끙끙 골골 겔겔
쓸 게 없는데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안 읽다가 읽으면 달게 느껴지는 것처럼 일정량 글을 안 쓰면 쓰는 일을 생각만 해도 달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쓰고 싶은 마음이 한계량에 차올라 무작정 뭐든지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때 쓰면 어딘지 억지스럽고 재미 없는 글만 써질 확률이 높다.
예외가 있는데, 바로 이즈음의 나처럼 영혼이 모든 순간을 눈과 마음에 담으며 괴로워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때이다. 그러한 때는 쓸 게 없어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는 순간 유전처럼 할 말들이 터져 나온다.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쓴다는 일의 소중함을 아직 잘 몰랐던 것 같다. 알고 있었다면 애초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렇게 많이 막혀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쓰고 싶은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 쓰지 못 하기도 한 것이다. 차오르는 이야기들을 다 쓰려니 버거워서. 그 자리에 막혀 아무 글도 쓰지 못한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늘, 마음의 체력이 안 되거나, 몸의 체력이 안 되거나, 둘 모두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늘 집에 늦게 들어오면 옷만 갈아입고 먹지도 쓰지도 읽지도 않고 미라처럼 누워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리곤 했다. 몸이 안 피곤한 날에도 마음이 지쳐 있었다. 일단 눕자 누워. 옆으로 누워 낄낄거리면서 솔로 탈출 프로그램을 보거나 멍하니 토트넘 경기를 봤다. 그렇게 애써 무언가를 외면하면서 잠들고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일어나면 또다시 삶의 본질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들을 하거나, 그 일들조차 처리하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다 아니라면, 새로운 약속을 감당하느라 버거웠다. 아프기도 했다. 그저께부터 꼬박 한 이틀을 골골거렸다. 오늘 아침에 이 글을 쓰다 말고 그대로 엎드려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서 다시 이어서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겔겔거리고 있으니까, 이제 만 삼일째가 되어 간다. 저녁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밥도 좀 먹고 어머니에게 좋을까 해서 산 블루베리 잼을 구워 놓고 그대로 방치해 굳은 식빵 위에 곱게 펴서 발라 먹으면서 이렇게 다시 이어서 글도 쓰고 있다.
외출은 삼일 동안 한번 했다. 집에는 비밀로 부치고 산책하기 좋은 동네에 몰래 두집 살림을 차렸는데, 마침 이번에 방문해서 그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한번이라도 나가서 햇빛도 쏘이고 꼭, 좀 한 바퀴 거닐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장정이 문밖을 나가기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산책은커녕 화장실을 가는 것도 대장정이었다. 장정의 대장정 화장실 여행이랄까. 그렇게 공간의 반을 정체모를 박스들이 차지하고 있고, 컬트한 붉은색 블라인더가 외부의 빛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작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이틀 동안 나뒹굴었다.
이틀째 밤, 어둠의 46시간을 뚫고 빛의 스타벅스에 가려고 집을 나섰으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우연히 근처에 있는 반찬가게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된장찌개를 사서 오리지널 하우스로 돌아왔다. 두집 살림 하우스를 설립하고 벌써 월세를 두번이나 이체했는데 아직 제대로 된 산책 한번 못했다. 그 하우스의 설립 취지나 이념 자체가 산책과 느림의 철학, back to the Mother Nature 같은 것이었는데, 오히려 설립 이후 계속 전쟁 같은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그 모든 포부가 다 무색해지고 있다.
혹시 바이러스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많은 분들께 죄송한 말이지만 문득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과 반색이 뒤섞인 신비로운 감각. 아픈 것은 잠깐이고, 기쁨은 영원하리라는 생각, 그런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 입 밖으로 꺼내기는 미안하고 좀 겸연쩍은, 못난이 생각이라는 것을 알긴 안다. 하지만 혹자에게 바이러스가 폐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뜨였던 것도 진심이었다.
자유로운 창작의 영역이니까 읽는 이의 양해를 구하며 마음껏 써보자면 오미크론을 넘어 육미크론 오천크론이 되고 제발 폐렴으로 이어져라 그런 바람, 하지만 너무 많이 아픈 것은 두려워서, 적게 아프고 빠르게 악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등이 교차했다. 롱 패딩을 입고, 얇은 홑이불 한 장을 덮고, 맨바닥에서 오한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빈대떡처럼 뒹구르고 시름시름 앓는 동안(두 집 살림 하우스에 아직 이불이나 침대 같은 것을 안 사놨다) 꿈을 꾸는듯 그런 생각들을 했다.
어쨌든 나는 약을 안 먹을 것이라는 원론적인 방침을 이를 악물고 지켜냈다. 고통 완화제라고 상상되는 것들(물과 비타민, 커피 정도)을 다만 소극적으로 힘겹게 먹었다. 너무 아무것도 안 먹으면 정말 더 많이 아플까 봐, 엄마에게는 미안하게도 아픈 것은 무서워서, 프리미엄 카누를 뜨거운 물에 타서 한약처럼 마셨다. 다시 만나 사랑할 수 있게 되든지, 다 끝내든지. 그 사이가 너무 힘들다.