. 그 전에는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배가 고파도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지금은 배가 불러도 배가 고프다. 이제 자매를 만나거나 자매 이야기를 하거나 자매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아 오늘 토트넘 하는 날이었지 않나. 문득 떠올라 토트넘 경기를 찾아보긴 하지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표정으로 볼 수는 없어졌다.
된장찌개나 김치를 잘 못 먹게 되었다. 의외로 흔한 음식인데, 엄마가 그러시고 나서 된장찌개도 김치도 제대로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제대로의 기준은 깊음이다. 제대로 삭힌 된장으로 한 깊은 맛의 된장찌개, 뭔가 제대로 익혀서 발효도 잘 되고 맛도 깊은 김치. 그러한 것들을 마치 엄마처럼, 태양이나 공기처럼, 그렇게 흔하고 하찮은 것처럼 생각했는데, 엄마가 그러자 그것들도 일제히 내 인생에서 없어져 버렸다.
태양이 떠도 따듯하지 않고 숨을 쉬어도 공기를 마시는 줄 모르겠다. 된장찌개는 이상하리만치 정말 거의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먹었어도 어딘지 가볍고 달짝지근한, 깊어도 깊지 않은 맛이었다. 내게는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찌개가 시판형 찌개 맛처럼 느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그랬는지 몰라도, 아무튼 난 진정한 된장찌개를 먹은 적이 없고, 아마 남은 생 동안도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치는 그냥 배추와 고춧가루와 소금을 뒤섞어 놓은 희멀건 김치만 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일 선호하게 된 음식은 만두다. 만두는 테이블에서 번거로운 움직임을 거치지 않고 한 젓가락에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입으로 가져갈 수 있고, 정서적인 허기짐이나 몸의 배고픔을 가장 신속하게 채워주고, 포만감도 비교적 천천히 사라지는 것 같아, 피곤하고 번잡한 배고픔의 기분을 오래도록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실은 계산하고 먹지는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만두를 먹게 된다. 배가 고파도 고프지 않아도 우선 만두집을 보면 들어가야 할 것만 같다. 만두집에서 나오는 김을 바라보며 잠재의식이 나의 어떤 허기짐에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느끼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길가에서 김이 자욱하게 나는 찐만두 집을 보면 다짜고짜 들어가게 된다. 들어가서 한 판을 달라고 해서 단무지 몇 개와 함께 그 희멀건 것들을 허겁지겁 서둘러 집어먹거나 비밀 독립 하우스에서 냉동만두를 기름에 튀겨 먹는다. 마지못해, 다 마지못해 그러게 된다.
괴이한 스토리를 소화할 자신이 없어서 이제껏 애써 제대로 안 본 올드보이인데. 내가 올드보이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난 올드보이다. 올드한데 보이다. 빨리빨리 올드해서 울다가, 울다가 올드하다가 올드하다가, 아직 보이일 때, 보이인 채로 새로운 다리로 건너갔으면 좋겠다.
밤늦게 독립 중인 하우스에 들어와 먹을 것을 이것저것 꺼내놓고도 선 듯 아무것도 못해 먹다가, 누워서 과자를 먹으며 잠시 증권을 들여보다 또 만두를 튀겼다. 맛있는 것 같은데, 속이 느끼하다. 느끼하게 맛있는 맛. 온 세상이 느끼하게 맛있는 맛이다. 온 세상이 중국산 같고 군만두 같다. 된장찌개와 김치와 해와 달과 별과 공기와 엄마. 그리고 군만두. 이 이분법적 대조법의 구도를 극복할 수 있을지, 도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그토록 무시하고 화를 냈던, 엄마가 나에게 무엇을 먹으라고, 먹을 땐 딴짓하지 말고 먹는 것에만 집중해서 맛있게 먹으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냈던 모든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먹는다는 건 정말 위대하고 거룩한 일이었다. 그것도 엄마가 숟가락을 깊이, 푹푹 담아 떠주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반찬이 올려진 참 부담스러운 밥 한 숟가락이나 불고기 쌈 같은 것은 정말.
모든 것이 이렇게 깊음과 진정함으로, 한국산으로, 집밥으로, 엄마로, 그리고 그, 밖의 것들로 나뉘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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