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작은 안식.

읽어야 한다.

by jungsin



더운 롱 패딩 주머니에 불편한 원 플러스 원 쇼콜라 커피 초콜릿 두 개.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밀린 설거지 거리처럼 떠오르고. 마스크와 코 틈으로 자꾸만 김이 올라와 안경은 뿌예지고.


초콜릿을 가방 안에 넣고 읽을까.

안경을 닦을까.

할 일들을 좀 하고 읽을까.


아니. 이럴 땐 그냥 눈동자로 책의 글들을 따라가야 한다. 무대 위 핀 조명을 받으며 혼자 독주를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처럼 그냥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여백과, 사진, 그림을 따라가며 마음의 리듬을 따라 그냥, 다짜고짜 읽어야 한다.


생각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순간이 하루 중에는 그렇게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샤워도 해야 하고, 바게트 샌드위치도 사 먹어야 하고, 당근도 해야 하고, 방 정리는 엄두도 못 낸다. 밀린 일들이 수없이 많다.


내 손에 마침 책이 들려 있고, 내 눈앞에 글자들이 있다면,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망설임도 없이. 읽어야 한다. 알맹이를 덮고 있는 표지 안에 달지근한 글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책장을 펼칠 수 있을 만큼은 정신이 맑고 피곤하지 않다면. 절벽에 매달린 것처럼 간절히 글자들에 매달려, 문장들을 따라가며 읽어야 한다.


마침 헤드폰에서는 감미로운 somi의 재즈가 흘러나오고, 내 눈앞에는 살아 숨 쉬는, 진지하고 아름다운 글들이 있고. 나는 마침 그것들을 향해 잔잔히 가라앉은 안갯속 초록빛 아침 호수 같은 호기심을 갖고 있으니까. 읽어야 한다. 이렇게 산소가 풍부하게 깊이, 숨 다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나다워질 수 있는 시간이, 하루 중, 한 달 중, 일 년 중, 인생에서는, 대체 얼마나 있는가.


삶은 왜 이렇게 나를 가만 두지 않는가. 갈등과 갈증으로 가득한 나의 시간 속, 작고 작고 작은 안식. 생각보다 인생은 짧고, 이렇게 생각하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찾아오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쇼콜라 커피 초콜릿 케이스가 옆구리를 찔러도 그냥 잊어버리고, 단어에, 띄어쓰기 빈칸에, 문장들에, 철봉처럼 매달려서 그냥,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